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이가 어떤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뜻을 담아 이름을 짓기 전부터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다. 나는 이 녀석이 아들이란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갖게 된 로망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피아노 치는 남자로 키우고 싶은 로망이었다. 아마 대한민국의 아니 전 세계 여성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피아노 치는 남자가 불러주는 세레나데를 꿈꿔보았을 것이다. 얼마 전에도 박보검 씨가 음악 프로그램에서 피아노 치면서 노래도 부르시는 것을 봤는데, 진짜 무한 반복해서 보고 싶은 영상이었다. 나의 현실에서는 그런 남자를 못 만났지만 아들은 그렇게 한 번 키워보고 싶었다.
물론 단순히 멋있어 보이니까 배웠으면 좋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피아노가 음악과 가까워지는 첫 번째 통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음악을 가까이 함으로 감수성이 풍부해지고 섬세한 부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살다가 스트레스받고 힘든 일이 있으면 피아노를 치면서 혼자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마지막으로는 만에 하나라도 가수가 된다면 자기 음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자체적으로 확인해 가면서 노래할 수 있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써 놓고 보니, 내 바람은 단순히 피아노를 치는 스킬을 갖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나는 이런 목표를 위해서 피아노 학원을 N살에 보낸다 라는 가설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즉,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피아노 학원에 가기 전 단계 즉, 빌드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내 어린 시절 경험에서 나왔을지도 모른다. 지금이야 피아노 학원이 선택으로 많이 바뀌었지만 그때는 여자아이는 무조건 피아노를 배우던 시절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동요 몇 곡 배우고 불러본 것이 음악적 경험이라면 다라면 다였던 나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너무 너무 재미가 없었다. 정말 혼자 연습실에서 선생님이 그려준 사과를 날로 먹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국 1년 남짓 배우고 그만두게 되었는데, 돌아보니 내가 피아노 학원에 오기 전에 음악과 좀 더 가까워질 계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에 시행되었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내 아이에게 음악을 조금 더 아니 최대한 일찍 소개하기로 했다. 그 처음은 태교 음악 CD였다. 지금은 유튜브에서 한 시간 몰아 듣기, 클래식만 몰아 듣기 이런 것이 정말 편하게 되어 있지만 그때는 아직 유튜브라는 채널이 널리 퍼지기 전이었다. 그래서 물리적 CD를 듣던 때였는데, 태교 때부터 아이 영, 유아기에 얼마나 열심히 들었는지 CDP가 고장 나서 1년에 한 번씩 새로 사야 했다. 아이들은 '자극'을 통해 성장한다라는 말을 들은 터라 새로운 음악, 새로운 자극을 아이에게 전달하기 위해 부단히 CD를 바꿔가며 애를 썼다.
그때 만난 프로그램 중 하나가 튼튼 영어의 '사운드 짐' CD였다. 사운드 짐은 영어도 영아한테는 학습이 아니라 소리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었는데 '소리' 로서 언어 및 음악 전달에 정말 공을 들인 티가 났다. 심지어 유명한 아티스트, 이루마 씨가 참여한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샘플을 들어보았는데 너무 매력적 이여서 아이를 위한 첫 투자라고 생각하고 그 당시 수 십만 원의 거금을 할부로 긁었던 기억이 난다. 그 '사운드 짐' CD는 지금까지도 내가 들어본 음원들 중에 완성도가 TOP3에 꼽을 만큼 퀄리티가 대단했다. 우리는 지금도 차에 이 CD를 넣어 놓고 듣는다. 태교 음악으로 사서 10년 넘게 듣는 것이다. 정말 없던 음감도 절로 솟을 것 같은 음악이 담긴 이 CD는 현재는 단종된 상태로 보인다. 정말 너무 좋아서 길에 지나가는 누구에게 라도 꼭 들어보라고 하고 싶은 정도인데 저작권 때문이겠지만 유튜브에서도 찾을 수 없어 아쉽다.
소위 요즘 말로 '오디오가 비지 않게' 엄청 내가 노력했던 이유는 아이에게 음악과의 친밀감을 키워주기 위함이었다. 내가 음악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음감이 키워지는지 등의 구체적인 테크닉은 잘 몰랐지만 무식하다면 용감하다고 진짜 음악에 언제든 노출되어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가 바로바로 티가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초등학생고 고학년이 되어 좋아하는 과목을 '음악'이라고 써 놓을 걸 보니 마음이 뭉글뭉글 벅차오른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에 대한 음악 노출을 이어가면서 나는 이 아이를 언제 '피아노'와 마주하게 할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가벼운 마음으로 전자 피아노 하나 사서 쳐주고 같이 눌러보고 그래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나름의 신념으로 처음 만나는 피아노는 '정말' 피아노 이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사실 피아노는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생각보다 높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고 손가락 길이도 어느 정도 길어져야 유의미하기 때문에 지금 생각해 보니 최소 6살 정도는 되어야 피아노를 배운다는 게 성립이 되는데, 나는 엄청나게 계획적인 사람들이 그러하듯, 성격도 무지하게 급한 1인, 좋게 말하면 준비성이 철저한 엄마였다. 그래서 이 아이가 2살 때,우리 집은 피아노를 영접하게 되었다. 나는 미니멀리스트였고 버리는 것을 엄청 좋아했기 때문에 수차례 이사를 다니면서 장농,침대 등 큰 짐들은 언제나 정리 대상 1순위였지만 피아노는 언제나 보호 대상 1순위였다. 그만큼 피아노는 나에게 언젠가 이 아이가 음악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었다.
처음 마주한 피아노는 정말 영롱했다. 두 돌이 넘은 아이에게 피아노는 정말 산처럼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이가 당장에 관심을 갖지는 않았지만 엄마의 마음은 피아노의 존재 만으로 아이가 벌써 피아노 치며 노래하는 남자가 된 듯이 뿌듯했다. 피아노를 모셔 놓고 나는 종종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줬다. 내 실력으로 노래처럼 들리게 칠 수 있는 건 오른손 다장조에 왼손 코드가 전부였지만, 내 실력은 중요치 않았다. 아이에게 엄마가 하는 행동을 따라 해보고 싶다 혹은 뭔지 궁금하다는 자극만 줘도 성공이었다. 가장 좋은 그림은 아이가 언젠가 '엄마, 나 피아노 배워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거겠지만 내 인내심은 그리 길지 못했다.
아이가 조금 커서 노래도 제법 흥얼거리게 되자, 아이의 음정이 생각보다 잘 맞는다는 생각과 음색이 괜찮은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나를 더욱 행동하게 만들었고, 결국 4살 겨울 나는 이 아이의 손을 잡고 동네 피아노 학원에 방문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나이에 맞는 음악 교육법 등이 있었던 건데, 잘 모르는 엄마이기에 정말 많은 삽질을 했다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그렇게 4살, 한글도 읽지 못했던 시절 이 아이는 콩나물 대가리를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