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습니다'라는 그 한 통의 연락
이직 의사를 밝히고, 마음속으로는 이미 게임업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사실 저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과연 내가 다시 저쪽으로 갈 수 있을까?'
'모바일 시장은 이미 경쟁이 치열한데, 나 같은 경력자가 들어갈 틈이 있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돌고 있었어요. 그래서 연락을 기다리는 기간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습니다. 실제로는 두 달이었는데, 제 체감은 두 달이 아니라 두 해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기적처럼 연락이 왔습니다.
“프로그램팀에 자리가 하나 생겼어. 면접 볼 수 있어?”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거의 반사적으로 '네. 할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연봉이 얼마인지, 처우가 어떤지, 이런 걸 묻기도 전에 그냥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게 바로 제가 이 화의 제목으로 붙이려는 말입니다.
'결핍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평소의 저라면 절대 이렇게 안 했을 겁니다. 조건 비교하고, 출퇴근 거리 따져보고, 연봉 테이블 확인하고, 기존 연봉과의 차액 계산하고, 아내와도 몇 번 더 상의하고,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해서 퇴사 통보 시점도 조정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는 안 그랬습니다.
그냥 바로 수락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지금 이 삶을 계속하는 건 못 견디겠다.”
이게 이미 제 안에서 가장 큰 기준이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핍이 기준을 바꿀 때
사람이 결핍 상태에 들어가면, 판단 기준이 달라집니다. 이론적으로 맞는 말, 평소에 내가 하던 태도, 원래의 나다운 선택, 이런 게 다 뒤로 밀립니다. 결핍은 사람을 좁게 만듭니다. 넓게 보던 시야가 한 지점으로 확 모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것만 채워지면 살겠다'라는 지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그때 가장 큰 결핍은 ‘게임을 다시 만들고 싶다’, 그리고 ‘가족과 떨어지지 않고 살고 싶다’였어요. 일은 일인데, 그 일이 내가 버틸 수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다는 갈망이 있었어요.
일하면서도 '그래, 이거는 내 일이지'라고 말할 수 있는 상태. 그게 너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걸 충족시켜 주는 단 하나의 요소만 던져줘도 바로 반응했어요. 그게 바로 '프로그램팀에 자리가 났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건 굉장히 위험한 상태이기도 합니다. 결핍이 깊어지면, 우리는 전체를 보지 않고 조각만 봅니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오는 게 먼저지.'
그렇게 하면 일단 숨은 쉬게 됩니다. 하지만 나중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직 처우 협의를 하면서 그게 실제로 드러났죠.
너무 빨리 퇴사부터 말해버린 날
2차 면접까지 다 보고 나오니 저는 마음이 아주 가벼워졌습니다.
'아, 이제 여기서 나가도 되겠다.'
'이제 게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이제 일본을 왔다 갔다 안 해도 된다.'
이 기쁨이 너무 컸어요. 너무 컸다는 건, 너무 앞질러 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보통이라면 순서는 이렇게 되죠. 면접을 본다. 합격 통보를 받는다. 처우 협의를 한다. 조건이 맞으면 퇴사 통보를 한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했습니다.
면접 본다. (합격하겠지? 하고) 마음속으로 이미 합격 처리. 처우 협의는 대강 들었으니까 분명 잘 될 거라고 낙관. 재직 중인 회사에 먼저 "저 퇴사하겠습니다” 통보. 그다음에 이직하려는 회사와 처우 협의.
이게 뭐냐 하면.. 몸이 먼저 나가버린 상태입니다.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지금 회사에서는 더는 못 버티겠다는 감정이 컸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결핍이 끼치는 영향입니다.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가 '어디로 가는 게 맞을까?'라는 질문보다 앞선 거예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좁은 통로로 몰아넣어버렸습니다. 퇴사는 통보해 버렸고, 이제 뒤로 가기 힘든 상태에서 이직 회사와 연봉 협의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이 구조에서는 내가 협상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미 ‘퇴로 없음’을 만든 상태니까요.
그러면 회사는 알아차립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수준은 XX 정도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이 벌어졌습니다.
우리 쪽 레인지가 이 정도예요
이직하려는 회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받고 계신 연봉이 꽤 높아서요. 저희가 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저는 당연히 "조금만 더 안 될까요?”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미 퇴사를 밝혔고, 다시 가족과 게임업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꽉 잡고 싶었으니까요.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단호했습니다.
“그건 어렵습니다.”
그 순간 기분이 묘했습니다. 이미 다니던 회사에는 '나가겠다'라고 해놓은 상태. 새 회사에서는 '연봉은 이 수준'이라고 선을 그은 상태. 저는 그 중간에 끼인 상태. 이게 바로 결핍 상태에서 성급하게 움직였을 때 생기는 전형적인 난감함입니다.
“아.. 또 울며 겨자 먹기인가..”
이 감정이 확 올라왔어요. 예전에 팀째로 강제로 이직하듯 옮겨야 했을 때, '선택지가 없으니까 따라간다'라고 생각했던 그 감정과 비슷했어요. 물론 이번에는 제 의지가 들어간 선택이었기 때문에 더 복합적이었습니다.
“내가 만든 상황이잖아.”
“누가 하라고 한 거 아니잖아.”
“그래도 이건 해야겠다 싶었잖아.”
그래서 더 삼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삼켰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마음은 떠났고, 돌아갈 생각은 없었으니까요.
마지막 날, 그분이 해준 말
그렇게 퇴사를 앞둔 마지막 날, 조직에서 가장 높은 분이 저를 따로 불렀습니다.
“이직한다면서. 어디로 가? 어떤 일로 퇴사를 결심했어?”
저는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해외 장기 출장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수록 무너졌습니다. 저는 돈도 중요하지만,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좀 더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게임 개발이 좋아서 이쪽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분은 제 말을 가만히 듣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한국에서요, 돈이랑 시간을 둘 다 넉넉하게 쓰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이 말은 제가 10년이 지나도 잊지 않을 말입니다. 이건 단순한 사회 비관론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구조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그분이 하신 말을 조금 더 풀어보면 이랬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시간을 써야 한다.
(장기출장, 야근, 주말근무, 책임업무, 스트레스 감내)
시간을 많이 갖고 싶으면, 돈을 포기해야 한다.
(야근 적은 곳, 복지 좋은 곳, 하지만 연봉은 낮음)
이 둘을 동시에 최대치로 가져가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기업 임원 / 창업 대성공 / 상속 / 특수 전문직)
대부분의 사람은 이 사이 어디쯤에 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게 정답이냐'가 아니라 '나는 어느 조합을 감당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이 말은 그때는 조금 아프게 들렸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돈도 어느 정도 있고, 가족과의 시간도 지키고, 일도 내가 좋아하는 거 하고.. 그렇게 살 수는 없는 거야?”
이 말은 이상적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그렇게 살 수 있으면 가장 좋죠. 하지만 그분이 말씀하신 건 '현실에서 지속 가능한 구조'였습니다.
“너무 한쪽만 결핍된 상태로 선택하지 말라.”
이게 핵심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저는 돈이 결핍돼 있었고, 가족과의 시간도 결핍돼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업도 결핍돼 있었습니다. 결핍이 세 개나 쌓여 있으니 그중 하나만 채워줘도 바로 반응하는 상태였던 거죠. 그분은 그걸 정확히 보신 것 같아요.
“지금은 그중에 하나가 너무 비어 있으니까 그걸 좇아간 거지, 결국엔 또 다른 쪽이 비게 될 거다. 그러면 또 옮기고 싶어 진다.”
이 말은 10년이 지나서 돌아봐도 맞습니다. 저는 그 이후에도 계속 '내 균형은 어디냐'를 찾으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결핍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가
이 화에서 정리하고 싶은 건 이겁니다. 결핍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아주 강력한 에너지입니다. 그건 장점입니다. 결핍이 없으면 우리는 변화를 안 하거든요. 불편해야 움직이고, 목말라야 물을 찾고, '이건 아니다' 싶어야 이직도 준비합니다. 그런데 결핍은 동시에 판단을 좁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직 통보를 먼저 하고 연봉을 나중에 협의하는 일도 벌어지는 겁니다.
'이 회사만 나가면 돼!'가 돼버리면, '그다음 회사의 조건은 괜찮은가?'는 질문이 희미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결핍이 생겼을 때 움직이는 건 좋은데, 그 결핍이 만든 ‘서둘러야 한다’는 신호를 무조건 그대로 믿지는 말자.
최소한 조건 2~3개는 끝까지 확인하자. 그리고 지금 비어 있는 걸 채우다 보면 다른 쪽이 다시 비게 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자. 그럼 좀 덜 흔들립니다.
“아, 이건 원래 이렇게 되는 거구나.” 하고요.
그때 그분이 해준 말 중에 가장 뼈에 남은 건 마지막 문장이었습니다.
“정답은 없다. 너한테 맞는 균형을 찾는 수밖에 없다.”
저는 그 말을 그때는 ‘충고’로 들었는데 지금은 ‘허용’으로 들립니다.
“너는 돈이 조금 더 필요한 사람 같구나.”
“근데 너는 가족이랑 있는 시간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네.”
“그럼 너는 앞으로도 여러 번 조정하게 될 거야.”
“그게 네 리듬이야.”
이 말이었구나 싶어요. 저는 여전히 찾는 중입니다. 돈이 아예 부족하지는 않은 상태. 가족과도 너무 멀어지지 않는 상태. 그래도 내가 재밌다고 느끼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상태.
이 세 개를 모두 100으로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각각 70, 70, 70으로 맞춰놓고 사는 삶. 혹은 어느 시기에는 80-60-60, 어느 시기에는 60-80-60으로 바꿔가며 사는 삶. 그게 결국 현실적인 삶의 모양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핍 #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