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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이시 Oct 09. 2023

강남에 존재하는 영어유치원의 의미

나는 강남의 그 한복판에서 자녀를 키우고 있는 학부모 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강남 사교육의 그 시작점에서 일을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현재도 여전히 교육 쪽을 벗어나지 못하고 에듀테크에 적을 두고 있긴 하지만, 그전 몇 년은 영어유치원 현장에서 담임교사이자 영어 강사로 일을 했다. 내가 강남 학부모 이기만 했다면, 내 강남 보고서는 반쪽 짜리였겠지만, 사교육 현장을 누구보다 실감 나게 겪은 입장이기도 했기에 내 리포트는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강남에서 사교육을 논하려면, 3-4살 아가들 애기부터 해야 된다. 대다수의 아이가 5살 때 혹은 6살 때 영어유치원에 갈 준비를 한다. 영어유치원도 대학입시처럼 레벨이 있다. 그중에 최상위 G 어학원에 가려면 3-4살 때 G 어학원의 계열사인 A 놀이학교를 다니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니까 그냥 영어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고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대치, 반포에는 G 어학원과 입학 테스트 과외가 존재한다. 우리 조카가 그 과외를 받았었는데, 몇 년 전 기준으로 한 시간에 7만 원 정도였다. 내 조카는 G어학원 까지는 못 가고 G어학원의 계열사 P어학원 2년차에 붙었다. 족집게 과외의 효과를 눈앞에서 목격하니 나도 혹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여기서 영어유치원 애기를 아주 장황하게 하지는 않으려 한다. (영어유치원에 대한 풀 스토리가 궁금하시다면 브런치 채널에서 '영어유치원에서 일했습니다' 매거진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그래도 강남에 사는 머글 에세이을 쓰면서 영유 애기를 안 할 수는 없다. 나는 영어유치원 현장에 일하면서 막내를 영어유치원에 보낼지 말지 딜레마가 컸다. 반포에 와서 첫째 아이가 늦었다는 진단을 받은 때였기에, 둘째라도 달려야 한다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영어유치원 현장에서 장, 단점을 비교해 보았을 때 장점이 확실한 만큼 단점도 너무 확실했다. 결국, 나는 임직원 자녀는 영어유치원 학비가 무료임에도 불구하고 막내를 보내지 않는 결정을 했다. 지금도 그 결정에 후회가 없냐고 묻는다면 조금 흔들릴 것 같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내가 영어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 만난 아이들의 아픔을 너무 스펀지처럼 흡수한 탓이었을까, 차마 내 아이는 오전 유치부에 보내지 못하고 주 2-3회 가는 오후 유치부를 보냈다. 사실, 당시 나에게는 하나 푸르니 어린이집이라는 획기적인 대안이 있었기 때문에 영어유치원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한다. 여하튼, 영유 시스템을 극찬할 것은 전혀 아니나, 원어민을 어린 나이에 만날 필요는 여전히 있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긴 하다.


브런치에 있는 영어유치원 원고에 대해서 출간애기가 오고 간 적이 몇 번 있다. 근데 요청 사항이


"비판을 많이 추가해서 자극적으로 써주시면 안 될까요?"


이런 게 많았다. 나는 영어유치원 메카에서 자녀를 키운 학부모이자, 교사였던 사람으로서 영어유치원의 가치를 중립으로 설정하고 싶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애기는 영어유치원에 잘 맞는 친구도 있고, 정말 안 맞는 친구도 있으니 안 맞는 친구는 제발 그 친구를 위해 보내지 말라는 애기 정도다. 안 맞는 친구들에겐 부작용 정말 심각한 건 사실이다. 모두가 이렇다는 애기는 절대 아니다.


강남에 학부모님들 특성상, 부모님이 두 분이 명문대 출신이거나, 의사, 변호사 이시거나 가끔 사업으로 성공하신 분들이 계셨다. 특히 두 분이 다 전문직이신 경우, 자녀들이 공부를 어려워하는 것에 공감을 못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셨다. 전화상담을 할 때는 다들 고상하셨지만, 아이들의 모습은 부모의 거울이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시험을 많이 틀려서 따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아이가 갑자기 두 손을 모아 싹싹 비는 것이 아닌가. 너무 당황해서 다음에 더 잘하면 되는 것뿐인데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집에서 문제를 틀리면 아빠가 이렇게 하라고 시킨다고 하더라. 그냥 그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안길 줄도 모르던 녀석, 잘 지내고 있을까?


부모님들의 조급함이 느껴질 때는 아이와 그 부모님 사이에서 참 난감했다. 만약 부모님 두 분 다 의사시면, 결국 아이가 잘하게 되지 않을까? 자신들의 DNA가 발현될 것을 조금만 더 믿어주시면 안 되나 란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그 외에 부작용 중 많이 나타난 사례는 계속 앉아서 활동하는 것이 너무 힘든 나머지, 다른 세계에 빠지는 건데, 차라리 공상을 하거나 낙서를 하거나 틱이 나타나면 감사할 정도였다. 매 년 자신의 신체를 지속적으로 만지는 학생들이 있었다. 나도 비슷한 나이가 자녀가 있는 부모로서 그 친구들을 붙잡고 같이 울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런 소수의 부작용 사례 보다 더 광범위했던 부작용은 아무래도 계속 시험을 보고 발표를 하다 보니까, 경쟁 분위기가 늘 존재한다는 거였다. 잘하는 친구들의 권력을 갖게 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미 7살 정도 되면 선생님이 모두와 친하게 지내라고 말하는 게 잔소리일 뿐이다. 또 7세의 경우는 초등학원 입시라는 명백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흡사 수능을 앞둔 고3 같은 긴장감이 지배적이었다. 현장을 떠난 지금도 늘 고민스럽긴 하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걸까.


또 한 가지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점은, 영어교육이라는 부분이 교육양극화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지점이라는 부분이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내가 전에 살던 지역에는 이러한 인프라가 전혀 없었고 이런 인프라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학군지로 이사를 감행해야만 했다. 이미 학습 기회에 대한 접근성이 달라져 버리기 때문에 영어학습의 속도 차이는 너무나 크다.


이게 단순히 영어의 문제만이 아닌 것이 학군지에서 영어를 빠르게 달리는 이유는 초저 때 영어를 마스터해야 2-3학년부터 수학을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결과론 적으로 수학에 대한 공부량 또한 차이가 나게 된다. 나는 선행학습이 무조건 잘못이라고 단정 짓지 않는다. 그 또한 감당할 수 있는 아이가 있고 아닌 아이가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어머님들이 우리 아이가 전자라고 생각하는데서 발생하는 이슈가 존재하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 아이는 선행이 맞지 않는 아이라고 판단해서 구멍 없는 현행을 유지하고 있지만, 진작에 중학교 문제집을 들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부러움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부러운 건 부러운 거지만, 나는 아이가 지나치게 어려운 걸 하면서 난 잘 못해라고 느끼는 것보다, 자기 수준보다 아주 조금 챌린징 한 것을 다루면서 매일 성취감을 얻어가는 쪽을 택했다.


학군지의 실상이 이렇다 보니, 영어 학습 시작 시기의 차이는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 되어 버렸다. 중학교 1학년 때 알파벳을 배운 우리 세대와 달리,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공교육 영어가 시작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최소 주 1회라도 유치원에서부터 원어민을 만날 기회가 열려야 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바이다. 이 부분은 높으신 분들이 총대를 메주 셔야 할 것 같은데, 이런 한 미생이 소리친다고 들리기나 할까? 가끔은 그런 생각도 했다. 높으신 분들이 이 사안의 관심을 갖기엔 그분들의 자제들은 이미 너무 다 커버린 걸까?


영어 공용화 같은 극단적인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어디서나 글로벌 인재를 키우자고 외치고 있는 교육 현장은 엇박자라는 애기이다. 영어는 언어를 넘어 문화이지 않은가, 아직 편견이 없고 다양한 것에 신기해하는 나이에 영어와 그 문화를 접해보는 경험을 한다면, 너무나 당연히 세계에 대해서 호기심을 품는 아이들이 될 것이다. 학자들과 많은 논문을 기반으로 지금 영어 공교육 시작 나이를 정했겠지만, 그 결정을 할 때와 지금 시대가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 고민을 다시 해보셨으면 좋겠다. 정말 우리나라를 위한 건 뭘까? 다음 세대를 위한 건 뭘까? 일개 개인이 논해보기엔 너무 큰 담론이지만, 이미 발생한 빈부격차를 줄이는 것만큼이나 미래에 발생할 사회격차를 방지하는데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겠다.


나는 이러한 인프라를 누리기 위해 강남에 오는 것을 선택했고, 그 선택으로 말미암아 큰 경제적, 심리적 비용을 지불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비용을 기꺼이 혹은 뼈를 깎아가며 지불했을지라도, 나는 다른 학생들이 외국인을 만나는데 장벽이 없는 사회가 오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강남에 있는 영어유치원에서 일할 때도 한편에 괴로웠던 게 있다면,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 격차를 더 초래하는 일이 아닐까 라는 부분에서 너무 깊은 사회적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현재, 강남이라는 지역이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원어민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화상영어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현장을 떠난, 나의 발걸음은 이렇게나마 어떤 아이에게 라도 원어민을 만나서 문화에 대해서 마음을 열어가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결론이었다.


사회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다른 것에 삿대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강남에 살지만 강남인이 아닌 나의 강남에 사는 소회이자, 사명이다.


나는 강남에 사는 머글이다.


머글로써 개인이 죽도록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을, 때로는 내가 덜 노력한 게 잘못이라는 자책을 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일임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사회에 대해서 이렇게 태어난 것에 대해서 불평만 하겠다는 건 전혀 아니다. 그렇게 언변이 좋지도 못하고 말이다.


마법을 가지고 태어 난 혹은 그렇지 않은 이라는 부분이 형용사 수식어보인다면, 정말 중요한 단어가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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