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시절인연
엄마에게로 향하는 목소리는 늘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있다.
언제나 밝고 씩씩하게, 하늘을 보며
행복해지는 시간인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난 가장 힘들 때,
엄마를 향해 달려가는 걸지도 모른다.
그 두려움과 쓸쓸함과 허무함과 외로움의 끝에
한껏 엉엉 울고 나면,
공허함과 배고픔과 추위가 몰려와서,
집으로 가다가 말고 들러
엄마가 바라보고 계실 세상을
하늘을 햇살을 강물을 함께 보면서
참으로 편안히 따스히 머물렀다.
그럼 마음도 이내 평온해졌다.
많은 공간 중에서도
내가, 엄마가 좋아하는 한옥의 분위기라서,
그 여름날의 핑크빛 나무가 아름다워서,
들어가는 순간 푸르름 속에 날 담아버린 곳이라서,
너무 좋아해서 엄마가 자주는 못 먹게 말리던 홍시가 메뉴로 있던 곳이라서,
어린 시절부터 푸른 잔디에 야외 결혼식을 꿈꾸던 그 장면과 찰떡같았던 뒷마당이 있는 곳이라서,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그 잔디에 시선이 탁 트이고 화장실 문의 글귀가 마음을 틔어주며,
어린 나를
다시 어른으로 되돌려 주던 그날이 떠오른다.
다시 겨울이, 어둠이 찾아오며
엄마가 문득 보고 싶어진 나날에
자꾸만 발길이 엄마에게로 향했고,
그날은 아픈 나를 챙기려던 엄마와 같은 엄니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또 엄마에게로 곧 보내게 될지 모르는 내 아들 앙이와 셋이 함께 즉흥적으로 갑자기 떠난 길이었다.
지난번보다 맛난 호떡을 사 먹으며 걷고, 남기고 싶던 사진을 남겨주며, 엄마에게로 엄니를 처음 인사시키고 돌아가던 길이었다.
찬란히 눈부신 햇살이 영롱한 하늘과 반짝이는 빗물이 섞인 그 순간의 차창 밖에,
그곳이 또다시 나의 마음을 잡았다.
언니에게 내가 그간 말하던 곳이라며 소개하며 그곳에 들어섰다.
처음으로 앙이와 푸른 뒷마당을 거닐며, 하늘을 보며 그날 아침의 내 글을 떠올렸다. 엄마에게 대견한 나를 칭찬해 달라고, 엄마도 한을 푸는 것은 나로 인해 이미 충분하다 말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 불안은 아빠와 아이들이 가게 될 때 외롭지 않도록 나도 함께 데려가기 위함인 거냐고,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무서워하지 않겠다, 충분히 행복 속에 살다 가겠다고, 나를 토닥이던 그날, 자리로 돌아가 구름 낀 통 창의 하늘보다 좁고 길게 강을 바라보는 자리로 옮겨 마음을 다독이던 순간, 엄마의 눈을 꼭 닮은 대표님이 주섬주섬 내 신발을 정리해 주셨다.
반가운 마음에 지난여름의 인사를 이어갔고,
짧은 그 시간에 엄청난 인연의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두 손은 포개진 채, 두 눈은 빨개진 채,
나의 묘묘초와 같은 두두당에서 인연이 닿았다.
이후의 일정에 아쉬워하시며 다음 날의 재 방문을 제안하셨다. 나도 신비한 이야기의 연속에 취해 흔쾌히 수락하고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꿈이었나 생시였나 싶었지만, 대전 가는지 어찌 알고 아침부터 연락 온 썬의 부탁에 준비를 하고 도움을 주는 기쁜 마음을 싣고 달렸다. (그러고 보니 전날은 썬언니ㅎ)
다시 도착한 그곳에는 전날 강아지와 함께 가는 바람에 앉지 못한 나의 최애 자리에 대표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정신없는 나를 따스히 차분히 맞아주셨다. 그저 나란 사람이 궁금했다고 나의 이야기를 들려달라 계속해서 질문해 주셨다.
10년 전 이맘때쯤의 은하사의 큰스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인연'에 대한 대표님의 스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많은 얘기를 나누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도 책을 읽고 깊은 생각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리며 정-말 눈물 나게 기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 마음을 담은 편지를 받고 대표님은 엄마 같은 얼굴로 나의 섬세한 마음을 하나하나 다 찾아내주셨다. 평소라면 그냥 집에 가서 보시라고 부끄러워했을 내가 모든 포인트를 짚어내주시는 기쁨에 어린 딸처럼 조잘조잘 설명을 덧붙이고 있었다.
캄캄함에 정신을 차리고 엄마인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앙팡을 떠올리며 다음을 기약하고 일어섰다. 다음에는 댁에서 보이차를 맛 보여주고 싶다는 말씀에 10년 전 은하사에서의 그 따스한 차가 다시 한번 떠올랐다. 그리고 그 자리로 나를 들여보내주셨던 그 아주머니도 떠올랐다.
나의 큰스님은 '간절한 나로 인해 이어지는 것'이 인연이라 했다. 대표님의 스님은 때에 따라가야 할 연과 오는 연이 있다고 하셨단다. 그것을 '시절 인연'이라 한다고.
나의 그 시절과
때마침 지금 이 순간에 나타난 이 신비한 인연은,
결국 모두 나를 다시 한번 살리기 위해
내 안의 깊은 내가, 내 안에 있는 엄마가
온 세상에 간절히 빌고 있기 때문일 것만 같다.
고로,
역시 나는 나의 방패다. 10년 전의 그날처럼,
나는 홀로 씩씩하게 잘 다녀올 수 있을 것만 같다.
엄마와 함께 본
하늘에 띄워 날리고
햇살에 말려 날리고
강물에 흘려 날 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