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자고 생각했으니까.’
다자이 오사무가 어느 잡지에 1년간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라고 한다. 나는 이 문장에서 어려운 수학 문제가 의외로 쉽게 풀릴 때의 간명함을 느꼈다. 원래 삶의 이치란 간명하다. 하지만 그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허무하고, 치열하고, 복잡한 일상의 어려움을 견뎌야 한다. 삶의 이치는 간명하지만, 삶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 있자고 생각했으니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 그의 마음에는 어떤 문장들이 파도치고 있었을까.
지난해 가을, 나는 ‘해피엔딩 장례’라는 이름의 기획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취재를 위해 경기도에 있는 한 장례식장에 방문했다. 영안실도 취재할 수 있었다. “저기 첫 번째 줄에 시신이 있어요”라는 관계자의 말에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죽은 자들은 말없이 누워 있고, 산 자들은 최신식 영안실 시스템에 감탄했다. 나는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면서 스산한 영안실을 빠져나왔다. 살아 있다는 생각에 잠시 기뻤다.
취재를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곧 여든 살을 앞둔 한 여성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50대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딸이 눈에 밟혀서 먼저 죽을 수 없다는 말을 할 줄 알았다. 예상과 달리 그는 “나는 나의 인생을, 딸은 딸의 인생을 살면 된다”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살아 있는 동안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내가 죽으면 딸은 나름의 방식으로 잘 살아갈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믿음과 희망의 상관관계를 생각했다.
기사가 발행되던 시점에 고모부가 돌아가셨다. 시골에서 세탁소를 운영했던 고모부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암으로 고생하다가 몸 상태가 잠시 호전됐을 때, 고졸 검정고시를 치고 방송통신대에 들어갔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내가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을 때, 그는 내게 양복을 한 벌 사주며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했다. 사자마자 세탁소에서 다림질도 해주었다. 새 양복이 더 새것이 되었다. 나는 언론사 최종 면접 때, 그 양복을 입고 가서 합격했다.
이제 겨우 60살이었던 그도 당연히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을까. 자식이 결혼하는 모습도, 손자들의 재롱도 눈에 담고 싶었을 것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고모와 함께 조금 먼 나라로 훌쩍 떠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과 함께 술잔을 부딪치며 노년의 삶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방통대를 졸업한 뒤에는 나처럼 대학원에 가고 싶다며 상담을 요청했을 수도 있겠다. 그럼 나는 근처 국립대 입학 과정을 알려주었을 것이다. 이제는 그도, 그가 세웠던 계획도 없다. 고모부의 세탁소는 텅 빈 공간이 됐다. 삶은 이토록 수런거리지만, 죽음은 사무칠 만큼 고요하다. “글은 뜻을 담을 수 없다”라고 한 장자의 말처럼, 죽음이라는 두 글자는 죽음을 담지 못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2009)는 불의의 사고로 죽은 형의 부재(不在)를 견디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에는 유독 걷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카메라는 고정된 상태로 풍경을 먼저 제시하고, 그 풍경을 걸어서 통과하는 인물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인물이 풍경에서 사라져도 바로 장면을 전환하지 않고, 얼마간 빈 공간을 비춘다. 존재와 부재, 삶과 죽음을 감독은 이 같은 간명한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형상화한다.
살아 있자고 생각했으니 걸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삶을 동사로 표현한다면, 아마 ‘걷다’가 될 것이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걸어야 한다. 지독한 회의주의자였던 다자이 오사무가 잡지에 글을 쓰기로 했던 것도, 고모부가 아픈 몸을 이끌고 방통대에 진학한 것도, 내가 취업을 미루고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다 살아 있자고 생각했으니 그랬다. 차이를 두고 반복하면, 죽음은 간명하나 죽음으로 가는 길, 삶은 간명하지 않다. 생을 다해 걸어도, 걸어도.
월간에세이 2024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