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를 다녔다. 잠시지만. 그때 그 시절 유명했던 수 노래방엔 참 많이도 갔다. 학창 시절부터 돌아보면 아주 큰 일탈을 감히 해본 적이 없기에 친구들과 노래방에 간 날들이 그나마 실컷 놀았다는 날로 기록되었다. 마이크 하나, 서로의 노래를 들어주는 친구 하나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뿌듯함이 들기도 했던 그때가 그립다.
그때 같이 노래방에 갔던 친구들은 남아있지 않다. 지금은 어디선가 다 누군가의 가족이 되어 나처럼 노래방 간지 10년이 넘는 고인물이 되어가고 있겠지? 아니 그들은 여전히 나와 부르던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내 귀는 요즘 대세인 아이돌의 노래를 피해 갈 순 없다. 집에 초등학생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 들을 때는 뭔 외계어인가 그랬는데 자꾸 듣다 보니 나도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외우기도 했다. 썩 좋은 노래들도 가끔 있다. 그런데 내 노래가 되지는 않는다. 어릴 때 듣던 그 노래들은 내 노래가 되었는데 말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때 그 시절 노래들에는 하나하나 사연이 있었다. 그냥 노래가 좋아서 부른 노래는 결코 한 곡도 없었던 것 같다. 친구든 사랑이든 누군가를 생각하며 불렀고, 가수 뺨치지는 못했지만 그 노래들을 부를 때만큼은 세상에서 누구보다 진지하게 대상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운전할 때, 회사에 있을 때 그 노래들을 듣는다. 그 노래들은 나를 그때 그 시절로 데려가 주는 매직이 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은 다 뿔뿔이 흩어졌어도, 그 어린 시절의 나는 놓지 못하겠더라.
얼마 전 '인생은 아름다워'와 '20세기 소녀'를 봤다. 둘 다 첫사랑 모티브인 영화였다. 참 가슴이 아렸다. 내 애기도 아닌데 내 애기인 것처럼 몰입하면서 봤더니 심장에 빗금이 쳐지는 것 같았다. 누가 알아줄 수 있을까 그때 그 시절 감정을. 지금은 그 감정을 공유했던 사람들과 연이 닿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도 노래가 있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노래방에 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 노래들을 계속 듣기 때문에 지금 부르면 더 잘 부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도 해본다. 그런데 이제 그 노래들을 부르기가 솔직히 조금 무섭다. 그 노래들이 이런 영화들을 보며 느끼는 아련함 보다 더 정확히 나를 그때 그 시절 그 꼬맹이로 만들어 버리면 그 느낌에 중독될까 두렵다. 그래서 혼자 드라이브할 때 열창해보는 걸로 삼삼히 나를 달래보기도 한다.
지금은 누군가 들어줬으면 하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그 노래들이 내 일부가 돼버려서 같이 살아간다.
가끔 남편과 나는 차에서 음악 주도권 다툼을 벌인다. 남편은 학창 시절 나와 다른 류의 노래를 즐겨 들었단다. 하지만 그것도 그의 일부이기에, 노래가 그에게도 줄 매직을 알기에 때로는 잘 모르는 노래도 묵묵히 같이 듣는다. 남편과는 20대 중반에 만났기 때문에 솔직히 같이 노래방을 간 적도 없고, 서로를 생각하게 했던 노래도 많지 않다. 김동률의 감사 정도? 그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이 미니홈피에 해놨던 곡인데, 그 마저도 굳이 나를 염두해서 해놓게 아니고 원래 김동률의 팬이란다.
이루어진 사랑은 사랑이 있으니까 노래가 안 필요 한 걸지도 모르겠다. 20세기 소녀를 보며 조금 더 확신한 부분이 있다면, 첫사랑은 덜 완성된 건이 필요충분조건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뤄지지 않은 것들도 그 자체로 아름다움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은 노래 때문이라고 칭송해 주고 싶다.
얼마 전 동생이 학창 시절 친구를 만나는 걸 보며, 조금은 부러움이 섞인 마음으로 말했다.
'넌 그 시절을 공유했던 누군가와 그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 좋겠다. '
내게 노래만 남은 이유는 내가 인간관계가 미숙한 중생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노래라도 남은 게 어딘가 싶다. 그래서 아직 작사가라는 꿈을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다.
나도 누군가의 인생 조각을 맞춰줄 노래를 선사할 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