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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ㅣ소박ㅣ Jul 06. 2021

중국어학과 졸업생이 학점은행제를 선택한 이유

나는 왜 평생교육이라는 제도에 흠뻑 빠지게 되었나

본래 4년제 중국통상학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나는 성격 자체가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성격임이 뚜렷하다. 중학교 때 중국어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방과 후 수업도 중국어를 신청을 했었다. 제2외국어 과목도 중국어였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때의 감정만 중학교에서의 추억이라고 한다면 당연 중국어 선생님이셨다.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기에 앞서, 과를 나눠야 했다. 


나는 [중국어 + 이과]를 선택했지만, 수포자가 되고 싶었다. [중국어 + 문과]로 전향했는데, 제2외국어 [중국어+문과] 반에 인원이 초과되어 어쩔 수 없이 [일본어 + 문과] 반으로 배정이 되었다. 나는 태생부터 히라가나가 외워지지 않는 머리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본다. 이 머리로 중국어는 어떻게 했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고3 수험생 시절, 일본어 영역에 전교 10등을 했었다. 물론 뒤에서. 그냥 대학 갈 생각만 하고 공부하는 척만 했던 시절이었다. 고3 수능이 끝나고 크리스마스이브날, 나 홀로 등교했다. 담임선생님과 함께 진학할 대학을 정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왜 중국통상학과를 왜 선택했었는지 의문이다. 이는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의문이었는데,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이다. 


여느 고3 친구들처럼 공부해야 할 것 같아서 공부했고, 성적을 올리라고 해서 성적을 올리고자 노력은 했지만 가고 싶었던 대학이나 학과가 뚜렷하진 않았다. 그래도 고향은 벗어나라는 학원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나 성적에 맞춰서 선택한 것이 50%에 속하고, 물론 이때도 중학교 중국어 선생님 때문에 해당 학과를 선택한 게 50% 되는 것 같다. 


나는 중국통상학과에 입학했다가 중국어학과로 졸업했다. 중국통상학과로 1, 2학년을 보내고, 3학년 때 교환학생을 다녀오니 학과 이름에 "통상" 두 글자가 없어져버렸다. 학교에 대한 이상한 반항심이 생겨버렸다. 학과장님은 나를 좋아하셨는데, 아니 나보다는 내 동기 친구를 더 좋아하셨다. "어떻게 우리한테 한마디도 없이 이렇게 바꾸실 수가 있지?" 우리는 더 삐뚤어져(사실, 교수님도 힘이 없으셨다. 학교가 시스템상 바꿨을 뿐, 심지어 우리에게 이야기한다고 한들 우리가 뭐 대수라고... 그냥 반항심이다.) 중국어 수업이 아닌 무역 수업을 더 듣고 다녔다. 


그리고 4학년 마지막 학기에 무역 수업과 함께 교양수업을 들었는데, 이때 이수한 과목이 바로 평생 교육론과 평생교육 경영론이었다. 이 과목을 들으면서 오랜만에 조별과제의 지옥을 겪어보기도 했다. 



평생 교육론 교양과목을 수강하면서


앞서 말했지만 나는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이상한 성격이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교양 과목 교수님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준비하고자 했다. 4학년 막 학기 더 이상 과목을 수강할 수 없어 자격증은 물 건너갔다. 다른 동기들은 무역회사로 취업을 준비한다고 들었지만 나는 평생교육원에 지원했다. 


평생 교육론 과목을 강의해주셨던 교수님이 좋았던 건지, 교수님의 강의가 좋았던 건지, 4년이 지난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당시에 배웠던 평생교육이라는 제도가 내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대학교 과정이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학점을 쌓아서 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으로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제도가 신기했다. 


심지어, 강의를 이수하는 동안에 내가 고등학교 때 이 제도에 대해서 알았다면 다른 길을 걷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다. 그리고 평생교육의 길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으며, 졸업 후 평생교육사 자격증을 취득하고자 알아보다가 평생교육원에서 학습 설계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3차례나 지원하게 되었다.


평생교육원에 취직하고 학습 설계사가 되어보니


2차례 면접을 보지 못하고 서류에서 떨어졌다. 3번째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나는 대학 때 배웠던 평생교육에 대해서 열심히 준비해서 면접에 응했고, 학습 설계사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는데, 막상 내가 입사하고 나서 평생교육법, 학점은행제 관련 교육을 받아보니 내가 알던 평생교육은 평생교육이 아니었을 정도로 심화된 내용이 머릿속에 콱콱 박혔다.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았고, 알지 못하던 것들은 더 많았다. 집에 가서 하나하나 외우려니 너무 많아 버거웠다. 학생들에게 직접 과정 안내를 해줘야 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는 게 학습 설계사인데, 나는 히라가나조차 외워지지 않는 머리는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닌, 그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여기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교육을 받으면서 느꼈던 것이며, 지금도 계속해서 느끼고 있는 거지만 학습 설계사라는 직업에 있어서 한 사람의 인생의 한 부분을 설계해주며 설계에 맞게 과정을 동행한다는 것에 대해서 어마어마한 비전을 느끼고 있는데, 학생 한 명 한 명 상담하며, 학습설계를 그리면서 그 그림을 함께 칠해가는 과정이 정말로 아름답다고 볼 수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남의 인생설계만 해줄거야?


학습자분들의 시간에 맞춰 근무를 하다 보니 남들 일할 때 일하고, 남들 쉴 때도 일해야 한다. 주변 친구, 지인, 가족들은 이렇게 일하고 있는 나를 보며, 언제까지 그렇게 일할 건지, 워라벨을 걱정하며 진심으로 물어본다.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학습자 한분 한분 나에게는 소중한 인연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다. 신입으로 학습 설계사를 시작했을 때에는 학습자들과 소통을 하는데에 큰 어려움을 많이 겪었으나, 4년이 지난 지금, 학습자분들의 소중한 꿈을 위해서 함께 달린다는 것이 매우 설렌다. 


내 몸이 쉽게 지치지 않는다면 이 일을 계속할 예정이다. 물론 나는 쉽게 지치지 않는다. 학습자분들의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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