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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현자 Dec 01. 2019

11. 어느 회사의 비밀회의

그리고 한 직장인의 걱정

 12월입니다. 2019년도 이제 한 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지금 이 회사에 온 지도 만으로 3년이 다 되어갑니다.


 제가 5년 전 다녔던 경기도의 Y회사에서는 매달초가 되면, 사장과 과장들을 합쳐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2층 소강당에 모여 월례 회의를 했습니다. 소강당에는 정면에 하얀 스크린에는 엑셀 파일이 떠 있고, ㄷ 자로 책상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201X 년 11월 매출

A 파트

  김 OO 과장.  156,825,450 원. 전월 대비 7% 감소. 작년 동월 대비 3% 증가.

  정 OO 과장.  325,153,560 원. 전월 대비 3% 증가. 작년 동월 대비 4% 증가.

  박 OO 과장.  122,366,350 원. 전원 대비 5% 감소. 작년 동월 대비 6% 감소

 B 파트

 .

 

 모든 파트의 모든 과장들이 지난달 올린 매출액과 지지난 달 매출액 대비 증감폭, 작년 같은 달 대비 증감까지 엑셀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사장은 그 표를 보여주면서 D파트 박 OO 부장이 전체 매출이 1등이고, B 파트 김 OO 과장이 매출 꼴찌라고 직접 말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회사 전체 매출이 줄어서 경영이 힘드니, 다들 열심히 하자고 할 뿐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그 표를 보면 그 달의 매출 꼴찌가 누구인지, 어느 과장이 1등인지 알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시험을 치고 난 후 학교 게시판에 떡하니 성적순대로 이름을 써서 붙인 대자보 같습니다. 다 같은 고등학생이지만, 맨 위에 있는 전교 1등과 전교 꼴찌의 표정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Y 회사의 1등은 15년 넘게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50대 박 OO 부장이었습니다. 서울 토박이인 박 부장은 50대 후반임에도 머리에 새치 하나 없고, 눈썹도 적당히 검게 짙고 숱도 많았다. 호남형에 멋쟁이였습니다. 고객들 앞에서나 다른 직원들 앞에서 항상 사람 좋은 웃음을 띠었다. 다른 과장들이 전문 용어를 써가며 10분 넘게 열심히 설명해도 마음 내키지 않는 클라이언트들도 박 부장이 자질 구래 한 설명 없이

 "저 믿으시죠?"

 그러면서 허허 웃으며 악수와 함께 살짝 고객을 안아주면, 봄 햇살에 눈 녹듯 클라이언트 얼굴에서 의심과 걱정이 사라졌습니다. 가끔은 회사 1층 카페에서 직원 대신 손수 하얀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인 채 직접 커피를 내려 부하직원들에게 내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고객이고 직원들이고 박사장을 안 좋아하려고 해도 안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와, 정말 같은 남자가 봐도 반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한 번은 30대 러시아 남자 고객이 찾아왔습니다. 다들 어쩔 줄 몰라 통역을 부르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박 부장이 러시아말로 유창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러시아 고객 얼굴에는 감탄과 함께 만족이 가득했습니다. 평소에도 박 부장을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던 주위 직원들은 그날 이후로 박 부장을 우러러 봅니다. 월례 회의에서도 박 부장은 항상 1등이어도 살짝 미소만 띠울뿐, 그 어떤 거드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박 부장과는 반대로 10년 넘게 매출이 항상 뒤에서 손꼽히는 차 OO 과장은 항상 불만에 차 있는 얼굴인데, 이 날은 더합니다. 차 과장은 평소에 뭐가 잘 안 풀리면 항상 고객 탓, 회사 탓, 사회 탓을 하기 바쁩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다른 사람들은 모든 문제는 차 과장이 실력이 없어서 발생하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2~3시간 만에 끝내는 일을 차 과장이 맡으면 4~5시간 걸리니 차 과장 밑에 있는 직원들은 죽을 맛이었습니다. 남들 같으면 일 마치고 퇴근할 텐데, 아랫사람들은 야근하기가 일수였습니다.


 올해 승진을 해서 금년부터 과장급 이상만 참석하는 월례 회의에 참석하게 된 윤 OO 과장은 이런 분위기가 영 낯섭니다. '너무 대놓고 실적을 비교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개인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담당 파트에 따라 밑에 부하직원 수도 다르고 시설도 다 달라 매출을 일괄적으로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나?' '거기다 계절별로 매출 차이가 크게 날 수밖에 없는데 굳이 전원대비 증가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속으로 비판도 해보지만 조용히 있습니다. '주식도 분기마다 성과 보고서를 내는데, 여기는 매월 성과 보고서를 내다니.'

 참 씁쓸합니다. 3월에 입사해서 이제 거의 10번째에 가까워 가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 됩니다.


 올해 2년째인 D파트 이 OO 과장은 매출은 얼마 안 되지만 그래도 작년 동월 대비 20%가 넘는 증가를 보여서 마음이 놓입니다. 작년 성과를 바탕으로 1년 계약직에서 1년 더 연장했는데, 올해 안에 회사 내에서 자리 잡지 않으면 내년에는 재계약이 힘듭니다. 여기 잘리면 또 어디로 가지, 좀 미리 알아봐야 하나 속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일한 덕분인지 성과가 잘 나와 다행인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서울에 있는 대기업 S사에 다니는 채 OO 과장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덩치는 곰만 하고,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그 어떤 것도 거칠 것 없는 태도였습니다. 텔레비전에도 몇 번씩 나올 정도로 유명인사이기합니다. 항상 회사에서든 밖에서든 큰소리를 치고 다녔고, 심지어 회사 회장조차도 어려워하는 존재였습니다.

 "야, 내 파트가 연 매출이 일 년에 400억에, 영업 이익률이 120억이다. 그 수익 다 내가 벌어주고 있다고."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그 회사 전체 매출이 1조가 넘는데 전체 영업 이익은 겨우 100억입니다. 매출액 대비 영업 이익이 1% 밖에 안 됩니다. 매출액으로 보면 채 과장이 겨우 4%를 차지하지만, 영업이익은 120%입니다. 즉 채 과장이 없으면, S사는 적자입니다. 채 과장이 S사를 먹여 살리는 알짜 중에서도 알짜입니다.

  '아, 저렇게 당당하게 소리치고 다니는 이유가 있구나.'

 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회사만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는 더 했으면 더 했습니다. V 기관 서울 지점장은 매달 매출은 물론이고, 각 파트 및 각각의 직원별로 오늘 몇 명의 고객을 상대했는지 실시간 업데이트가 되는 프로그램을 깔아놓고 아예 하루 단위로 실적을 파악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회사 분위기가 정말 흉흉했습니다. 하루 방문 고객 수를 5000명으로 설정해 수시로 확인하며 목표 달성을 강요할 정도였으니까요.

 

 그 지점장은 실적을 올려 더 좋은 자리로 갈려고 그런다는 말이 돌았고, 실제로 더 높은 자리에 지원했다가 아쉽게도? 탈락하였습니다. 어지간해도 윗사람의 눈치를 본다고 단체 행동을 하지 않기로 유명한 과장들마저 친목회라는 이름으로 일종의 노조를 만들어, 공개적으로 기관장의 해임을 요구할 정도이니 말 다했습니다. 1)


 V 기관은 서울시 지점장만 단독으로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V조직 전국 이사장은 전국 분 점장들에게 ‘경영목표 달성을 위한 제3차 현장점검 계획 시달’ 항목이라는 문건을 보냈습니다.

 '향상된 성과를 보고하라.'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 같은 느낌이 들어 등골이 오싹합니다.  

“각 부서 및 소속 기구는 추진 기한에 따라 이행계획을 수립 시행하여 주시고, 10월 현장점검 시 향상된 성과를 보 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2)

 쉽게 말해서 ‘돈 벌어오라’네요. 회사도 아니고, 공공기관에서. 이 기관이 훌륭하다고 칭찬을 해야 할지, 공공기관이 이익을 따지냐고 비난을 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옵니다.


 제 친구가 다니는 P 회사에서는 공식적인 회의 대신 매달 각 과장들에게 매달 엑셀 파일을 첨부한 매일이 옵니다.

 

숫자만큼 정직하지만, 또 그만큼 잔인한 게 없습니다.
 
<OO 회사의 월 매출>

 매달 과장들에게 메일만 보내는 걸로는 왠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경영팀에서 또 이렇게 아침 8시에 카톡으로 실적이 날아옵니다.

<한참 바쁠 8시에 꼼꼼하게 카톡까지 보내주는 회사>


의사도 먹고살기 참 힘듭니다.


 연말입니다.

 이번 달에도 경기도 Y 병원에서는 각과 과장들이 당월 매출액, 전월 대비 증감률, 작년 동월 대비 증감률이 적힌 표를 보며 2층 소강당에서 월례 회의를 할 것입니다.

 서울 S 병원에서 매출액 대비 30%가 넘는 영업 이익(대게 우리나라 병원의 영업이익률, 즉 매출 대비 이익은 1% 전후입니다. 채 과장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시겠죠?)을 올리고 있는 채 과장님은 큰 소리를 치고 있겠죠.   

 탈 말고 말 많았던 서울시 V 병원은 이번에 병원장이 바뀌었다는데, 새로 오신 병원장은 자기 방에 있는 실시간으로 외래 환자수, 입원 환자수가 업데이트되는 화면을 치웠는지 모르겠네요.

 P 대학병원 총무팀은 각 과 과장들에게 자기 파트 매출액을 보내고, 또 부지런히 직원들에게 카톡을 보내고 있을 겁니다.


저요?


4년 전 저는 처음으로 과장 직원을 달고 작은 중소기업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회사가 일한 지 일 년 만에 망하는 바람에 실직하였습니다. 3월부터 일해서 1월에 망하기 직전에 그만뒀는데, 망하기 몇 달 전부터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12월에는 임금을 못 받은 한 직원이 그만두면서 컴퓨터 본체를 들고 가버렸습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회사가 망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12월 31일 토요일 오후 3시까지 근무를 하고 퇴근하는데, 회사 부장이라는 사람이 와서 회사가 망할지도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 말 한마디에 한 해를 악몽같이 마무리했죠. 19살 때 수능을 망쳐서 재수를 결심한 2000년 이후로 가장 최악의 연말을 맞이하였습니다.  

 회사 CEO가 망하기도 전부터 다른 곳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화가 났습니다. 1월에는 11월 및 12월 개인연금 및 건강보험료가 미납되었다는 통지서가 집으로 날라 왔습니다. 회사가 망하면 월급도 못 받을까 봐 설 직전에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설날 보너스는커녕, 설날부터 당장 실직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회사는 2월 초에 결국 망하고, 저는 회사가 망하고 1년 3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세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3년째 조그마한 회사에 저는 다니고 있습니다. 2017년 대비 2018년 환자수와 매출이 15% 감소해서, 작년에는 월급을 올려달라고 말도 못 했고, 사장님도 말이 없으십니다. 한다고 했는데 올해 매출도 작년과 비교해서 줄었으면 줄었지 늘 것 같지는 않습니다. 2년 연속 월급 동결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매출도 안 늘었는데 괜히 월급을 올려달라고 했다가 나가라고 하면 실직자가 될까과 걱정도 됩니다. 계속 눈칫밥을 먹어야 하나, 그냥 멘땅에 헤딩하는 셈 치고 저도 제 사업을 할까요? 했다가 잔뜩 빚만 안고, 사업이 망하면 또 어떻게 할까요? 머리가 아픕니다.




1) http://www.kukinews.com/news/article.html?no=529102


2) https://news.v.daum.net/v/20170725145518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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