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전환' 어떻게 가능했을까
북적북적 420: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 듣기
"누구나 삶을 전환하는 시기를 겪는다. 나처럼 정리해고로 인한 실직이 전환의 계기가 될 수도 있고, 건강 문제 혹은 결혼이나 이혼, 출산과 육아 등 가족 문제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 가지 공통점은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찾아와 크게 내상을 입힌다는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삶의 전환기를 환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현명하게 넘길 수는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성숙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서 말이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동네 마트에서 과일 피라미드를 쌓고, 커피숍에서 예쁜 하트가 올라간 라테를 만들기 위해 연습하고, 어떤 손님이 나를 찾을까 기대하며 운전을 한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호기심을 채우고 삶의 전환기를 가꿔간다."
날이 훅 더워졌습니다. 6월 초입만 해도 아직은 시원하네 싶었는데 30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이어지고 있네요. 장마 때까지 가겠습니다. 한국이 좁다고 하지만 강원도 산속에서 잠시 살았던 때만 해도 서울과는 참 다른 날씨를 경험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람이란 참 때로는 섬세하고 연약하여 조그만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날씨 말고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게 많죠. 배우자의 상실이나 실직 같은 게 대표적입니다. 여기 누구나 선망하는 세계 최고의 기업에서 임원까지 하다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된 사람이 있습니다. 16년 간 몸 담았던 회사에서 이메일 한 통으로 나가라고 한 것도 충격인데, 그다음 이 사람의 행보가 특이합니다. 몇 개의 일자리를 찾아 'N잡러'가 됐습니다. 도대체 이 사람 뭘까요?
오늘 북적북적에서는 정김경숙(로이스 김) 작가의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를 함께 읽습니다. 꽤 유명한 분이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작가 소개를 일부 옮겨옵니다.
"전 구글 디렉터, 현 실리콘밸리 N잡러, 모토로라 코리아와 한국 릴리의 마케팅팀과 홍보팀을 거쳤고, 2007년 구글 코리아에 커뮤니케이션 총괄 임원으로 합류해 12년간 근무했다. 나이 오십이 되던 2019년 미국 실리콘밸리로 떠나 비원어민으로서는 최초로 구글 본사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팀의 디렉터를 역임했다. 나이에 한계를 두지 않고 계속해나가는 실행력으로 유퀴즈, 세바시 등에 출연하며 언론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고 그로부터 정확히 6개월 안에 16년 동안 근무했던 구글에서 이메일 한 통으로 정리해고됐다.."
말 그대로입니다. 하루아침에 그것도 이메일 한 통으로 정리해고가 됐고, 그날부터 사내 계정이 삭제되면서 회사에서 튕겨져 나가 버렸습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인데 작가는 다음날 예정했던 여행을 떠나고 함께 간 친구들에게 곧바로 정리해고당했단 사실을 커밍아웃합니다. 이것도 범상치 않은데 그 뒤는 더욱 그렇습니다.
"로이스, 구글이 정말 좋은 직장인 건 맞아. 너는 구글과 너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지. 네가 2-3년 뒤에 구글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겠다고 했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았어. 그때는 네가 구글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지고 직급도 더 높아져서 절대 스스로 그만둘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이번에 회사가 먼저 네 손을 놓아준 게 아닐까? 두둑한 퇴직금 패키지까지 주면서 말이야. 얼마나 고마운 일이니?"
"그래, 나는 원래 하고 싶은 일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빈 종이를 꺼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적기 시작했다. 오래 고민하지도 않았는데 목록은 금방 10개를 넘어섰다.
꼭 하고 싶었지만 회사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
-슈퍼마켓에서 일하기: 특히 트레이더 조의 크루 멤버 되기
-공유 운전 플랫폼(우버나 리프트) 운전사 되기
-스타벅스 바리스타 되기
-인앤아웃 버거에서 일하기
-레스토랑 바텐더로 일하기
-아동 도서 전용 서점에서 일하기
-도서관 사서로 일하기
-파머스마켓에서 한국 음식 팔기
-마사지사 되기
-치과 등의 병원 접수대에서 일하기
-꽃집에서 일하기
-반려동물 돌보기
-아이들 돌보기
-어르신 돌보기
-시니어센터 배식 자원봉사 시간 늘리
쭉 적어놓은 목록을 살펴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나 자신이 서비스 혹은 제품이 되어 고객과 만나는 일이다. 둘째, 고객을 감동시키는 법을 배울 수 있는 회사나 장소에서 일하는 것이다.(일하면서 그 시스템을 몸으로 배울 수 있다면 더 좋다.) 셋째, 생활과 밀착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다. 넷째, 영어를 사용하고 영어 연습을 할 수 있는 일이다.
목록을 작성하다 보니 정말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었다.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언제 올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마음이 들떴다."
언젠가는 다 할지 모르지만 그중 몇 개를 실천합니다. 그렇게 실리콘밸리의 N잡러가 됩니다. 물론 작가의 상황은 그저 취준생 혹은 구직자, 실직자와는 좀 다릅니다. 당장 생계가 곤란하거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이력이나 경력이 필요한 건 아니라 정말로 '새로운 도전'이니까요. 그저 '갭이어'에 내 맘대로, 내키는 대로 산다와도 결이 좀 다릅니다. 이미 그는 그런 사람이었고 자기답게 사는 방식의 실천이었습니다.
"주 15시간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트레이더 조에서 1년도 안 되어 매니저가 된 지금은 일주일에 5번 출근해 주 45~50시간 일하고 스타벅스는 일주일에 3번 출근해 20시간 정도 일한다. 리프트는 처음에는 일주일에 20시간 정도 운전했지만, 다른 이들이 바빠지면서 지금은 짬짬이 시간이 빌 때만 운전을 하고 있다.
컨설팅까지 네댓 개의 일에 영어 공부, 운동, 자원봉사...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엄청난 것 같지만 시간은 쪼갤수록 더 잘게 쪼갤 수 있다는 걸 걸 경험했다. 시간이 없어서 못 할 건 없었다. 일단 시작했고, 시간을 조금씩 조절하면서 하다 보니, 내가 원하는 계획을 지금까지는 번아웃 없이 잘해오고 있다."
그렇게 1년을 꽉 채워서 알차게 보내고 그는 다음 잡을 준비하는 듯합니다. 고작 50대 중반이니까요. 작가가 대단한 사람임엔 분명하지만 저도, 다른 누구라도 조금 더 빨리, 혹은 천천히라는 차이만 있을 뿐 겪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전환이 요구되는 상황에 갑자기 내몰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1년 동안 600회 넘게 리프트 운전을 했고, 1만 잔이 넘는 음료를 만들었다. 키보드 위를 부드럽게 날아다녔던 뽀얀 손은 상품을 진열하고 커피를 내리고 운전대를 잡으면서 두툼하고 거칠어졌다. 1년 전과 달라진 손 모양은 나에게는 훈장 같은 것이 되었다. 그 어떤 타이틀도 없이 '자연인 로이스'로 산 알찬 1년을 격려하는 그런 훈장. 그리고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쳐도 잘 해결할 수 있다는 약속의 징표."
저도 사무직 종사자인데... 몸으로 일하고 활동하는 것의 대단함과 만만찮음을 어렴풋이는 압니다. 몸 쓰는 알바를 오래전이지만 여럿 해봤고 여러 이유로 중단된 '풀러스'라는 차량 카풀 서비스를 신청해 몇 명 손님을 출퇴근길에 태워봤던 경험도 있습니다. 필요한 건 체력, 그리고 작은 하나라도 시작해 보는 의지입니다.
작가가 전작부터 시종일관 강조하는 건 체력, 그리고 (영어), 새로운 도전입니다. 내가 좀 바뀌어야 하는데, 내 인생이 좀 달라져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들, 의지는 있지만 실천이 잘 안 된다는 분들은, 나의 작은 습관과 나의 몸이 바뀌면 마음은 따라간다는 경험을 한 번씩은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생각,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또 해봤습니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