기자(記者) : 신문, 잡지, 방송 따위에 실을 기사를 취재하여 쓰거나 편집하는 사람
질문(質問) : 알고자 하는 바를 얻기 위해 물음
-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표준국어대사전 기준)
예전엔 기자를 했었고 지금은 홍보 업무를 하다 보니 질문을 하는 입장도, 받는 입장도 모두 경험을 했다. 그러다 보니 질문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지 잘 안다. 또 질문을 하기 전 이것을 어떻게 해야 취재원으로부터 내가 얻고자 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 고민을 하는 것도 안다. 질문이 날카로우면 답변하는 입장이 그만큼 어려워지는 것도 안다.
그런데 지난 8년 간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질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거나 잘못 생각하는 기자들이 많은 것 같다.
기자는 질문을 하는 걸 업으로 삼아 그것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고, 언론 홍보를 직업으로 가진 사람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걸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기자가 날카로운 질문을 하면 답변하는 취재원은 곤란한 상황에 빠지거나, 당황하거나, 아니면 사실대로 말을 하게 된다. 즉 만일 기자가 수준 높은 질문을 하게 되면 이 과정에서 취재원으로부터 당초 생각한 것 이상의 정보를 얻어 사람들에게 아주 의미 있는 기사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수준 높은 질문을 하는 기자는 이 나라에 있기는 하는지 의심스럽다.
수준 높은 질문을 하려면 취재 대상에 대한 풍성하고도 깊은 사전 취재가 필요하다. 내가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면 질문 자체를 할 수가 없다. 해당 사안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아는 것이 있어야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선에선 수준 높은 질문을 던지는 기자는 거의 없다.
가장 좋은 예로 올해 초 있었던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있다. 질문자와 질문 내용이 사전에 정해지지 않았던 회견이었다. 대통령이 질문자를 직접 선정해서 곧바로 답변을 했다. 수많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확인했다. 어처구니없는, 수준 이하의 질문의 향연이 이어진 광경 말이다. 심지어 본인이 소속된 매체와 본인의 이름도 말하지 않고 질문하는 경우도 있었다. 상대방이 질문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듣지도 못하고 ‘묻는 말에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기본적인 기자회견에 대한 상식을 찾아볼 수 없는 경우가 꽤 있었다.
내 개인적인 경우에도 황당한 경우는 꽤 있었다. 이미 짜 맞춰 놓은 기사 마지막에 관계자 멘트를 듣기 위한 ‘요식행위’로 나의 답변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아래와 같은 상황이라고 추측한다.
‘A는 B이고 그래서 결론은 C다. 근데 당사자인 D의
입장을 들어서 기사에 실어야 나는 균형감각을 갖춘 기자가 되니 홍보 담당자와 연락해서 멘트를 받아 실어야겠다.’
왜냐하면 질문의 출발부터가 아무런 설명 없이 C에 대한 귀사의 입장을 밝혀달라였으니깐 나로선 저런 추측을 할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본인이 ‘A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취재를 이리저리 해보니 이러이러한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됐다’ 정도의 얘기는 해주고 담당자에게 입장을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미
결론 내려놓고 상대방 얘기를 싣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대답 자체가 원론적인 수준으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하더라도, 그런 답변을 듣기 전 질문부터가 해당 취재 대상을 그냥 '조지려는' 의도만 다분하다면 과연 그게 기자가 가져야 할 질문의 태도인지 묻고 싶다.(공익성이 있는 취재라면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상대가 답변하고 있는데 말을 자르고, 인상을 쓰거나 화를 내고, 아무런 근거 없이 반박 질문을 하는 경우도 꽤 있다. 기자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 사람 아닌가. 말도 제대로 안 듣고 어떤 질문을 제대로 할 수 있으며, 어떻게 취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걸 취재라고 말할 수는 있나.
질문에도 수준이 있다. 고급스러운 질문은 바라지도 않는다. 저급한 질문이라도 좀 하지 말았으면 한다. 제발 기본적인 취재는 한 상태에서 상식적인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듣는 태도라도 가졌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질문 수준에 매체력은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마이너 매체’에 소속된 기자라도 수준 높은 질문을 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메이저 매체’에 속했으면서 저급한 질문을 하는 기자를 지금 당장 5명 정도는 나열할 수 있다. 그 정도로 기자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기자들이 많다. 질문의 수준은 기자 개인의 역량에 따른 경우가 99%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나는 ‘기자’를 상대하고 싶지 ‘기레기’를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다. 질문의 품격을 좀 보여줬으면 좋겠다. 제발, 부디 질문 좀 제대로 했으면 한다. 답변하는 내가 힘들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