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집을 떠나온 크리스천은 큰 괴물과 마주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볼루온 Apollyon(무저갱의 사자, 계 9:11)이었으며 두려움에 사로잡힌 크리스천은 돌아서서 도망쳐 버릴까, 아니면 맞서볼까 망설였습니다.
"무서워 말게, 너는 멸망의 도시에서 온 자가 아니더냐? 너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네가 떠나온 그곳에 왕이요, 주인이니라! 그리고 너는 나의 신하 중 한 명이었지. 대답하라! 너는 왜 너의 왕을 떠났느냐?"(아볼루온).
"네가 지배하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너를 섬기는 일은 몹시 힘이 들었고 네가 주는 삯으로는 생명을 살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다(롬 6:23). 그래서 나도 성도가 된 뒤에 다른 분별력 있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자신을 바꾸어보려고 여러 가지 방안을 찾고 있었다"(크리스천).
"어느 왕이 자신의 백성을 쉽게 잃어버리겠느냐? 나도 너를 절대 잃어버리지 않겠다. 나랑 함께 돌아가자꾸나, 그러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부를 너에게 주겠노라"(아볼루온).
"웃기지 마라, 너는 항상 사람들을 그렇게 꼬드기지 않느냐! "(크리스천).
"너는 벌써 반역자이지 않느냐? 그리고 그의 길을 도대체 몇 번이나 떠났었지 않느냐?"(아볼루온).
"그렇다, 하지만 나의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시고, 나를 용서하신 것을 안다"(크리스천).
"으악~ 나는 하나님의 적이요, 하나님을 싫어하며 그의 백성을 증오한다"(아볼루온).
"이 파괴자여! 조심하라! 이곳은 하나님의 도로이니라!"(크리스천).
"너는 네 하나님을 쫓아 이 길을 간 사람들의 끝이 처참하다는 것을 모르느냐?"(아볼루온).
"이것은 내가 선택한 길이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너와 너의 세상이 없어지고 잊힌 뒤에도 하늘의 왕국에 있을 것이다"(크리스천).
" 그래, 그럼 지금부터 내 앞에 있는 너를 마음껏 가지고 놀아주마!"(아볼루온).
아볼루온은 마침 좋은 기회다 싶어 크리스천에게로 와락 달려들었습니다. 그가 거칠게 크리스천을 넘어뜨리는 바람에 크리스천의 손에서 검이 떨어져 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아볼루온은 "자, 이제 꼼짝 말아라"하고 거칠게 소리 지르며 크리스천을 마구 내리눌렀습니다. 크리스천은 거의 죽음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순간 크리스천은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셔 손을 뻗어 칼을 집어들 수 있었습니다. 그는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다"(미 7:8)라고 외치면서 온 힘을 다해 마귀를 칼로 찔렀습니다.
권사님 딸의 죽음
나는 잘 믿는 성도들이 이런 마귀의 시험에 승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 신실한 권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 권사님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딸도 예수를 잘 믿고 또 성가대 대원으로 열심히 주님만 섬기는 가정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딸이 삼풍백화점 사고로 주님 곁으로 떠나고 맙니다. 그 권사님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 정신이 나가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 믿었던 하나님이 과연 계신가 하면서 한때 교회를 떠났습니다.
크리스천으로 이런 큰 시련이 다가올 때, 구약의 욥기를 떠올립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직하며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욥에게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그가 기르던 가축과 전재산을 잃고, 그의 몸은 온통 욕창으로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 마저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고 살았는데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권사님도 이런 절규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시다가 결국 욥에게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네가 누구이기에 무지하고 헛된 말로 내 지혜를 의심하느냐? 이제 허리를 동이고 대장부답게 일어서서, 내 묻는 말에 대답해 보아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거기에 있기라도 하였느냐? 누가 이 땅을 설계하였는지, 너는 아느냐? 누가 그 위에 측량줄을 띄웠는지 너는 아느냐?... 바닷물이 땅 속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구름으로 바다를 덮고, 흑암으로 바다를 감싼 것은, 바로 나다. 바다가 넘지 못하게 금을 그어 놓고 바다를 가두고 문빗장을 지른 것도, 바로 나다”(욥기 38:2-10)
나는 이 말씀이 우리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재산과 육신의 허락함이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크리스천으로 살면서 나도 늘 권사님과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마귀인 아볼루온이 잠시 나와의 싸움을 비켜갔을 뿐, 언제든 크리스천인 나와도 맞닥뜨려야 할 대상입니다. 천국에 가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하나님, 왜 이 권사님 딸을 데려가셨나요?”고린도전서 13:12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날은 우리가 깨끗이 알게 된다' 말씀을 묵상합니다.
산상수훈
예수님이 산에 오르셔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가를 설교하십니다. 여덟 가지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그중에 두 번째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느끼는 너희는 복이 있다. 그때에야 너희가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 수 있다(메시지 성경; 마태복음 5장 2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선생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으로 직접 오셔 이 말씀을 우리에게 일러주고 계십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권사님은 분명 가장 소중한 분의 품에 안길 것을 소망하며 사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크리스천들에게 복 받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메시지'저자 유진 피터슨 목사는 그의 설교에서 산상수훈의 8복을 다음과 같이 풀어 크리스천들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이 사람은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지길 위해서 우리의 교만을 버리길 원하십니다."
"애통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피하기보다 나누고 함께하길 바라고 계십니다."
"온유한 사람은 우리의 열정을 연마해 부드러움을 발휘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의를 위해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소비사회의 욕구를 거부하고 하나님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깊은 인격적 관계를 개발하라고 하십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정죄하고 탓하는 것으로 이 세상의 잘못과 문제들에 반응하지 않고 대신에 우리 자신이 직접 연민 어린 섬김을 실행하길 원하십니다."
"마음이 순전한 사람은 사소한 잡담에 빠져들지 않고 하나님께 중심을 두는 사람이 돼라 하십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어떠한 위치에 있든지 그가 누구든지 우리가 이겨야 하는 라이벌이 아니라 온전하게 사랑해야 하는 형제와 자매로 사람들을 보기로 결심하길 원하십니다."
"의를 위해서 박해받는 사람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건 거기에 따르는 안일함을 거부하고 대신에 사랑과 은혜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진리를 살아내는 좁은 길을 걷길 바라십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역으로 인해 큰 무리가 몰려드는 것을 보시고 산에 올라 '어떻게 하면 복을 받는가?'라는 제목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보통 우리는 부자로 살면 복이 있다 합니다. 또 병 없이 오래 살면 복이 있다 합니다. 주님은 세상의 복을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계, 곧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죄와 죄책에 대한 반사작용으로 살지 않도록, 우리보다 더 강한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살지 않도록,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살면서 절박하게 살지 않도록, 냉소주의와 악의 속에서 생존을 위해서 살지 않도록, 그리고 자기 자아를 주인으로 모시면서 이기적으로 살지 않도록, 예수님은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내재하는 실제에 따라 살도록, 믿음과 사랑으로 살도록 예수님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훈련시키십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이 이 말씀을 매일 암송하며 믿음을 지켜왔던 것처럼, 나도 매일 예수님이 들려주신 팔복을 암송하며 묵상하길 원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애통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모실 수 없었던 대통령
그 어렵다던 황새 복원은 복원 7년 만에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세계 4번째로 인공번식에 성공했습니다. 그 후 황새의 수는 늘어갔습니다. 드디어 우리 자연에 복귀시킬 개체군 100마리 확보에 이르렀습니다. 끝내 내나라도 자연복귀 시점의 날짜가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되면 1971년 충북 음성에서 마지막 황새가 사라진 뒤, 거의 50년 만에 이루어진 셈입니다. 바로 이웃나라 일본은 이미 황새 복귀식에 왕세자 부부가 참석해 첫 황새를 자연에 복귀시켰습니다. 또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멸종위기 종, 미국흰머리독수리복원을 미국인들에게 대국민 선포를 했던 시기였습니다.
"우리도 대통령이 멸종 44년 만에 이루어지는 자연복귀식에 올 수 있을까?" 그때 나의 관심은 모두 그 하나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국내에서 조류학을 전공하시는 Y교수님께서 청와대에 초청을 받아, '한국의 새'에 대한 강연을 한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는 평소 K비서실장과도 개인적 친분을 쌓아온 분이라서 이런 기회가 쉽게 오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교수님께 부탁을 했습니다. 그 강연에 우리나라도 황새의 야생 복귀가 임박했다는 내용을 포함시켜 주시고, 대통령께 내가 쓴 초청장을 직접 전달해 줄 것을 당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강연장에 대통령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평소 같으면 대통령이 맨 앞줄에 앉아 강의를 경청했을 터인데, 그 시간 대통령은 관저에 머물러 계셨고, 정윤회라는 소위 문고리 3인방 때문에 골치를 썩고 계셨습니다. 결국 Y교수님은 내가 준 초청장을 K비서실장에만 전달하고 청와대를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잘 될 것만 같은 일이, 이렇게 꼬일 수가 없었습니다. 존 번역이 이 시점에 왜 아볼루온을 등장시켰나?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사실 나는 대통령께서 황새 야생복귀식에 참석하셨으면, 황새재단 공공법인화를 요청드리려고 했습니다. 그게 성사되었다면 나는 지금 자만에 빠진 자가 됐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나는 아볼루온에 의해 내 다리가 절뚝거린 채, 하나님 앞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12:7).
마귀의 시험
예수님은 40일을 금식하신 후,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이 돌들한테 말해서 빵 덩이가 되게 해 보아라.” 예수께서 신명기를 인용해 답하십니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끊임없는 말씀이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시험으로, 마귀는 예수를 거룩한 도성으로 데려가 성전 꼭대기에 앉혀 놓고 말합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뛰어내려 보아라.” 마귀는 시편 91편을 인용해 예수를 몰아세웁니다. “그분께서 천사들을 시켜 너를 보호하게 하셨다. 천사들이 너를 받아서 발가락 하나 돌에 차이지 않게 할 것이다.” 예수께서 신명기의 다른 구절을 인용해 응수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세 번째 시험으로, 마귀는 예수를 거대한 산 정상으로 데려갔습니다. 마귀는 선심이라도 쓰듯, 지상의 모든 나라와 대단한 영광을 두루 가리켜 보였습니다.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전부 네 것이다. 무릎 꿇고 내게 경배하기만 하면 다 네 것이다.” 예수께서 딱 잘라 거절하셨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그리고 세 번째로 신명기를 인용해 쐐기를 박으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 오직 그분만을 경배하여라, 일편단심으로 그분을 섬겨라.” 시험은 끝나고 마귀는 떠났습니다. 대신에 천사들이 와서 예수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크리스천들에게 기도를 직접 가르쳐주십니다. '시험에 들지 말고 다만 악에서 구하여 달라'(마 6:13) 간구하라 하십니다. 정말 우리는 시시때때로 마귀의 시험을 받을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깨어 기도하라 하십니다. 나는 매일 수시로 주기도문을 묵상하며 기도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순간도 마귀의 시험에 빠져들고 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육신의 만족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크리스천들에게 빵으로만 살지 말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라하십니다. 그렇다면 크리스천들은 매일 빵을 먹고 있듯이 말씀을 먹으라 하십니다.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늘 주님의 말씀을 붙들려합니다. 한번 읽었던 성경 말씀도 반복해서 읽을 때 그 말씀은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시험에 눈을 돌려보려 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매일 자신 앞에서 무릎 꿇으라 합니다. 어쩌면 현대를 사는 크리스천들은 그것이 돈이 될 수 있고,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 혹은 육체적 쾌락이나 명예욕이 될 수 있습니다. 꼭 우상을 앞에 놓고 무릎 꿇는 것 만이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천으로 나의 우상숭배가 돈이나 쾌락이 되어 세상의 정욕과 나의 명예욕에 이끌려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묵상과 기도를 통해 이 순례길을 다시 걷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