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육아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성소영 Jul 30. 2020

세상의 전부인 사람


아이를 낳은 뒤로 매일 눈물바람이다. 신생아 때는 힘들어서 울었는데 요즘은 감격스러워서 운다. 지난 일주일 사이에만 벌써 네 번이나 울었다. 나는 아이를 눈물로 키우는 것 같다. 아이와 낄낄거리며 웃다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면 남편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도 그럴 것이 감격의 순간은 느닷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동시에 아주 사소한 일이다. 무엇으로 눈물 흘렸는지 남들에게 낱낱이 이야기한다면 나는 속이 거슬릴 정도로 별로인 팔불출 엄마가 될 게 분명하다.


며칠 전에는 소파에서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를 보다 펑펑 울었다. 남편이 문득 "엄마 좋아 싫어?"라고 물었는데 잠시 우물쭈물하던 아이가 "... 쪼아"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이제 13개월인 아이는 아직 말을 할 줄 모른다. 엄마, 아빠, 맘마, 쪼쪼(공갈젖꼭지)처럼 자주 쓰는 단어를 내뱉을 줄은 알지만 의미 있는 대화, 그러니까 "엄마 좋아?" "응 좋아" 같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능력은 없는 거다. 그런 아이가 멈칫하다가 나지막하게 "쪼아"라고 말하며 나를 올려다봤다. 아빠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질문을 받았다는 듯이.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뚝 떨어졌다. 꼭 천원이 전 재산인 사람이 나를 위해 천 원을 전부 내어준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면 아이는 태어난 날부터 온 몸으로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일이 바빠 놀아주지 못한 날은 눈을 비비면서도 늦게까지 잠을 안 자겠다고 떼를 부린다. 내가 들어가 몸이 으스러지게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고 한참을 침대에서 같이 뒹군 후에야 겨우 잠이 든다.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종종 팔을 머리 위로 들어 하트를 그렸더니 요즘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면 짧은 두 팔을 머리 위에 갖다 대고 웃는다. 말을 못 하니까 그렇게라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매일 아침, 먼저 잠에서 깬 아이가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은 곤히 자는 엄마에게 기어와 뽀뽀를 하는 것. 요즘 나는 늘 축축한 볼을 하고 일어난다.


반면 나는 모성애가 깊은 엄마는 아니다. 조리원에 있을 땐 회음부가 아물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유 콜(젖 먹일 시간이 되면 신생아실에서 방으로 전화를 한다)을 거부했다. 그 탓에 젖이 돌지 않아 모유를 한 달도 채 못 먹였지만 하나도 미안하지 않았다. 이유식도 되는대로 해 먹인다. 나도 제대로 못 먹는 투뿔 한우나 유기농 채소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물론 사 먹이는 날도 많다. 매일 시판 이유식을 주문하기엔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더러 만들어 줄 뿐. 그뿐인가. 엉망진창이 된 몸, 중단된 커리어, 줄어가는 통장 잔고를 보면 다 출산을 한 탓인 것 같아 억울했다. 육아를 할 땐 주로 딴생각을 한다. 핸드폰 보고 쇼핑하고 책 읽고 친구 만나 실컷 수다 떨고 싶어 안달이다. 그리고 틈만 나면 어떻게 아이를 더 오래 맡길 수 있을지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그런데도 아이는 나만 본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누가 심장을 움켜쥐는 것처럼 먹먹하다.



사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이만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장사하는 엄마 아빠는 늘 바빴고 주양육자인 할머니는 첫 손주인 내가 여자로 태어나는 바람에 심기가 불편했다. 맏딸은 살림밑천일 뿐이니 둘째는 꼭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할머니의 염원이 통했는지 엄마는 이듬해에 아들을 낳았다. 그때부터 나는 귀한 손자를 돌보기 위한 사람이었다. 남동생이 장난감을 뺏어가도 내가 맞고, 지갑에서 돈을 빼가도 내가 맞았다. 귀한 아들에게 감히 소리를 지르고 싸웠으니까. "계집애가 누굴 닮아 이렇게 성질머리가 더럽냐 네 엄마 아빠만 아니면 벌써 갖다 버렸다"는 말을 밥 먹듯 했던 할머니는 시험을 잘 보거나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거나 대학에 합격했을 때만 나를 자랑스러운 손녀라고 불렀다. 그땐 그게 칭찬인 줄 알고 좋았다. 할머니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공부했다. 어버이날이면 엄마 아빠에게 쓸 돈을 줄여 할머니 선물을 사고 편지를 썼다. 나중에 커서 효도할게요. 공부 더 열심히 할게요. 할머니는 나에게 엄마예요.


늘 잘 보이려고 애쓰며 자란 어린 시절의 영향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인간관계에서 주로 약자였다. 함께하는 누군가가 조금만 언짢은 기색을 보여도 혹시 나 때문일까 고민하느라 밤마다 이불을 뒤척였다. 남편과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도 비뚤게 사랑을 표현했다. 말도 안 되게 작은 일로 크게 화를 내고, 그를 막다른 곳으로 몰아세워 나쁜 사람으로 만든 다음에야 싸움을 끝냈다. 이러면 내가 싫어지지? 착하게 굴지 않으면 나를 떠날 거지? 너를 더 사랑하게 된 다음에 나를 버릴 생각이면 그냥 지금 버려. 무언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하고 집에 돌아오면 정말 그가 나를 떠날까 봐 덜덜 떨며 울었다.  


그런 나에게 아이는 계속 사랑을 준다. 기분을 살피려고 눈치 보지 않고,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좋단다. 왜 우냐고 윽박지르고, 힘들다고 투정 부리고, 매달리는 손길을 뿌리치며 귀찮다고 등을 돌려도 계속 똑같은 사랑을 준다. 어떤 편견과 의심도 없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갖췄는지,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는지 재거나 따지지 않고 나를 사랑한다. 2년 전, 아이를 임신했을 때 정신의학과 오은영 박사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때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 “아이는 부모가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면 부모를 용서한다"는 거였다. 학대와 폭언을 해도, 말 못 할 깊은 상처를 줘도 아이는 부모의 사과를 받아준다고 했다. 부모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얼핏 환상처럼 들렸던 그 말이 비로소 무슨 의미인지 깨닫는다.


나에게 모성애는 저절로 우러나오는 본능이 아니라 받은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사명에 가깝다. 생전 처음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준 아이에게 내가 사랑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못되게 굴어도, 만에 하나 자기를 버리고 떠난 데도 단지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사랑할 아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그래서 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 아이를 낳고 나는 세상의 전부인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까,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은   완전히 틀렸다. 엄마인 내가 주는 사랑보다, 아이가 나에게 주는 사랑이 훨씬 크다. 부모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이야기는 이토록 많은 세상에, 왜 아이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드물까. 아이가 주는 조건 없는 사랑의 일화들을 자주 들었다면 나는 임신을 했다고 눈물 흘리지 않았을 텐데. 그 기간을 행복하게 보냈을 텐데. 좀 더 용감해질 수 있었을 텐데. 세월이 오래 흐른 언젠가는 아이의 삶에도 나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아지는 날이 오겠지. 그때가 되어 엄마를 외면하게 된 데도, 지난 일 년간 받은 사랑만으로 나는 충분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리랜서라 애 키우기 쉬울 줄 알았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