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은 맞이하기 전까지 그 모습을 모릅니다.
"검도는 칼을 휘두르기 때문에 팔만 두꺼워지는 운동 아닌가요?"
누구나 흔히 하는 생각입니다. 저조차도 고단자로 올라가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빠르게 검을 내리쳐야만 점수를 얻어낼 수 있고 그걸 위해서 더 많이 휘둘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련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대보다 어떻게든 빠르게 칼을 밀어 넣으면 내가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검도라는 운동의 본질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4단 심사를 2번 떨어지고 난 이후의 고민이 심할 때였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하던 동작이 옳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본을 찾아보고 다른 고단자분들이 검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더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알던 기본이 그저 단순한 기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검도는 발이 기초가 되는 운동입니다."
지도사범님께서 매번 하시던 말씀입니다. 검도가 팔을 이용해 검을 뻗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발의 움직임을 통해 몸을 밀어 넣고 그 밀어 넣음의 힘으로 인해 칼을 넣기 때문에 발이 기초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 기초를 검도를 배우는 맨 처음에 배우는 것이고 그 순간을 잡기 위해 상대와의 거리감을 익히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알던 기본을 다시 처음부터 바라보기 시작하자 모든 수련의 이유가 이해되며 그때의 지도사범님의 말씀이 어떤 의미에서 나오게 된 것인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잘 안다고 생각하더라도 아마 그 잘 알고 있는 시기는 내가 그 일을 접했던 그 시기가 기준일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내가 알던 것은 지금의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약점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합니다. 자신이 어떤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을 마치 부족한 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하여 많지 않은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다 알고 있다고 외부에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진짜로 잘 아는 사람은 다릅니다. 자신이 제대로 알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모두 다 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잘 알고 있는 부분은 자신 있게 전달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음을 전달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겸손이라고 칭하며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물론 잘 아는 사람들은 이래야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그 본질은 제대로 이해하기 전까지는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말입니다.
모든 것은 그 본질을 맞이하였을 때, 내가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달라져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그 깊이를 알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검도는 팔로만 하는 운동이라는 오해가 있듯이 그 본질은 접해보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것을 함부로 판단하고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설령 그 특정한 무엇을 오랫동안 연구한 사람이라도 그 무엇을 쉽게 말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은 그 어떤 것도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서 제일 잘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자기 자신의 마음도 모르는데 내가 아닌 다른 것을 어떻게 자세하게 알 수 있겠습니까.
겪어보고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주변의 것을 함부로 판단 내리지 말자. 요즈음의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그 어떤 일이든 제가 제대로 겪어보고 이해하기 전까지는 그 본질을 제대로 맞이하지 못할 테니 말입니다. 어떤 일이 어렵든 쉽든, 또는 불필요하게 느껴지든 재미없게 느껴지든 그 모든 것은 실제 맞이하기 전까지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매우 다를 수 있습니다. 아니,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잘 이해하기 위해 그 본질을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