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소년 소녀 합창단(이하 서소합)은 상반기에는 3학년부터 5학년이 지원할 수 있고, 하반기에는 2학년부터 4학년이 지원할 수 있다. 즉 최대 6번까지 지원 가능하다. 수치적으로는 말이다. 바람이 살짝 시원해지던 9월 기다리던 공고가 떴다!
약 한 달 간의 접수 기간이 주어졌고 응시 원서를 이메일로 제출해야 되며 만원의 응시 수수료가 있었다. 응시 원서는 학교, 주소, 오디션 곡, 수상 내역 및 무대 경험 등을 쓰고 사진을 첨부하게 되어 있었고 반주자를 동행할 건지 서소합 반주자를 쓸지도 체크하는 란이 있었다. 그 원서를 보고 난 한 가지 깨달았다. 여기 지원할 정도면 콩쿠르에 입상한 경험이 있거나 무대 경험 등이 이미 있는 학생들이라는 것을! 레슨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다른 합창단 1-2년 경험하고 서울시 지원한다는 말이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2022년 당시에는 지정곡 두 곡 중 1곡과 자유곡 1곡을 준비하게 되어 있었는데 지정곡은 노을 지는 강가에서(김봉학 작곡), 하늘나라 동화(이강산 작곡)였다. 레슨 선생님께서는 하늘나라 동화를 선택해 주셨고 그 노래와 자유곡 미소(김남삼 작곡)를 본격적으로 연습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오디션 접수가 시작되자 나는 아이에게 우리가 하려는 일을 설명해 줬다. 지금까지 몇 달간 노래를 배워왔고 노래 시험을 볼 것이라고. 그리고 그 시험에 합격하면 무료로 음악을 배울 수 있다는 내용까지만. 이게 어린이가 들어갈 수 있는 최고의 합창단이고, 엄청 잘하는 아이들이 많이 올 거라는 거창한 정보는 생략했다. 아이가 부담감을 느끼거나 미리 기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노래 학원을 하나 더 다닌 다는 건가로 생각하는 듯해서 그렇게 생각하게 두었다.
정말 합창단들은 부르기 쉽지 않은 곡들만 지정곡으로 선정하는 것 같다. 그래야 변별력이 생기겠지만 하늘나라 동화는 정말 어려웠다. 특히 "하늘 끝까지 올라 실바람을 끌어안고"를 매끄렇게 처리하는 게 승패의 관건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여기서 팩트는 서소합은 노래만 잘해서는 1차를 통과할 수 없었다. 당시에는 계명창과 리듬 치기를 본다라고 쓰여있었는데 쉽게 말하면 계명창은 선생님 "파 소리 내보세요."라고 하면 피아노나 아무 악기의 도움 없이 오직 목소리로만 "파" 음정을 맞춰야 하는 것이었고, 리듬 치기는 선생님이 "다 다닥 다다다 다 다닥" 이런 식으로 리듬을 만들면 그대로 복사해서 리듬을 칠 수 있는지를 보는 시험이었다.
시험 방식을 보면 절대 음감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게 이해가 되었다. 절대 음감은 "파" 음정을 학습하지 않고도 "파"하고 낼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계속 피아노에서 "파"를 눌러보면서 그 음정을 내 것으로 복사하는 연습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1차에서는 플랫, 샵 등 아무것도 붙지 않고 다장조 음계에서만 문제를 낸다는 사실이었다. 오디션을 위해 레슨 선생님께서는 함께 갈 반주자도 섭외해 주셨고, 그 반주자와 미리 맞춰보는 연습 시간도 가졌다. 즉, 반주자를 동반하지 않고 서소합 반주자를 쓰겠다는 것은 그날 처음 맞춰본다는 뜻인데 아마 그렇게 신청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서소합에서는 오디션 며칠 전에 아이의 순서가 적힌 문서를 이메일로 공유해 주는데 그렇게 받아 본 리스트에는 53명의 학생 이름이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코로나 기간 동안 지원 못했던 학생들이 몰려서 이번이 조금 더 많은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런데 접수 인원을 보고 몇 대 일이다라는 식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것이 T.O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서소합의 평가 방식은 1차, 2차 모두 절대 평가이다. 누구보다 상대적으로 잘해야 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음악 전문가분들의 기준을 실제 넘어야 된다 라는 뜻이다.
그렇게 대망의 오디션 날이 왔다. 역시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출동했다. 그런데 내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이었는데 남편이 심각한 길치라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는 5시 20분에 오디션이 시작되는 조에 속해있었는데 남편은 5시까지도 연습동이 어딘지 몰라서 헤매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참고로 연습동은 광화문역 1번 출구 바로 앞에 있다. 회사에서 앉아서 어떻게 할 수도 없이 마음을 조리고 있었는데 5시 10분쯤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아이를 둘러메고 뛰고 난리를 쳤다고 한다. 미리 도착해서 목도 풀고 분위기 적응도 하고 했으면 좋으렸만, 도착하자마자 숨만 고르고 오디션장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아이에게 달려있었다. 아이의 말에 의하면 심사 위원은 5분쯤 계셨다고 하고 분위기는 무서웠다고 한다. 엄숙했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래서 제일 궁금한 "노래는 잘했어?"라는 말에는 또렷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2학년 남아에게 본인이 잘했다 혹은 잘못했다를 평가하라는 것은 능력 밖에 일인 것 같기도 했다. 사실 도전을 하긴 했지만 아이의 피드백을 봤을 때 잘한 건 아닌가 보다 생각했기 때문에 시험을 본 목요일부터 1차 발표가 나는 그다음 주 화요일까지 극도의 긴장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화요일 막상 발표를 확인하려고 하니 긴장이 되었다. 이 아이의 음악적 가능성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어떻게 보면 첫 시도였기 때문이다. 결과는 놀랍게도 합격이었다. 53명 중 21명이 1차 합격이었고 아이의 이름이 거기에 있었다. 최종 합격한 것도 아닌데도, 너무 기뻤다. 지난 몇 년간 이 녀석에게 음악적 씨앗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인가 의심을 거듭했던 나에게 너무나 단비 같은 소식이기도 했다.
2차 오디션 안내는 서면으로 진행되었다. 2차 오디션은 매주 목요일 4회, 즉 4주간 동안 진행된다고 하였다.그리고 한 번 갈 때 오디션은 2시간씩 진행 되었다. 2차 오디션은 음악 감독님이 수업을 하는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횟수로 만 따지면 5번 시험을 보는 건데, 소속사 오디션도 이렇게 힘들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안내문에는 평가 기준이 안내 되고 있었는데 음악성, 발전 가능성, 태도, 단체 생활 적합성이라고 쓰여 있었었다. 레슨 선생님 말씀에 의하면 2차에서는 노래는 전혀 평가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시창, 청음 등을 평가한다고 하셨다. 2차 오디션 준비하는 레슨을 등록하면서 금액이 커서 조금 망설여졌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멈출 수는 없었다. 결국 비상금을 깨서 2차 오디션 준비 레슨을 받기로 했다.
2차 오디션 준비는 "코르위붕겐(세광음악출판사)"로 했는데 잘은 몰라도 성악의 기본서 같은 것 같았다. 평일에도 레슨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Zoom으로 수업을 했다. 아이가 수업 받는 내용을 살짝 훔쳐보면 선생님이 건반은 몇 개 연달아 누르면 그 음을 맞추고 그 음을 그대로 따라 내는 식으로 진행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서소합 2차 오디션을 다녀온 아이는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말해주지 못했다. 단지 무섭지만 간식을 주는 곳이라고 표현을 했다. 그리고 또 아이가 주었던 피드백은 손을 들고 발표를 많이 해야 되는 곳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시키는 것에 잘 대답하는 것도 점수가 되고, 발표를 해서 답을 맞히는 것도 점수가 되는 모양이었다. 그 당시 아이는 자신의 음정에 확신을 갖은 상태가 아니었고 최저 학년으로써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약간은 기가 죽기도 해서 발표는 거의 못했던 것 같다.
평일 목요일에 연달아 4번에 세종 문화 회관에 간다는 건 쉬운 일 아니었다. 남편과 내가 돌아가면서 반차를 썼고, 붙으면 어떻게 다니지 라는 고민도 들었지만 그럼에도 마냥 행복한 시간들이기도 했다. 아이는 분위기가 딱딱하고 정작 노래는 1도 부르지 않는 연습 시간에 그리 또 가고 싶은 곳이라는 생각이 안 드는 듯했다. 그래서 아이가 아직 이런 단체 연습 생활을 할 준비가 안되었나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최종 합격만 한다면, 나는 더 이상 이 아이의 진로에 대해서 박 터지게 고민할 필요가 없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다섯 명이나 되는 음악 전문가 심사위원들이 그렇게 허술하지는 않았겠지만 나는 1차는 이 녀석의 목소리가 좋은 것만으로도 합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 있었기 때문에 2차까지 합격하면 내 의심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4주가 지났다. 설마 이렇게 까지 했는데 떨어지겠어라고 방심을 하고 있던 나에게 날아든 결과는 불. 합. 격이었다. 합격자는 21명 중에 12명이었다. 절반만 최종 합격한 것이다. 솔직히 그전 기록을 트랙킹 해보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이 떨어지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때 오전 11시쯤 발표가 났는데,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날 나머지 회사 근무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정말 멘털이 바사삭 깨진다는 게 이런 거였구나 싶었다. 뭔가 이 녀석의 노래에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던 순간을 눈 앞에서 놓쳐버린 것 같아 정말 내 평생 가장 아쉬운 순간으로 기억에 길이 길이 남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이 아이에게 뭐라고 할 순 없었다. 만약 음악적 재능을 물려주지 못했다면 부모의 부족함이지 아이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나마 감사했던 것은 아이는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그리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햄버거에 딸기 잼 발라주는 음악학원, 다시 안 가도 되는 거야?" 라며 오히려 좋아했다. 본인 피셜로는 그 과정이 힘들었단다. 아마 평가하는 선생님들이 보시기에도 2학년 남자아이가 버거워하는 것이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격이 없던 아이와 달리 나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고 이 아이가 재능이 없나 보다는 생각이 커지기 시작했다. 몇 년을 오락가락한 마음이었지만, 이 당시에는 정말 내 아이 아이돌 만들기 프로젝트를 접어야 된다고 까지 생각했다.
레슨을 해주셨던 선생님께서는 "어머니, 보통 2학년을 잘 안 뽑아요. 두 번째에 되는 애들도 있어요. 한 번 더 시험 보면 붙을 거예요!" 라며 위로해 주시고 계속 다음 오디션을 준비하자고 하셨지만 마음이 너무 상했던 나는 동요 레슨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다시 본질적인 고민을 던져보게 되었다.
내가 이 아이에게 주고 싶은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