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나는 프로야구 선수 이땡땡

빨리 어른 되고 싶던 소년

by 먼소리뚜버기

1982년 대한민국은 36년 만에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었고, 1986년 아시안게임 개최지가 서울로 확정된 의미 깊은 한 해였다. 또한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국민의 고교야구에 대한 높은 관심과 사랑이 프로야구로 옮겨가는 계기가 된 해이기도 하다.

그 당시 산골 소년이었던 나는, 들판과 동네 뒷산이 놀이터였던 초등학생이었고, 빨리 나이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진 철없는 아이였다. 여름 방학 때 나무를 대충 깎아 만든 방망이와 고무공으로 프로야구를 흉내 내며 하루 종일 땡볕 아래서 검게 그을렸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은 각자 좋아하는 선수 이름을 자기 이름 대신 불러 달라고 했고, 나는 그중에서도 ‘이땡땡’으로 불렸다.

이제 나이 듦이 무엇인지 조금씩 실감하는 지금, 문득 세계는 그동안 고령화 문제에 어떻게 대비해 왔는지 궁금해졌다.


1982년 7월, 내가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던 그해 여름, 멀리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는 유엔(UN)이 제1차 세계 고령화 회의(World Assembly on Ageing)를 열고 있었다. 세계 곳곳에서 인구 고령화 현상이 뚜렷해지자, “이제 이 문제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국제적 방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모였던 것이다. 이 자리에서 유엔은 ‘비엔나 국제 고령화 행동계획(Vienna International Plan of Action on Ageing, 비엔나 강령)’을 채택해 앞으로 각 나라가 고령사회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큰 틀을 제시했다.

여러 연구에서는 비엔나 강령을 “고령화에 대해 처음으로 국제 기준을 세운 문서”라고 설명한다. 이 강령은 각 나라가 자기 문화와 여건에 맞게 정책을 만들되, 공통적으로 정부와 시민사회의 역량을 키우고, 노인의 잠재력과 자립 욕구를 존중하는 방향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보건과 영양, 소비자 보호, 주거와 환경, 가족, 사회복지, 소득과 고용, 교육 등 일곱 가지 영역에서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큰 원칙을 제시했다.

이 회의는 고령화를 단순히 ‘나이 든 사람이 많아지는 현상’으로 보지 않았다. 사람의 권리, 사회의 발전, 복지의 방향이라는 큰 틀에서 고령화를 함께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40년이 지난 지금(2025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부분이 많다. 비엔나 강령은 노인을 동정이나 시혜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다른 세대와 마찬가지로 동등한 권리를 가진 사회 구성원으로 본다. 노인의 존엄과 참여, 자율성과 보호를 국제사회가 함께 보장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또한 모든 연령대가 발전 과정에 전체적으로 참여하고, 혜택이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하며, 연령 집단 간의 자원·권리·책임 공유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복지는 단순히 돈을 지원하는 문제를 넘어, 건강, 주거, 돌봄, 사회참여 등 삶의 여러 영역에서 노인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포괄적인 권리라고 본다. 그리고 그 권리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나라별로 여건과 사정은 다르겠지만,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은 너무도 당연한 권리에 가깝다. 하지만 강령에서 이를 핵심 권고안으로 제시했다는 건 당연한 권리가 누구에게나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정확히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강령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부가적 권고안이 하나 있다. 바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라”는 부분이다. 고령화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정책을 만들려면, 감이나 추측이 아니라 실제 삶을 반영한 숫자와 정보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시대를 말한다. 그런데 40년 전 문서가 이미 “데이터 없이 좋은 정책은 없다”는 사실을 짚고 있었다는 점이 새삼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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