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레터에서 시작된 편지글에 대한 감상

by 이다희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어느 주말의 일이었다.


그날 나는 서울로 취미생활을 나간 참이었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 올라타 있는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사람들과 식사해야 하는 사람이 파도처럼 출렁이는 길을 지났다. 그날은 마침 날이 맑았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 환절기면 으레 그렇듯 바닥으로 낮게 기어가는 기분이 왜인지 나쁘지 않았다.


내세울 직업 하나 없이 변변찮게 생활하고 있는 요즘 들어 내가 서울로 올라간다고 함은 십중팔구는 대학로 연극거리로 나간다는 소리다. 거기에 취미생활을 즐기러 간다는 말이 붙으면 십중팔구라는 말도 의미가 퇴색되어 버린다. 오죽하면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있는 동네 친구 Y와는 동네에서 만나는 것보다 대학로에서 만나는 것이 더 쉽다.


아무튼 서울로 도착해서 얼굴에 바깥공기 한 번 쐬어주고 맑은 하늘 한 번 눈에 담았다. 먼 길 왔는데도 작은 가방 하나 들고 있지 않은 수상쩍은 모양새로 마로니에 공원을 배회하다 보니 시간은 평소처럼 발 빠르게 지나가 버린다. 좋은 날씨를 뒤로 하고 컴컴한 지하로 기어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즐겁게 공연을 관람하고 지하에서 나오니 낮에 공연을 잡은 탓에 여전히 하늘이 밝다. 저녁에 또 공연을 보지 않으니, 평소라면 곧장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겠지만, 그날은 그러지 못하고 미적거리며 공연장 로비로 나왔다. 공연장이 수용하는 관객 수에 비하면 한없이 비좁은 로비에서 어정쩡하게 자리를 지키다 얼결에 공연장 바깥으로 밀쳐졌다. 사람 많은 곳만 들어가면 평소에도 썩 영민하지 못한 머리가 배는 멍청해져서 곤란하기가 이루어 말할 수 없다.


공연이 끝나고 만나기로 약속한 이가 있다. 그녀는 SNS에서 만나 오늘까지 인연을 이어 나가는 중인 E였다.

나보다 몇 년 연상인 E언니는 단순히 같은 취미를 공유하고 있고 호감을 가지고 있는 배우에게 교집합이 있다는 이유로 나를 퍽 친밀하게 대해준다. 그럼 나는 그것이 기꺼워 E언니와 조금이라도 더 긴 시간을 가지고 싶은 마음을 절제하는 방법을 되새겨야 한다. 상대의 곤궁한 사정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이의 배려인지 연상이 연하에게 베푸는 친애의 표시인지 모를 호의로 늦은 점심을 얻어먹은 나는 기어코 음료값은 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또한 함께 어울리는 이가 마음의 부담을 덜어낼 수 있도록 감정을 안배하는 E언니의 섬세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내 딴은 생각하기로 우리가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매번 같은 이야기이다. 날짜도 장소도 다르지만, 인물이 같기 때문일까? 어쩌면 E언니와 내가 사적으로는 전혀 친밀하지 못한, 그저 취미 맞는 SNS 친구라는 관계에서 더 깊은 관계의 발전을 도모할 의지가 없는 탓일지도 모르겠다. 통하는 대화 주제는 요즘 극장에 올라오는 공연에 대한 것, 어떤 공연과 어떤 공연에 참여하는 모 배우들에 대한 것밖에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좁은 선택의 폭이지만, E언니와 두 번의 겨울을 보낼 정도로 인연을 이어온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매번 E언니와 대화하면서 나오는 주제 중 하나는 편지에 대한 것이다. 좋아하는, 혹은 흥미롭게 본 배우에게 적는 팬레터. 공연에 따라 규정이 다르지만, 대학로에 올라오는 극은 웬만해서는 MD부스를 통해 소정의 선물(대표적으로 꽃)이나 편지 같은 것을 배우에게 건네줄 수 있다.


단순히 공연을 보는 게 아니라, 어떤 특정 배우의 팬이라는 위치에 발을 딛으면 보통 선물이니 편지니 하는 것들로 배우에게 애정을 속삭여주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사랑이란 것은 단순히 물건으로만 전달될 수 있는 종류는 아니다. 문자로, 언어로, 행동과 맥락의 이해로.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무형적인 감정은 반드시 그것이 이 세계에 실존한다는 것을 쉼 없이 증명해 내보여야 비로소 존재함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을 수신하는 자가 있어도, 그것을 받는 이가 없으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서로 쌍방일 때 인정된다는 전제하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팬레터란 팬이 배우를 향해 제 사랑을 증명하는 가장 숭고한 것임이 틀림없다. 하물며 그것이 손편지라면 더더욱.


E언니는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면 선물도 편지도 열심히 하는 쪽으로,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당장 맥동하는 감정을 불사르는 모양이다. 견문이 좁은 나는 자칫 그 불똥이 혹여 그녀 자신을 깎아 먹는 길로 튀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토록 뜨겁게 뛰는 심장에 대한 선망을 어렵게 삼키는 것이다.


나는 어느 쪽인가 하면, 팬레터를 쓰다가 도중 포기해 버리는 쪽이다.


물론 팬레터를 쓰고 싶다는 충동은 때로 아주 강하게 찾아들고는 한다.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관극을 하였을 때, 무대 위에 존재한 캐릭터와 내가 나눈 지극히 일방적인 교감이 존재함을 증명하고 싶을 때. 그런 순간은 언제나 굵은 물방울처럼 강렬하게 내리꽂혀 외투를 짙은 색으로 적신다.


어떤 때, 퇴근하고 무거운 걸음을 옮겨 곧장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이소를 방문했다. 오전 8시에 출근하여 17시에 퇴근했던 때라 교복 입은 학생들이 꽤 돌아다니고 있었다. 붉은 볼을 가진 이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아기자기한 캐릭터가 그려진 편지지 가운데서 가장 담백한 디자인을 가진 편지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전하고 싶은 말의 양을 떠올리자면 터무니없는 용량을 가진 편지지에 잠시 인상을 찌푸리기도 잠시. 어쩔 수 없이 같은 디자인의 편지지를 몇 세트 더 구매하고 나서야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버스에 앉아 정지된 창 너머로 빠르게 달리는 자전거를 보았다.

그리고선 나는 생각한다. '이 시간이면 벌써 집에 도착해서 쉬고 있었을 텐데.'


어찌하여 나는 맘에 드는 디자인을 찾으려 심혈을 기울였단 말인가? 한평생 손편지를 쓰기 위해 편지지를 골라본 경험이 없었던 나의 심신은 깊은 상처를 입고 쓰러진 것과 동급의 상태다. 마음이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법이거늘, 어찌하여 그 마음을 담을 그릇을 찾는데 더 욕심을 부렸던 것인지. 결국 시중에서 파는 편지지의 모양새란 다 비슷비슷할 텐데. 신경 써 골랐지만 크기도 작아 말을 많이 줄여야 하는 편지지와 달리 순백의 A4용지가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용량은 더 클 것이다. 물론 마음을 담는 용기가 그저 네모반듯한 것보다는 조금 더 역동적인 편이 겉으로 보기에 흥미로울 테다. 나는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있는 동안 내내 편지지의 중요성에 대해 재고하였고, 결국 편지지를 신경 쓰는 것 또한 팬레터 작성의 첫 발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기력이 다한 나는 결국 그날 샀던 편지지를 먼지 수북이 쌓인 상자에 넣고 책상 아래로 치워버렸다.


또 다른 어떤 때, 마지막 공연의 여운을 곱씹고 있었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자면 썩 취향에 맞는 극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시에는 어쨌든 그 공연을 몇 번 보면서 소란스러운 정신머리를 잠재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 앉아 핸드폰의 메모장 어플을 켜서 정성스레 문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 편지를 주고 싶었던 배우는 당장 차기작 개막이 예정된 상태였고, 다행스럽게도 편지 전달이 가능했다.


막힘없이 쭉쭉 써 내려간 문장에 진심이 아닌 구석이 없었다. 글자 수에 제한이 있지도 않고 내가 쓰고자 한다면 끝없이 백지를 제공해 주는 현대 문명의 이기는 인간의 몰입 상태를 보조하면 보조했지, 방해할 수는 없었다. 작성이 끝난 후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 편지글을 읽어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너무 무거워.'

단어 하나하나에 진득하게 묻어나오는 무엇인지 모를 것은 소름 끼치는 구석이 있었다.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그 문장들이 짊어진 무게가 정확히 어떤 것을 기원으로 두고 있는지 판단하지 못한 상태로 고개를 돌렸다. 유일하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인간과 살아있는 인간 사이를 유영하기에는 수신자의 내면이 지나치게 깊은 그림자로 만든 베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때, 이번엔 많이도 갔다. 무려 예쁜 편지지를 골라내어 핸드폰으로 한 번 적어본 글자를 손으로 옮기는 행동까지 진행했다.

다만 또 나는 생각했다. '글자가 너무 더러워.'

나의 글씨는 선은 거칠고, 날카롭게 휘어진 모양새를 지니고 있다. 글자를 큼직하여 간격 넓은 편지지 한 줄에 길이가 딱 들어맞는다. 그런 주제에 가로 폭은 매우 좁아 옹졸한 느낌마저 든다. 여러모로 악필임은 자명하다.


문득 일전에 사두었던 손글씨 교정책이 떠올랐다. 배송받은 뒤 한 번도 펼쳐보지 않아 종이가 외롭게 낡았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렇듯 나는 편지를 쓰는 것을 매우 어려워하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애당초 나의 더러운 글씨체를 애써 보지 못한 척하며 내용을 다 옮겨 적어도 다음과 같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부모님께도 이런 손편지를 쓴 적이 없는데, 좋아하는 배우한테 팬레터를 쓴다고?"


그리고는 편지와 함께 주기 위해 검색한 꽃다발 사진을 빤히 바라본다. 알록달록 예쁘기도 한 그것은 편지에 담긴 마음보다는 저렴하지만 내가 나의 부모님께 표현했던 마음보다 비쌌다. 가장 가까운 부모님, 그리고 나의 친구에게도 이런 정성스러운 손편지나 꽃다발을 선물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울컥 차오르는 팬레터 수신의 욕망을 집어넣기를 벌써 다섯 번째이다.

부끄러움의 무게와 정성의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나의 지갑은 어떤 것이든 그릇이 작기 매한가지다.


나는 곧 E언니에게 말했다.

"편지는 흔히 하는 식당서포트나 옷, 액세서리 등의 선물을 줄 때 치러야 하는 값을 마음으로 지불하는 것 같아요." 라고.

"솔직히 그래서 더 귀한 거 같기도 해요." 무형적인 것을 물질적으로 계산할 때 사용되는 환율은 얼마나 악독할까? 고작 나라와 나라 간의 화폐를 교환할 때도 많은 수고를 들여야 하는 법일진대.


E언니는 위에서 서술한 것과 완전히 동일하진 않고, 조금 열화된, 추상적인 주장을 가만히 듣더니 말했다.

"모든 배우가 편지에 대해 너처럼 생각해 주면 좋을 텐데."

그에 나는 그만, 너무 잘난 척한 것 같다는 생각에 얼굴이 달아올라 주제를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평소 손편지를 일방적으로 많이 받는 사람은 체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한 번도 그런 자리에 앉아보지 못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 어떤 값어치를 가진 것이라도 그것이 일상에 녹아 들어 있으면 그것의 진정한 값어치를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손편지도 이와 같은 것이다. 정성이 들어간 손편지를 몇 장이고 받는다면 최소한 나는 금세 오만방자해질 자신밖에 없다.


쌍방으로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아닌 이상에서 일방적으로 받는 애정에 대해선 무감해질 수밖에 없으니. 당장 내가 나를 애정하며 든든하게 책임져주시는 부모님께 변변찮은 정성을 베푼 적도 없다는 사실이 그것의 방증이다. 마음 깊이 애정하여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순간 그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무형적인 것, 그중에서도 특히 애정은 애정을 주는 사람은 있지만 애정을 받는 사람은 없기 딱 좋은 종류의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삭막하고도 무정한 나는 살면서 손편지를 몇이나 받아봤을까? 궁금한 마음에 먼지 쌓인 상자를 열어 손을 집어넣었다. 열 손가락을 넘어가지 않는 봉투를 겨우 찾고서야 숨 돌릴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제각각 편지지를 유영하는 손글씨는 객관적으로 잘 쓴 글씨도, 못 알아볼 만큼 못 쓴 글씨도 있었다. 다만 그 담은 내용이 예쁜 탓에 모두 예뻐 보였다.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한 곳에서 말을 섞게 된 동료가 있었다. 딱히 마음의 거리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저 그랬는데, 어느 날 퇴근을 같이하게 되어 나란히 길을 걷던 중 손편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동료는 자신에게는 정기적으로 손편지를 주고받는 친구가 있다고 하였다. 나는 매우 놀라 그에 대해 조금 비호감일 정도로 꼬치꼬치 캐물었던 게 기억난다.


그 뒤로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가짐이 조금 바뀌었다. 당시에 나는 팬레터 작성 실패를 한 차례 겪어 좌절한 상태였기에 손편지에 대해 동경심 비슷한 것도 마음 한 켠에서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문명의 이기가 발달하며 원거리 통신도 원활하게 된 지 한참 지난 시대에 손편지를 주고받는 상대가 있는 감각은 어떤 것일까?

그때의 동료는 인생에서 값진 것을 그 어린 나이에 벌써 가지고 있던 것이다.


정말 부럽기 짝이 없다. 아마 그런 사람을 곁에 두었다는 것은 그 자신도 그러한 귀한 사람이기에 그런 것일 테지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녀를 향한 내 부러움과 질투심이 길을 잃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 생각하며 오늘 나는 또 텅 빈 편지지를 하나 발견하고 본체만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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