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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하의 날들 Sep 14. 2024

이모



엄마보다 두 살 아래였던 이모는 엄마의 둘도 없는 동생이자 친구였다. 둘은 하루의 많은 시간을 전화 통화를 하며 보냈고 서로가 모르는 각자의 일상은 없었다. 그렇게 목소리로 자주 안부를 물었는데도 모자라, 이모는 종종 우리 집에 놀러 와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도 가고 반찬도 만들었다. 7남매 중 유독 엄마와 사이가 좋았던 건 여자 형제라 그럴 수도 있었고, 바로 밑 동생이라 그럴 수도 있었고, 그냥 성격이 잘 맞아서 그럴 수도 있었다고 엄마는 흐뭇하게 말했다. 둘 사이가 그리 돈독했으니 자연스럽게 가족끼리도 왕래가 잦았다. 우리 가족은 명절 때 외가에 들렀다가 으레 이모네를 들러 하루 이틀을 더 놀다 집에 돌아오는 게 당연했다.



나는 그런 이모를 좋아했다. 이모는 내게 엄마처럼 현명하게 조언해 줄 수 있는 어른이자, 가끔은 엄마에겐 차마 못 할 얘기도 할 수 있던 친구였다. 이모에게 내가 모르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즐거웠다. 나는 엄마가 수줍음 많고 글 쓰기를 좋아했던 소녀였던 것도, 동생들을 잘 돌보는 인정 많은 언니이자 누나였던 것도 이모를 통해 처음 알았다. 유독 형제 중 조용했던 엄마와 활발했던 이모는 성격이 달라 어렸을 때는 다툼도 종종 있었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다 추억이지, 하며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모는 늘 즐거워 보였다.



내게 이모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외가에서 긴 터울로 태어난 조카였던 나를 이모는 참 이뻐해 주었고 나도 그런 이모가 좋았다. 내가 엄마와의 갈등으로 울며 이모에게 전화했던 밤, 내가 자던 사이에 몰래 이모가 엄마를 내 뜻대로 설득해 준 적도 있었다. 나는 어렸을 적 그런 이모와 옆집에 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언젠가 수줍게 그 생각을 말한 내게 이모는 환하게 웃으며 ‘어느새 우리 조카가 다 커서 그런 생각도 한다’라며 엉덩이를 토닥여주었다.



언제부턴가 이모의 흰머리가 늘어갔지만 그래도 이렇게 잔잔하게, 앞으로도 함께 우리는 안부를 주고받을 거라 생각했다. 사랑하는 이 세상과 많은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갈 거라 생각했다. 정말 이모와 내가 나눌 이야기는 쭉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다. 난 정말 늘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이모는 작년 12월 31일, 새해를 하루 앞두고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나버렸다.



사실 이모는 몇 년 전부터 온몸의 신경이 굳어가는 희귀병을 진단받아 투병해 오고 있었다. 이모가 달라진 모습을 보이길 싫어해서 나는 가끔 문자로 내 일상을 혼자 떠들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짧게 오던 대답마저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읽었다는 표시를 보면 반가웠다. 많이 아프지만 치료를 꾸준히 받고 있다고 했고, 나는 막연히 이모가 언젠가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웃을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내가 이모를 보러 달려간 곳은 모든 것이 생경한 응급실이었다. 한밤중에 자는 듯 떠났다는 이모를 앞에 두고 엄마는 실신할 정도로 오열했고 나 역시 이모와 함께 한 많은 추억이 떠올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 건 마음에 구멍이 생기는 것 같다. 시간이 흘러도 커다랗게 뚫린 구멍을 채울 수 있는 건 없었다. 아마 희미하게 무뎌져 가는 게 최선으로 보였다. 내게는 후회가 남았다. 이모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싫어해서 투병을 시작한 뒤 아무도 만나지 않으려 했다. 나는 많이 변했다는 그 모습조차 그저 보고 싶었지만, 이모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전해 듣고는 안부를 전해 듣는 것으로 만족했다. 응급실에서 마침내 마주한 핏기 없는, 너무 그리웠던 얼굴을 봤을 때는 그런 결정조차 내 이기적인 안일함이었나 싶어 끝없이 가슴이 아려왔다.  



 나는 다음 생을 믿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갑작스레 우리의 시간은 끝났고 함께 한 많은 추억과 기억에는 원하지 않던 슬픔이 덕지덕지 붙어버렸다. 요즘도 나는 잊고 살다 생각나면 울고 그리워한다. 그러다 또 잊고 살고, 또 추억하고, 그리고 기억한다. 몇 년 뒤에도 난 아마 그렇게 공기처럼 습관처럼 그리워하는 일을 할 것 같다. 그게 지금은 꼭 내게 주어진 몫 같아서.


추석이야, 이모
오늘은 더 보고 싶다.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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