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사이로 어스름이 비치는 새벽이 좋았다. 불과 1년 전인데도 혼자 깨어 있던 그 시간이 아주 오래전 같다. 어느 날부터일까. 마음이 조금씩 무거워지고 아침 공기는 들어내서 털어내기 힘든 솜이불처럼 무겁게 느껴졌었다. 그러다 이렇게 마주한 아침 고요에 나는 낯설어 서성인다. 나의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던 것들이 처음 만난 사람처럼 어려워지고 조심스럽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점점 많아졌다. 예전 같으면 어떡해서든 그런 감정들을 털어내려고 노력했을 텐데 모든 게 거기까지였다. 체중조절을 하라는 건강검진의 적신호들을 보고서야 늘어난 체중처럼 무거운 감정들을 줄여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더는 미룰 수 없는, 그 처음이 새벽을 맞는 오늘이 되었다.
지난했던 작년 겨울, 맞닥뜨린 현실들에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피부트러블이었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일들이 불가능할 만큼 손가락들이 붓고 상처가 생겼다. 마음 편히 내밀 수 있는 손 상태가 아니었다. 트러블 난 손을 가리기에 급급했고 긴장과 스트레스에 내 피부는 민망할 만치 반응이 빨랐다. 손으로 하던 많은 일들이 멈추었다. 생각지 못한 변수들이 줄지어 나를 기다렸고 그저 버텨내야 했다. 더군다나 언제 다시 돌아갈지 확실치 않던 불안한 시간과 다시 수험생 집이 되어버린 공간 안에 남편의 부재가 생겼다.
평생 출장이라는 것이 드물었던 남편이 인도네시아로 파견 근무를 하게 되었다. 한 달로 생각하고 갔던 시간이 어느새 1년이 되어 간다. 남편이 없는 시간 고3 아이의 입시와 갑작스러운 이사가 맞물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했었다. 두어 달에 한 번씩 남편이 잠시 들어올 때마다 나의 체중은 늘어 있었고 갱년기에 힘든 나는 나대로 지쳐 있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할 만큼 안방 티브이가 늦게까지 켜져 있었고 두세 시는 되어야 잠이 들었었는 데 어느 날부터 한밤의 시간이 고스란히 사라졌다. 그렇게 좋아하던 드라마에도 흥이 나지 않았고 티브이 소리가 사라진 안방은 선풍기 돌아가는 바람 소리만 있었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에는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바깥 에어컨 실외기 소리에 한참을 꽂혔었다. 행여 소리가 윗집이나 아랫집에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닐까 전전긍긍했다. 이 정도면 작은 소리라는 점검을 받고서도 몇 날을 실외기에 꽂혀 나를 괴롭혔다.
티브이 소리가 사라지자 수면시간이 폭발했고 무기력해진 모습은 점점 추레해져 갔다. 엘리베이터 거울을 맞닥뜨리면 보정이라고는 없는 그대로 내 모습에 등을 돌렸다. 초저녁이 지나면 안방의 불은 일찍 깜깜해졌다. 빨리 잠이 들어 다음 날이 되기를 바랄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엔 뭔가 잘못된 거 같은 불편함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요일을 기다리는 드라마들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바깥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너무 잘 뛰려다 넘어졌다. 넘어진 채 꼼짝을 못 했다. 나도 아팠는 데 정작 내 마음은 다독이지 못했다. 그런데 마음보다 몸이 솔직했다. 나도 챙기라고, 나를 돌아보라고 몸은 계속 나에게 신호를 보내왔었다. 나처럼 생각이 많은 사람은 무언가를 할 때 생각을 잠시 걷어 내야 할지 모른다. 생각이 많으면 주저하고 용기가 숨어버린다.
집에서 나와 그냥 걸었다. 8월 지열은 뜨거운 데 어느새 하늘은 높아졌다. 이제 무기력해진 나와 타협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더 이상은 안된다고, 정신을 바짝 차리라고 나를 일으킨다. 새로운 계절에는 가벼워지는 것이 나의 목표다. 그것이 몸이든. 마음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