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알아감에 있어서 상대의 성향을 파악하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이해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없다면, 오해라는 것은 어느새 까끌까끌하게 올라오기 시작하고 이내 뾰족한 가시로 자라 찔리기 십상이다. 비단 이 문제가 둘 중 한쪽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는 걸 요즘 오래간만에 또 배우고 있다.
"상처를 받은 것은 나야"라는 말을 내세운 서운함이 처음엔 작은 균열에서 슬금슬금 새어 나오다가, 이내 금세 틈을 벌리우고 샘처럼 콸콸 솟아나기 시작한다. 관계의 지속 여부를 고민하게 되는 것도 이 지점에서 부터이다.
첫 만남에서 조금의 친분으로 나아가기까지, 서로의 '처음'은 정성스럽고 조심스럽게 뿌려지고 다져졌을 것이다. 그랬던 '관계의 씨앗'이 공감되지 못한 채 발아조차 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일은 생각보다 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람과 대화할 때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한다. 시종일관 똑바로 바라보기에는 쑥스러움이 커서 얼굴이 발그레해지곤 하지만, 눈빛에서 읽어내는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을까?
때론 눈의 마주침이 불편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관계로의 가능성을 열고 만남의 자리까지 온 사람들 사이에서 눈빛의 언어는 강하다. 서로 입을 닫은 침묵의 순간에도 눈빛은 여전히 말을 하고 있다. 서로의 다정을 느낀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고 그렇게 마주할 수 있는 마음은 결코 독한 마음을 치켜 뜬 것이 아닐 것이라 알아차리는 마음에서 이미 행복감은 차고 넘칠 것이다.
내가 마음 주는 상대가 나와의 대화에서 눈을 마주침에 주저함이 없었던가 조심스레 생각해 보곤 한다.
고개를 돌렸다면 그것이 그 사람의 쑥스러움이었는지, 부끄러움이었는지, 아니면 불편함이었는지, 기피였는지는 대화의 자리 정반대 편에 있는 사람만이 절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이 지점에서 또 우리의 관계가 잘 이뤄지고 있는 건가를 직접 물어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일기도 하겠지만 천천히 기다려보기로 하자.
섣부르게 성큼 가까이 코 앞까지 한번에 다가간다면 상대는 준비없이 자기 안의 소리가 다 들려지는 것 같아 불편해질 수도 있다. 그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는 걸 망각하지 않기로 하자.
서둘러 가까워지고 싶은 욕심을 비워내고 기다리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시간의 더께가 충분히 쌓여야 가능해지는 친밀한 마음들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찐친', '베프'가 되기까지는수많은 세월을 싸우고 울고 웃고 안아주어야 한다. 그 시간의 터널을 함께 지나온 친구들을 떠올리며, 거저 얻어지는 '쉬운 '것'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느 진실의 문구를 생각했다. 진정한 사람의 관계에는 그들만의 여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정이든, 사랑이든 함께 가는 여정 중에, 내가 바라보는 상대가 나를 '마주' 바라보는 상황 안에 놓이게 된다면, 싱긋 웃어주자.
당신을 바라보는 그 눈빛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들었는지 "이젠 정말 몽땅 다 알겠다"는 눈빛으로.
서로의 시선에 잠시 머무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