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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우주 May 06. 2019

청첩장 문구 정하다가 등짝 맞을 뻔한 사연

청첩장에 삼행시는 좀 심했나요?

청첩장을 펼치면 “두 사람이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려고 합니다”와 같은 짧은 문구가 들어있습니다.


이 부분을 뻔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다운 내용으로 적고 싶었습니다.

 

먼저 하객 입장에서 결혼식과 관련해 무엇이 궁금할지 고민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밥이 맛있는지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결혼식 어땠어?"라는 질문에 가장 먼저 나오는 대답은 “밥이 맛있었어(혹은 맛없었어)”입니다. 그만큼 밥은 좋은 결혼식과 별로인 결혼식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입니다.

 

밥 못지않게 중요한 건 내가 낸 축의금의 회수율입니다. 축의금은 낸 만큼 돌아온다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성립한 문화입니다. 하지만 가끔 강호의 도를 저버리고 축의금을 받고도 내 결혼식에 입을 닦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런 파렴치한이 아닙니다라는 확신을 준다면 사람들이 제 결혼식에 오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을 정리한 청첩장 문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번 받은 축의금,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돌려드립니다.
돌려받지 못한다는 걱정은 이제 그만.
밥은 시식한 웨딩홀 중에 가장 맛있는 곳으로 골랐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오세요.

 

여자친구는 우리가 무슨 사채업자냐고 했습니다. 당연히 여자친구한테 단칼에 거절당했습니다. 이렇게 청첩장에 적혀있으면 진짜 가고 싶을 텐데. 아쉽지만 여자친구의 의견도 중요하기에 다른 문구를 생각해봤습니다. 제 다음 의견은 ‘이왕 문구가 짧은 거 더 짧게 가자’입니다. 예를 들어 삼행시 같은.

 

결 : 결혼을 합니다.
혼 : 혼수는 아직 못했습니다.
식 : 식사는 맛있습니다. 많이들 오세요.

 

여자친구한테 등짝 맞을 뻔했습니다. 삼행시는 제가 생각해도 좀 그렇기는 하네요. 이번에는 둘이 만나게 된 계기를 문구에 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저와 여자친구는 독서모임에서 만났기에 그 내용을 담았습니다.

 

독서모임에서 읽으라는 책은 안 읽고 눈이 맞았습니다.
그때 안 읽은 책, 앞으로 평생 함께 읽으며 살겠습니다.
둘의 첫출발을 축복해주세요.

 

나쁘지 않았지만 독서모임에서 만났다고 하면 너무 딱딱해 보인다는 여자친구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독서모임에서 만났다고 하면 사람들이 저희 둘을 엄청 지적이고 똑똑한 사람인 줄 알거든요. 나이트나 클럽에서 만났다고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만 조금 더 말랑말랑한 내용을 담기로 했습니다.

 

고민하다가 제가 찾은 방법은 '결혼하는 마음 돌려막기'입니다. 결혼하는 마음에 썼던 문장 중에 일부를 따와서 청첩장 문구로 쓰자는 아이디어였죠. <100일 만에 결혼을 결심한 이유>에 있는 “눈물 나게 웃던 어느 , 문득 깨달았습니다. 행복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있구나. 내가 해야  일은 미래를 위한 대학원 진학이 아니라 현재를 위한 선택이구나에서 문장을 따왔습니다. 최종적으로 결정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눈물 나게 웃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많이 웃으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그 시작을 함께 축하해주세요.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했습니다. 사채업자풍의 문구였다가 급기야 삼행시까지 지었습니다. 하지만 문구를 어떻게 정할지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앞으로 어떤 결혼생활을 하고 싶은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어요. 결론은 우리답게 웃으면서 즐겁게 살자입니다. 둘이 만나면 실제로 끅끅거리며 웃는 일이 많거든요. 청첩장 문구처럼 결혼 후에도 항상 웃으며 즐겁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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