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행복하니?" 어색한 듯 자주 사용하게 되는 이 질문은 다른 질문과 좀 다르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하면, 일반적인 대인관계에서 우리는 어떤 질문을 우회적으로 할 수가 있다. "너는 얼마나 부자인가?"라는 질문은 오히려 사는동네, 아파트 평수, 타는 승용자, 아버지 직업 .... 얼마든지 돌려가면서 물어볼 수 있다. 잘 생각해보라. 일상적으로 일반인들의 관심이 되는 대부분의 사안들이 그렇게 간접적인 질문을 통하여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 그러나 행복만은 질문이 "너 행복하니?"라고 묻는 것을 제대로 대체할 방법이 없다. 그것은 각자의 행복에 대한 정의를 각자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백인백색, 세상에는 사람 수만큼 행복에 대한 정의가 존자해는지 모른다.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자신이 정의하고 그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인지 모른다. 백프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행복에 대한 관점이 유사한 경우도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로 넌즈시 타인의 행복에 관심을 표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밥은 먹고 다니냐?", "애들은 잘 크냐?" "부모님은 아직 살아 계셔?" "어디 살어?" "아픈데는 없지?" 대충 이런 질문들이 그것으로서 질문자는 동시에 의 행복에 대한 소박한 정의(?)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동시에 "당신도 행복에 대한 관점이 나랑 비슷하지?"라는 전제가 은연중에 깔린 안부인사인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개 크게 기분 나쁘거나 개인사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기분이 들지않는 것은 그런 맥락때문이다. 행복에 대한 세부적인 정의는 사람간에 일치하기 어렵지만, 석가모니, 칸트, 노자 ... 세상의 내로라하는 철학자 현자들조차 인정한 바처럼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바라는데, 사람들은 누구나 사람들의 삶이란게 거기서 거기이다 보니, 사람들은 자신의 끊임없이 자신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타인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요점정리 삼아 마무리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행복에 대한 정의를 마음속에 품고 그 "행복의 정복"을 위하여 매일매일 노력하지만, 타인과 행복에 관한 정보교환에 대해서도 열려 있는 존재"라고 정의 하고 오늘의 글은 이쯤에서 마치자. 좀 편안한 마음으로 좀더 길게 자세히 멋을 갖추어가며 글을 쓸 수 있는 행복한 환경의 미래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