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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lluda Feb 26. 2020

People Character 1- 늙은 나를 만나다.

만약 내가 내가 그리던 나의 미래의 모습을 지금 만난다면?

생각해보면 밴쿠버에 발을 디딘 첫날부터였다
영어라는 말이 잘 때까지 나의 온 신경을 자극한 것이.
영어.
한국에 있을 때도 손 놓고 있지 않았고 여기 와서도 학원까지 다니며 공부를 했는데 여전히 영어는 내게 넘기 힘든 산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도서관에 한국어 배우고 싶은 사람 있으면 알려달라고 내 연락처를 남겼다
뜻밖에 몇 명에게 연락이 왔고 그래서 알게 된 친구가 M이
사실 친구라고 말하기엔 그녀의 70이 넘은 나이가 너무 많긴 하다
하지만 그녀를 만날 때 나는 한 번도 그녀의 나이가 70이 넘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녀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그녀의 나이보다 젊다
외모, 생각,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모두..
세월은 그녀를 잠깐 잊고 있나 보다


우리는 두 시간 동안 한 시간은 내가 그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나머지 한 시간은 그녀가 나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기로 했다
나는 그녀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이유를 물었다
그녀는 한국 여행을 가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4개월 뒤에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그녀는 Survival Korean 배우기를 원했다
나는 만나면, 호기심이 생기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에겐 질문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그녀를 만나면 질문을 많이 한다
나는 그녀에게 제일 먼저 알고 싶은 한국 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실례합니다'
그녀가 제일 궁금했던 한국어였다
그리고 그다음은
'미안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의 짧은 대답으로 난 내가 그녀를 만나기 전, 그녀의 긴 인생이 궁금해졌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도서관에서 만나 각자의 언어를 서로에게 알려주었다
그 언어에 각자가 살아온 삶의 이야기와 지금 사는 이야기와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섞어가며..


어느 날 그녀가 한국행 비행기표를 내게 보여주면서 아이처럼 큰 소리로 웃는다
그녀는 내가 갖고 싶어 했던 웃음을 가지고 있다
나는 웃을 때 입만 웃어서 내가 웃고 있어도 내 눈을 가리면 내가 웃고 있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난 얼굴 전체로 웃는 사람이 좋다
그녀는 얼굴 전체로 웃는다
그녀의 눈, 코, 입이 다 웃는다
그렇게 온 얼굴로 웃으며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여행 계획표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늘 나를 놀라게 한다

그녀가 내게 보여준 여행 계획표.

한 달이 좀 못 되는 한국에서의 여행 계획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었다
나머지 일정은 대만, 싱가포르를 여행하고 그녀의 고향인 호주에서 두 달 정도 쉬다가 캐나다로 돌아오는 것이라 했다
소탈하고 여유 있어 보이지만 세심하고 꼼꼼하고 완벽한 그녀의 성격이 보이는 계획표다.
서울에 도착해서 목포, 홍도, 부산, 제주도, 그리고 다시 부산에서 대만으로 넘어가는 여정이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제일 가고 싶은 곳이 목포라 했다
유달산도 가 보고 싶다고.
한국에서 제일 가보고 싶은 곳이 목포 유달산이라니..
그것도 한국인도 아닌 외국 할머니가.
그녀는 늘 이렇게 나를 그녀에게로 끌어당겼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자신이 먹지 않는 음식을 한국말로 적은 종이를 보여 주면서 틀린 글자가 없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해산물과 닭고기를 좋아합니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는 안 먹습니다.'
이 말은 너무 어려워 한국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인사를 하면서 보여줄 생각이라고 했다
사실, 난 그녀가 여행 이야기를 했을 때 그녀의 친구들과 같이 가는 줄 알았다
그녀의 가족들은 호주와 캐나다 등지에 떨어져 있고 이곳에는 그녀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족이 아닌 친구들과 갈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혼자 가는 여행이라 했고 그 이후로 난 그녀의 여행이 걱정돼서 보다 적극적으로 그녀의 여행 준비에 동참을 했다
하지만 난 그녀가 여행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며 내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았다


4개월의 여행을 위해 그녀는 일 년을 준비한다
간단한 그 나라의 말을 시작으로 음식, 교통, 가고 싶은 여행지, 숙박 등등을 미리 준비한다
나는 그녀의 일 년 여행 준비 중 4개월을 함께 했다
난 함께 여행하지 않는 그녀의 한국 여행 가이드였다
함께 가지 못하기에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 참 많이 애썼던 것 같다
그녀는 가을과 겨울의 중간 즈음에 3박 4일 여행하는 사람처럼 단출한 여행 가방을 들고 여행을 떠났고 한국에 잘 도착해서 함께 이야기로만 먹었던 음식들을 먹고 있다고 종종 연락을 보내왔다
가끔 그녀는 그녀가 본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메일로 물어왔고, 난 함께 하지 못한 그녀의 여행 가이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그렇게 그녀는 4개월간의 여행을 마치고 호주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캐나다로 돌아왔다
나를 위해 준비한 캥거루가 프린트된 예쁜 테이블 러너와 핸드크림, 그리고 한국에서 산, 딸아이를 위한 가죽 동전지갑을 들고.
그녀는, 한국에서  Seasickness 때문에 배 대신 비행기로 이동을 해야만 했던 이야기, 한국의 편리한 교통수단 이야기, 제주도의 환상적인 자연과 음식 이야기, 대만의 깨끗한 지하철 이야기, 아름답고 깨끗한 나라 싱가포르 여행 이야기, 그리고 호주 산불 이야기 등을 하나하나 꺼내 놓는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표정도 그녀의 표정을 따라 웃었다 찡그렸다 한다
난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내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난 어렸을 때부터 내가 할머니가 되었을 땐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었다
그리고 난 몇 개의 단어를 손에 쥐고 늙어가겠다고 생각했다
그중의 하나가 여행과 글 그리고 여행하는 나라의 언어였다
그런데 그녀가 내가 그렸던 나의 미래의 모습과 꼭 닮은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이다
어느 날 그녀에게 말했다
"나는 너를 보면 나의 소울 메이트를 만난 것 같아."
그랬더니 그녀가 대답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
너도 선생님이었고 나도 예전에 선생님이었고,
너도 글 쓰는 사람이고 나도 글 쓰는 사람이고,
너도 여행 좋아하고 나도 여행 좋아하고ᆢ"
그랬다.
그녀와 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모두 공통분모가 있었다

이제 내겐  나와 벌써 10년 지기 친구인 내 딸 말고 나와 나이 차이가 참 많이 나는 친구가 한 명 더 생겼다.


그녀와 시간 날 때 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그녀와 함께 걷는 길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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