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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을 앞에 두고

by 소피아절에가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고 사는 사람의 삶은 어떤 것일까

어스름이 찾아올 때쯤,

자기만의 방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는다

마음속 꼭꼭 닫아 둔 서랍을 고이 열어 침잠한다

깊이 더 깊이

지금 여기 이 순간 이곳을 감지하지 못한다

시공간의 확장만이 있을 뿐

나란 존재는 희미해진다

오직 그것만 있을 뿐

오늘 저녁도 그것을 찾아 침잠한다

깊이 더 깊이

짙어졌던 어스름이 서서히 걷어지고

지금 여기 이 순간 이곳, 나란 존재는 선명해진다

투명해진 저녁을 다시 서랍 속에 숨겨둔다

깊이 더 깊이

어스름은 다시 또 찾아올 것이고

나는 나만의 서랍을 열 것이고

숨겨둔 저녁을 다시 꺼내

깊이 더 깊이 침잠할 것이다

그 투명해진 저녁을 더 투명하게 만들면서



(한강의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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