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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일도무사히 Sep 06. 2023

한 번에 5천 장… ‘회의록 지옥’에 빠지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어떻게 달았나 <국회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②

마부작침은 〈국회 예산회의록 전수분석〉 프로젝트를 2018년, 2019년, 2020년 예산까지 3년 연속 진행했다. 각 프로젝트마다 분석했던 국회의 예산안 심사 회의 회의록은 대략 5천 장 정도였다. 2018년 회의록 4,703장, 2019년 5,453장, 2020년엔 4,795장이었다. 


이 회의록들이 각 분석의 기본 데이터였다. 


처음엔 회의록을 꼼꼼히 본다면서 프린트해서 보려고 했는데 종이 양을 감당하기 어려워 중단하고 PC로 읽었다. OCR(Optical Character Recognition, 광학문자인식) 프로그램으로 활용해 PDF 파일의 회의록에서 텍스트를 추출해 정리해보기도 했으나 각 회의마다 어떤 정형화된 패턴을 찾아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읽고 또 읽고 다시 찾아 읽는 ‘회의록 독해’의 반복이었다.


왜 이렇게 많은가 하면 당연히도 회의가 많기 때문이었다. 


국회의 예산안 심사 순서를 보면 먼저 상임위원회에서 예비심사를 한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본 심사를 진행하고 예결위 심사까지 마친 예산안을 국회 본 회의에서 표결해 확정하게 된다. 다만 국가정보원처럼 예산안 내용까지 기밀로 취급하는 기관을 담당하는 정보위원회는 회의는 물론, 회의록도 공개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정보위원회를 제외하면 회의록을 확보할 수 있는 상임위원회는 총 17개였다. 


위원회에서는 소위원회를 먼저 열고 여기서 세부 논의와 심사를 마친 뒤 전체회의를 열게 된다. 이 소위원회와 전체 위원회 회의도 각각 여러 차례 회의를 하게 되니 회의록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의결이 진행되는 본 회의까지 더하니 5천 장 안팎에 이르렀다. 매년 국회의 예산안 심사를 분석할 때마다 그 정도의 회의록을 읽어야 했다는 건데 또 다른 문제는 이게 기본 데이터였다는 데 있었다.


김00 의원: 영일만 횡단 구간은 사업 적정성 재검토 용역이 끝나서 총사업비 변경 승인 검토 중에 있는 사항입니다. 이게 끝나면 기본설계 예산이 필요하니 신규로 반영해 주면 좋겠습니다.
손00 차관: 제가 보고받은 바에 의하면 2016~2017년 7월 적정성 재검토한 결과 추진이 부정적인 것으로 나왔습니다. 2016년, 17년 계속 기본설계비 20억 원씩 반영됐는데 다 불용된 바 있고 2018년 10억 원 역시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00 전문위원: 수용 곤란한 것으로 정리됐습니다.


위 내용은 2018년 11월 8일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예산심사소위원회 1차 회의 기록 중 일부다. 여기 등장하는 인물은 소위원회 위원인 국회의원과 국토교통부 제1차관, 국토교통위원회 전문위원이다. 영일만 횡단 사업, 사업 적정성 재검토 용역, 총사업비 변경 승인 검토, 신규 반영, 추진 부정적, 불용, 수용 곤란… 그냥 글자 그대로 보더라도 생소한데, 김 모 의원이 영일만 횡단 구간 예산을 신규로 반영해 달라고 하니 국토부 차관은 부정적이라고 답하고 전문위원은 수용 곤란이라고 정리했다는 걸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회의록에는 이것 말고 더 언급도 없었고 뭐가 문제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어떤 회의든 참석하지 않고 사후 회의록만 보면(아무리 잘 기록했다 하더라도)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른바 ‘입말’을 그대로 옮겨 적은 걸 보면 발언의 맥락까지 담겨 있지 않았을 때가 대부분이요, 줄임말이나 생략한 말들도 적지 않다. 또 회의 참석자들만 갖고 있는 자료를 토대로 한 발언도 많고 (28쪽에 나온 표를 보면은… 이라든가, 거기 셋째 줄의 그걸 보면… 이라거나) 회의 외의 다른 자리에서, 혹은 회의를 멈춘 때에 나눴던 논의를 바탕으로 하는 말들도 적지 않다. 


즉, 회의록을 ‘해독’하거나 ‘해석’이 필요할 때가 많았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회의록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이해하고 익숙해져야 했다. 국토교통위원회 회의라면 이 국토위 소관 예산 심사에서 다루고 있는 각 사업에 대해 알아야 했다. 정부가 제출했던 예산안과 설명자료를 살피고 상임위 예비심사 전후에 나오는 전문위원의 검토 보고서와 심사 보고서도 봐야 했다. 관련한 기사나 작년 예산을 찾아보는 것도 필요했고 그러고도 이해할 수 없는 건 각 부처의 담당 공무원에게 묻거나 심지어 회의 참석자에게 그 뜻이 뭐였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저 5천 장 회의록 독해(이것도 엄청 많은데…)의 최소 두세 배에 해당하는 노력을 더해야 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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