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라는 기쁨과 고통 8
앞선 글에서 내가 <최강야구>를 시작으로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 그렇게 된 이상 나는 직관을 봐야 했다. <최강야구> 시즌 2의 첫 번째 직관 경기 '최강 몬스터즈 vs KT 위즈'는 마침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고척에서 3월 19일 열렸다. 생전 열띤 티켓팅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지만, 열과 성을 다 해서 티켓팅 대전에 임했다. 참패했다.
그러나 티켓팅은 못해도 집요함은 나를 따를 자가 드물다. 목표가 생긴 이상 멈출 수 없었다. 무통장 입금 기한을 지키지 않은 표가 다소 풀린다는 매일 밤 12시를 기점으로 광클에 광클을 거듭했다. 그렇게 4층 좌석 하나를, 그 다음 날은 3층 좌석 하나를 어렵게 구했다. 디씨인사이드 최강야구갤러리에 승전보를 울렸더니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 다들 한마음으로 축하해줬다.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그러나 막상 직관 당일이 다가오자, 마음 한 켠이 불편해오기 시작했다. 나란 인간이, 생각보다 은근 혼자 뭘 하길 좋아하지 않는 까닭이다. 일례로 나는 '나 홀로 여행'을 그닥 즐기지 않는다. 심심하기 때문이다. 친구를 만나 굳이 영화관에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혼자 영화관에 갈 생각도 없다. (이쯤 되면 그냥 영화를 싫어한다고 봐야할 것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 혼자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K-1 서울 그랑프리 개막전을 보러간 일도 있지만, 그건 친구 Y가 갑자기 펑크냈기 때문이지 정말로 혼자서도 갈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막상 가서는 옆 좌석에 앉은 멕시코 남성과 바디랭귀지로 소통을 이어가며 낄낄거리고 왔다.)
그런데 야구는, 왠지 혼자 가면 안 될 거 같았다. 야구는 응원문화도 조직적이고 활달해서, 혼자 가면 쉬이 외로워질 거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구한 표인가. 이 미친 광클의 현장에서 연석은 구하기도 힘들 뿐더러, 난 가이 갈 사람도 없지. 내가 야구를 배우는 창구인 디씨에 다시 글을 올려봤다.
'직관 여자 혼자 가도 괜찮음?'
곧 댓글이 달렸다.
'ㅇㅇ 혼자 온 사람 많음'
'연석 못 구하면 일행 있어도 찢어져 않는 경우 많음 괜춘'
다 괜찮다는 의견이었지만, 막상 당일 아침이 되자 몸이 찌뿌드드했다. (그건 전날 과음을 한 탓이다.) 나는 과음을 핑계삼아, 그 사람 많을 고척돔에 가기 싫다는 결론을 내렸다. 혼자라는 외로움, 귀차니즘에 더해 공황 쇼크 경험자로서 1만 6000여명이 운집할 뚜껑 닫힌 실내라니… 하는 불안함도 엄습했다. 경기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예매 취소 버튼을 눌렀다.
그러곤 후회했다. 경기 결과가 너무 궁금한데, <최강야구>에서 결과가 공개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차가 걸렸기 때문이다. '어떻게 구한 푠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리고 뭣보다… 직관 그게 뭐라고 혼자서는 저어하던 내가 후회됐다.
그러던 즈음 4월을 시작으로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설핏 예매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웬걸. 자리가 텅텅 남아돌잖아? 전장을 방불케했던 <최강야구> 티켓팅과는 달랐다. 어라, 이거 진짜 한 번 가봐야겠는데. 그 즈음 고향팀 NC에 관한 관심이 모락모락 피어났기에, NC가 서울에 오는 날로 한 번 가야겠다 싶었다. 뚜껑 닫힌 고척은 공황 트라우마로 힘드니까, 무조건 잠실이었다. 직장인이라면 칼퇴가 아니고서야 힘들 화요일 오후 6시 30분 경기로 예매했다. 4월 18일 NC와 LG의 경기였다.
이날 나는 신촌에서 오전 11시부터 3시간 가량 소설 합평 수업을 듣고, 근처 프랜차이즈 중국집에서 도삭면을 먹고 잠실로 향했다. 일찌감치 야구장 근처에 도착해 카페에서 시간 죽이다가 들어가자는 심산이었다. 경기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핸드폰을 포함한 각종 전자기기 충전도 이빠이 해야 했다. 야구장에서 가까운 스타벅스 아시아선수촌점에 앉아 합평 수업에서 들은 내용을 정리하고, 퇴사자답게 요즘 구직 동향을 살펴보고, 다음 방송 준비를 위해 기사도 꼼꼼 읽었다. 여전히 기자인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어디야?
-야구장
-아니 선수단보다도 빨리 와 있는 건…
(그 때 시간이 오후 3시쯤이었으니, 홈팀인 LG는 몰라도 적어도 원정팀인 NC 보다는 빨리 와 있었을 거다.)
-퇴근 시간 때 움직이는 건 극혐이니까…
그는 마침 야구장 일회용품 근절에 관한 기사를 쓴다고 했고, 현장취재를 자원할 걸 아쉽다는 너스레를 한 차례 떤 후, 야구장 일회용품 저감 조치에 대해서 야구팬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일회용컵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야구장 내 캔 반입이 허용되고, 지난해 11월부터 플라스틱 일회용 응원용품 사용을 금지한 것 등에 관한 의견이었다. '야구보단 생존이 먼저 아니겠습니까…' 했다가 성의 없는 답변에 한차례 혼나고, '생존을 위해 적응 중.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라는 멘트를 구구절절 늘려 친구에게 전달했다.
오후 5시, 경기 1시간 30분 전. 스타벅스 옆 사보텐에서 김치카츠나베를 먹었다. 경기 관람에 집중하기 위해, 경기장에서 뭘 와구와구 먹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열성적으로 먹느라 입천장을 다 데였다. 후식으로는 스벅에서 휘핑 크림을 잔뜩 얹은 슈크림라떼를 테이크아웃했다. 그 정도의 휘핑이어야, 경기 관람을 앞두고 고무된 내 마음을 더욱 높이 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백팩을 매고, 총총 걸어 길 건너 야구장으로 향하는데 도중에 잠실학생체육관을 지나쳤다. 그 날은 서울 SK 나이츠 vs 창원 LG 세이커스의 KBL 플레이오프 4강전이 있는 날이었다. 와, 살다 살다 내가 농구장을 지나쳐 야구를 보러 가는 날이 오다니. 농구를 보고 싶어서 농구장 알바도 하던 내가!(나는 대학 1학년이던 2007년, 서울 삼성 썬더스의 홈구장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알바를 했다. 당시 삼성 썬더스는 농구 잡지 '점프볼' 선정 팬서비스가 최악인 구단이었다.) 농구장 앞도 경기를 기다리는 팬들로 북적북적했는데, 소싯적 기억이 모락모락 올라오며 걷는 발 대비 모가지가 느리게 따라왔다.
야구장 앞에서 지류 티켓으로 교환하고, '유니크 스포츠'라는 샵에 들렀다. 야구장 입구에 북적북적하는, 유니폼을 입은 인파들을 보니 나도 하나 사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오기 전에는 생각 못했던, 급뽐뿌였다. '유니크 스포츠'는 원정/홈 관계없는 일종의 야구 용품 편집샵이라, NC의 유니폼도 있었다. 원정 유니폼으로 하나 골라들고 계산을 하려는데 "마킹은 안하세요?" 라는 응답이 돌아왔다. 마킹을 하려거든 제일 좋아하는 '손아섭'의 이름을 새겨야겠지만, 거기까지는 왠지 이 나이에 주책…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 괜찮아요" 했다. 그러면서도 혹 몰라 재차 물었다. "이거 나중에 마킹만 따로도 가능한거죠?" "네, 가능하세요."
내가 예매한 3루 내야석 입장을 위해 3루쪽 출구를 통해 야구장에 들어갔다. 오전에는 하늘이 영 찌뿌드드해서 걱정했는데, 저녁 6시부터는 하늘이 점점 개면서 햇볕도 살풋 내려앉아 있는 꼴이었다. 야구장 문을 열자마자 탁 트인 개방감, 초록초록한 잔디에 파랑파랑한 하늘(묘사가 구리지만 정말로 이렇다)이 주는 어떤 동심이 있다. 농구장에서 알바를 할 때도 나는 간혹 비시즌에 사람없는 야구장으로 가서 텅 빈 필드를 내려다보곤 했는데 당시 '야구는 싫어도 야구장은 좋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돌아온 야구장에서, 선수들이 가득찬 필드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원정 더그아웃이 위치한 3루쪽에서 네이비 유니폼을 입은 NC 선수들이 저마다 스트레칭도 하고, 캐치볼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1루 쪽에는 예의 그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LG 선수들이 자기들끼리 수다도 떨고, NC 선수들과 인사도 하며 서 있었다. 초록 잔디와 붉은 흙, 파란 하늘에 각기 원색의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뛰고 노는 것 자체가 주는 개안한 듯한 기분이 있었다. 마치 어린이날 기념행사가 열리는 체육관(어려서부터 가보진 못했으되 TV 광고를 보고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었던)의 흥성거리는 느낌이 이와 같을까. 선수들이 노는 양을 가만 지켜보며 슈크림라떼의 슈크림을 쫍쫍 빨아먹었다. 저 멀리 외야에서 '다이노스 오빠'(a.k.a 손아섭)가 다리를 뒤로 쭉쭉 들어올리며 몸을 풀고 있었다.
통행이 편한 통로쪽 좌석을 간발의 차이로 놓친 나는, 통로쪽 좌석 옆 자리에 앉아 있었다. 통로쪽에는 예의 혼자 온 듯한 젊은 여성이 한 분 앉았다. 나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적잖이 위안을 주는 분이었다. 왼쪽에는 외국인과 아마도 내국인으로 보이는 남성 둘이 앉았다. 피자에 치킨에 맥주에 잔뜩 짊어지고 와서 와구와구 먹는데, 미리 배를 채우고 온 내 처지에서도 절로 군침이 돌만큼 압도적인 음식 양과 냄새였다. 나도 모르게 자꾸 눈이 힐끔힐끔 왼쪽으로 가려는데, 국민의례 시간이 되자 그들이 벌떡 일어서 나는 적잖이 놀랐다. 금발에 백인인 젊은 남성은 손을 가슴에 갖다대고 눈까지 꼬옥 감은 채로 국민의례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마도 한국인은 아닌 듯한(나중에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그랬다) 그 분이 내 몫의 국민의례까지 하는 것에 감동해, 나는 한국인 아닌양 가만 앉아 있었다.
이날 나는 마운드 코앞 자리에 앉아서 시종일관 투수만 바라보고 있었다. TV 중계로는 투수의 등과 볼끝만 보다가 3루 내야석에서 공이 날아가는 궤적을 옆에서 보니 타자의 방망이를 마주하는 투수의 맨몸은 위대했다. 결국은 야구는 투수가 주인공이라는 얘기도, 3시간 남짓한 그 긴 경기 내내 줄곧 관중들이 바라봐야 하는 것은 투수의 피칭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홀린 듯이 앉아 '2002년생 영건 듀오'인 NC 선발 이용준과 LG 선발 강효종의 피칭을 지켜봤다.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와인드업 동작이 다르다는 사실을, 불과 며칠 전에 책으로 배웠기 때문에 그 부분을 유념해서 봤다.
그러나 영건 듀오는 나란히 5이닝을 넘기지 못하고, 불펜 투수들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이어서 나왔다. 한 명의 투수가 1이닝을 다 책임지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경기 중반을 넘겨서부터 난 왼쪽에 앉은 외국인 남성의 쉴 틈 없는 수다덕에 여기가 야구장인지, 토익 LC 시간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말을 걸 엄두는 내지 못했지만, 옆에 앉은 자기 친구와의 대화가 거침없이 내 귓바퀴를 파고 들었다. 5이닝 이후부터 그가 자주 얘기한 것은 '쏘 매니 피처(so many pitcher)'였다. 본인이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관람도 했지만, 한국에서처럼 이렇게 많은 투수들을 올리는 건 첨 본다는 얘기였다. 이날 NC는 총 7명의 투수를, LG는 8명의 투수를 냈다.
나는 이날 처음으로, 야구장에 정말 다양한 응원 레파토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날은 주중 원정 경기라, NC 응원단이 오지 않은 날이었다. 그러나 3루 원정 응원석 여기저기서 작게 지방방송으로 타자들이 나올 때마다 각종 현란한 율동과 함께 응원가들을 불렀다. 타순이 두어번 돌고나니 나에게도 그 리듬과 가락이 익숙해졌지만, 오른쪽 옆에 앉은 여성처럼 율동까지 익히지는 못해서, 박수로 대체해 응원했다. '다음에는 꼭 응원가와 율동을 모두 익혀와야지' 하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6회를 넘기자 봄 기운에 점점 날이 추워져서, 나도 들고 온 라이더 자켓을 꺼내 입었다. 다들 가져온 바람막이나 블레이저 등등을 껴입는 추세였다. 그러다 불현듯, 내 앞 자리에 앉은 레이스 원피스 차림의 여성과 세미 정장 차림의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여성의 어깨에 남성이 자신의 자켓을 걸쳐주었다. 고함도 지르고 응원도 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가만 앉아 있거나, 화장실에 가는지 들락거리기를 반복하며 영 집중을 못하는 모양새였다.
생각해 보면 나에게 야구가 그랬다. 어려서는 주말이면 늘 집에서 하루종일 야구만 보던(그래서 TV 채널 선택권을 독식하던) 아빠의 뒤통수가 늘 미웠다. 고향팀인 삼성을 응원하는 아빠의 눈초리는 자주 투수 배영수의 뒤통수에 꽂혀 있었는데, 그것이 그 시절 아빠의 유일무이한 유희였을지언정 나에게는 지루함 그 자체였다. 커서 내 첫 야구 직관은 대학생 시절 남자친구와 함께였는데, 딱 저 커플과 비슷한 모양새로 앉아 있었다. 그가 좋아한다길래, 울며 겨자먹기로 잠실까지 왔지만 룰도 모르고 선수도 모르던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 앉아 있었다. 그는 대포 카메라로 연신 포커스를 맞추며 선수들 모습을 담느라 정신이 없어 내게 뭘 설명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날 경기는 얼마나 지리했으며(아마 두산 홈경기로 기억한다), 경기가 끝나고 난 후 나의 입은 얼마나 댓 발 나와 있던가. 나에게 야구는 남자들에 의해 타의로 노출됐으되 긴 경기 시간, 복잡한 경기 룰, 루즈한 공수 전환, 그 남자가 나 말고 야구에 집중한다는 느낌 때문에 갖는 헛헛함과 질투심 등으로 나를 뾰족하게 만드는 무엇이었다. 그러던 내가, 자의로, 그것도 혼자 야구를 보러 와 있다니. 세상에 참 장담할 일이란 없다 싶으면서도 그 시절 우리 아빠를 위시한 남자들이 내게 조금만 더 친절했더라면, 야구를 더 일찍 알았겠지 하는 생각에 참담해졌다.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들이 지나가는 새, 경기는 점점 더 재밌어졌다. 안타나 홈런보다도, 투수의 피칭이나 주루, 수비 보는 재미를 좋아하는 내게 딱 걸맞는 경기였다. 이날 반한 새로운 재미는 상대 주자를 잡는 포수의 송구였다. 당시 최다 도루를 기록 중이던 LG의 주자들을, NC 포수 안중열은 꽁꽁 묶었다. 안중열은 6회말에는 2루 주자 문보경을 견제사로 보내고, 8회말에는 신민재의 2루 도루 시도를 저지했다. 내내 앉아 있다가도 언제 주자의 움직임을 다 본 걸까 싶게, 민첩한 움직임이었다.
8회말 LG의 오스틴이 투런포로 4-4 동점을 만들자 9회, LG는 마무리 고우석을 등판시켰다. 어깨 통증에 시달리던 그의 올시즌 첫 등판이었다. 선발투수야 미리 예고되니까 누가 나올지를 알고 오더라도, 마무리 보직의 선수는 언제 볼 수 있을지 기약을 할 수가 없는데 내내 부상에 시달리던 선수가, 그것도 고우석이 올라오다니 로또라도 맞은 기분이었다. 이날 시속 156km까지 나오던 고우석의 공은 그야말로 '돌직구'였는데 타자들이 방망이를 갖다대기 무서워한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NC 타자 박민우-한석현-손아섭 모두 헛스윙 삼진으로 이닝 마무리.
결국에 연장전에 돌입했다. 콘서트 가서 가수가 앵콜곡 많이 불러줄 때의 느낌이 이럴까, 계탄 것 같은 기분이 되어 흐르는 콧물마저 완강한 콧볼의 힘으로 잠그고 응원에 집중했다. 10회초 1사 1, 2루. NC 김주원의 2루타로 1점을 올리고, 안중열의 희생플라이로 6-4까지 달아났다. 그러고 10회말, 3루 응원석 바로 밑에 위치한 불펜에서 누군가 걸어나가는데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용찬이다", "두목님이다" 검은 기운과 함께 등장한 이용찬이 홍창기를 상대로 스트라이크 2개를 척척 꽂아 넣더니 1루수 땅볼로 아웃카운트를 잡았다. 몸을 한껏 수그렸다가 펼치는 투구폼이 특이한 듯 기괴했는데 계속 눈길이 갔다. 이어서 문성주 외야플라이, 김현수 2루수 앞 땅볼로 경기 종료. 나는 그 선수를 좋아하기로 했다.
밤 10시 반을 훌쩍 넘겨,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에서 내려 고양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강남역을 배회하는 직장인들이 불콰한 얼굴로 이리 휘청 저리 휘청 걷는 가운데, 백팩 매고 NC 유니폼 입고 활보하는 내가 좀 웃겼다. 나는 승리의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데, 저들은 과연 그럴까 싶기도 하고 이 무슨 여름방학 같은 삶이냐, 하는 생각에 적이 감사하기도 했다. 버스에 올라서는 유튜브에 '이용찬'을 검색하며 나오는 영상이란 영상은 죄다 돌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