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본질을 생각하기
오랜만에 대학 동창회에 나갔다. 익숙한 얼굴도, 처음 보는 얼굴도 뒤섞인 자리에서 서로 안부를 묻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밤이 깊어질 무렵, 한 후배가 조심스레 다가와 조언을 구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미 얼큰하게 취해 있었고, 그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도 흐릿하다. 아니, 어렴풋이 기억은 나지만 애써 떠올리지 않으려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그날 대화 중 유독 또렷하게 남은 건 하나다. 그 후배가 아직 《디자인의 디자인》이나 《로고와 이쑤시개》를 읽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책 두 권쯤 안 읽은 게 뭐 그리 대수인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두 권은 디자이너로서의 첫걸음을 내딛을 때, 꼭 한 번은 거쳐야 한다고 여겨지는 필독서다. 디자인을 공부했다면 누구나 추천받았을 만한 책이다. 그런 책을 아직 읽지 않았다는 건, 마케팅 전공자가 《포지셔닝》을 모른다거나, 영문학을 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읽지 않은 것과 비슷한 일이다. 사회에 나와 아무 문제 없이 잘 디자인하고 밥벌이를 하고 있는데 기본 소양 책을 읽지 않은 게 뭐가 그리 큰 문제가 되는 걸까?
디자인의 디자인과 로고와 이쑤시개에서는 어떤 내용을 전달하고 있을까? 기본적으로 디자이너가 학생 때 배우는 디자인, 프로세스, 디자인과 문화 등에 대한 고찰을 이야기하고 있다. 디자인을 하기 위한 프로세스부터 디자인을 할 때 어떤 생각과 무엇을 고려하며 진행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디자인이란 물건을 만들거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생생하게 인식하는 것이며, 뛰어난 인식이나 발견은 생명을 지니고 생활을 영위하는 인간으로서의 기쁨과 긍지를 갖게 해준다.
- 하라켄야, 『디자인의 디자인』, 안그라픽스
디자인 프로세스라는 또 다른 널리 알려진 허구의 개념이 있다. 이 단어는 실제 디자인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단일한 통일성을 암시하지만, 사실 디자인 프로세스라는 것은 상황과 제품에 따라 수없이 다양하게 각색되어 나타나기 마련이다.
- 존헤스켓, 『로고와 이쑤시개』, 세미콜론
다만 문제는 디자인을 배우는 학생이든 현업의 디자이너든 ‘디자인’ 그 자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과제를 성실히 해냈지만 과연 스스로 디자인과 그 프로세스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있었을까. 디자인이란 무엇이고, 우리는 왜 이 과정을 거치는지 자문해 본 적이 있었는지 말이다. 대부분은 주어진 과제를 충실히 따라가며 손이 닿는 대로 작업하고 결과물을 완성한다. 그 안에 어떤 프로세스가 작동했는지, 그 방식이 효과적이었는지 실험해보지도 않은 채, A+을 목표로 달려가는 경우가 많다.
디자인을 정의해 본다는 것은 내가 배우는 것들을 단순히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고 해석하는 일이다. 결국 자신만의 디자인 정의를 만들 가는 과정이야말로 디자이너로서의 색을 만들어주는 핵심이 아닐까 싶다. 사회에 나아가 그저 흐름에 떠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을 바탕으로 디자인을 구현해 나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결국 오래가는 디자이너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필수 교양서들을 읽는 일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예를 들어 『로고와 이쑤시개』에서는 디자인 교육에서 흔히 인용되는 설리번의 말,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주장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이처럼 기본이라 여겼던 사고 틀에 균열을 내는 책들이야말로 디자이너로서의 사고의 폭을 넓혀준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은 설득력을 잃어 갔다. 우리는 더 이상 사물이 작동되는 방식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심지어 이해할 수도 없게 되었고 이러한 기술이 담긴 제품은 몰개성적인 형태로, 혹은 유행이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마음대로 바뀌는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다.
- 존헤스켓, 『로고와 이쑤시개』, 세미콜론
“정말 교수님이 한 말이 맞을까?”, “책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왜 다르게 가르쳤을까?” 같은 의문은, 우리가 무심코 받아들인 ‘당연한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 비판적 사고의 습관은 디자인이라는 행위와도 깊이 연결된다.
예컨대 BX에서는 ‘A 브랜드가 스스로 혁신적이라 말하지만, 정말 혁신적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브랜드의 실체를 들여다보게 된다. UX에서는 ‘현재의 휴대폰 자판 배열이 정말 편리한가, 아니면 단지 익숙해졌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인가?’ 같은 질문이 새로운 사용 경험을 발굴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디자이너는 바로 이런 당연함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으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그 외 디자인 필독서를 읽으면 무엇이 좋을까? 만나기도 힘든 디자인 구루라고 불리는 분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다. 그들은 디자인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디에서 출발해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 디자인을 통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지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한다. 그들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기술이나 스타일을 넘어선 깊은 사고의 구조를 만날 수 있다.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그 동기가 사회 쪽에 있다. 사회의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석해나가는 과정에 디자인의 본질이 있다.
- 하라켄야, 『디자인의 디자인』, 안그라픽스
어울림이란 디자이너가 만들어내는 물건과 주위와의 관계입니다. 그것이 잘되어 있는 상태를, 저는 어울림이라고 부릅니다. 어울림을 모르면 사물의 윤곽을 그릴 수 없죠. 바꿔 말해서 주위 사물과의 관계성이 있어야만 사물에 윤곽을 긋는 게 가능해집니다.
어울림이란 문맥적이죠. 앰비언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격부터 사람의 마음까지를 포함해, 특정 환경에 적합한 어울림을 생각하는 일이 디자인입니다.
- 나오토 후카사와 -
이러한 정의들을 접하며 '나는 디자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다 보면 디자인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가능해진다. 아직 자신의 언어로 디자인을 정의해 본 적이 없다면 거장들의 사고는 그 출발점이 되어줄 수 있다.
그래픽 디자인이라면 하라 켄야의 말처럼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문제를 찾아내고, 그 문제를 스스로의 관점에서 정의한 뒤 풀어가는 연습을 해볼 수 있다. 제품 디자인이라면 사물과 그 주변의 관계에 집중해 '어울림'을 고려한 디자인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이런 사고의 흐름이 쌓여갈수록 우리는 단순한 ‘작업자’가 아니라 디자인을 이해하고 구현해 내는 사람으로 조금씩 성장해 간다.
그냥 컴퓨터 앞에서 앉아서 작업만 하는 오퍼레이터의 영역이 아닌 디자인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을 하고 자신만의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모여 다른 사람들은 설득할 수 있는 디자인이 된다.
훌륭한 선택안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디자이너는 너무도 많다. 하지만 실제 비즈니스에서 의사 결정자에게 OK사안을 받아내는 것이 바로 문제다. 디자이너들은 비즈니스 언어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비즈니스와 문화를 이끌어나간다는 맥락에서 자신의 디자인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곧 좋은 디자인을 실제로 구현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영국의 브랜딩회사 울프 오린스의 CEO 칼 하이젤번-
결국 디자인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 생각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사고의 폭은 넓어지고 자신만의 주관이 생긴다. 디자인의 본질을 고민하는 일은 곧 내가 하는 ‘업’의 본질을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 생각들이 쌓여 나만의 철학이 되고, 무엇이 옳은 디자인인지,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생긴다.
『일의 감각』에서 조수용 발행인은 지금도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 ‘무엇을 본질이라 여겨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일한다고 말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나만의 디자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스스로의 관점을 세워가야 한다. 결국 중요한 건 ‘디자인하면서 생각하는 일’, 그리고 ‘생각하며 디자인하는 일’이다.
결국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건 하나다. 디자이너라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 그 질문을 무시한 채 결과만 만들어내는 일은 결국 오퍼레이터로 남는 길과 다르지 않다. 디자인의 업, 디자인이라는 행위 자체의 본질에 가까워지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은 디자인 필독서를 읽는 일이다. 책을 통해 디자이너로서 어떤 시선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돌아보고, 다시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끝은 그런 마음을 잘 담아낸 아래 문장으로 대신하려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하고 싶다면 그 일과 관련된 주변의 상황과 역사에 호기심을 가지고 알아 가는 태도’다. 자신이 서 있는 토대는 반드시 누군가의 심혈이 깃든 노고와 창조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 토대를 만든 사람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 토대 위에서 일할 수 없고, 자신도 그 토대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지 않으면 그곳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
- 나가오카 겐메이, 『디자이너 생각 위를 걷다』, 안그라픽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