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소년 소녀 합창단(이하 서소합) 선발의 최종 과정에서 불합격한 후 3년 만에 다시 이 단어를 검색했는데 마침 지금이 접수 기간 이라니 뭔가 운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보니 올해는 공고가 평소보다 2주 정도 늦게 나왔다고 한다. 즉 원래 대로 공고가 났다면 내가 다시 검색했을 때는 이미 접수가 마감되었을 시점이었다. 다시 공고를 읽다 보니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서소합은 앞서 말했듯이 2학년 하반기부터 5학년 상반기까지만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녀석에게는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는 것이었다.
나의 마음은 당장 신청 하고 싶었지만 서초 어린이 예술제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아이와 치른 전쟁이 최근이었기에 조심스러웠다. 아이는 이제 5학년이고 내가 억지로 노래를 시킬 수 없다는 것도 이제는 확실했다. 그 녀석에게 물어보자, 살짝 한 발 뒤로 물러나는 제스처를 취했다. 서초 어린이 예술제 합창단의 스케일까지는 마음에 받아들였는데 서울시 단위로 간다는 것에 "거기 옛날에 갔었던 엄청 큰 곳 아니야?" 라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마침 그 시기에 아이의 이런 마음을 다 잡을 만한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학교 담임 선생님의 칭찬이었다. 학교에서 음악 시간에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이 녀석 옆으로 오시더니 "우리 반에 노래 대회를 나가도 좋을 것 같은 예쁜 목소리의 주인공이 있네요." 라면서 녀석을 칭찬해 주셨다는 것이다. 음악 시간에 몇 번 연달아 칭찬을 받은 녀석은 나에게 살짝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음악에 조예가 있으셔서 이런 말씀을 하신 건지는 모르겠으나 해주셨던 칭찬들이 아이가 힘을 내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팩트를 이용해서 아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너 정말 목소리 좋다니까. 담임 선생님도 말씀하셨잖아. 그니까 서소합 한 번 더 도전해 보자. 어차피 5학년 1학기 넘어가면 신청도 못해. 혹시 안돼도 다시 하자고도 못해. 마지막 기회야. 마지막!"
그렇게 녀석의 허락을 간신히 얻어서 서소합 접수를 마쳤다. 그래도 서초 오디션 때처럼 거부하지 않는 걸 보니 노래에 대해 조금은 의지가 생긴 것 같아서 감사했다. 다만 아직 자신감이 충만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감사히 그 녀석이 하겠다는 의지를 세웠으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서포트를 하면 된다. 3년 만에 그때 입시를 같이 준비했던 노래 선생님께 연락을 했다.
"선생님, 저 3년 전에 배웠던 00 엄마인데요. 기억나실까요? 다름이 아니라 서소합 한 번 더 해보고자 하는데 단기간에 레슨 가능하실까요?"
서소합의 입시곡이 '새싹들이다(최승원 곡)'와 '겨울나무(정세문 곡)'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에 다시 처음부터 준비를 해야 했고, 레슨 선생님한테 연락했을 때는 오디션일까지 3주만 남은 시점이었다.
"그동안 노래를 배웠나요?"
라고 물어보셔서 전혀 배우지 않고 있었다고 하자 1차 오디션 전에 8번 정도 레슨을 진행하자고 하셨다. 와, 이 정도 예산이 집행돼야 된다는 것까지는 생각 못했는데, 내가 벌이는 일이 꽤 큰일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그래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니 간절함이 이성을 이겼다. 결국 이번에도 비상금을 깨서 레슨을 받기로 했다. 이번 오디션은 정말 중요했다. 붙으면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이고, 떨어지면 노래는 취미로 하면 되는구나 도장을 땅땅땅 찍을 작정이었다.
아이는 오디션곡 두 곡 중에 새싹들이다 를 아는 곡이라서 선호했지만, 선생님께서는 새싹들이다는 리듬이 매우 복잡한 곡이라면서 겨울나무를 하자고 하셨다. 선생님과 준비한 모든 아이들은 겨울나무를 한다고 그러셨다. 그래서 아이를 차에 태우고 다니는 시간 동안 계속 주구 장창 저 노래를 틀어 놓았다. 가족들은 나중에 진짜 "이제 그만 들으면 안 돼?"라는 말을 할 정도였는데, 내게는 나름의 신념이 있었다. 연습은 새벽 3시에 자다 일어나서 갑자기 불러도 틀리지 않을 수 있을 때까지 하는 거라고. 사실 이건 내 말이 아니라 H.O.T 멤버 중에 한 명이 한 말이기도 하고 최근에 임형주 님도 TV에 나오셔서 비슷한 말을 했다.
오디션 곡인 겨울나무의 1절에는 "바람 따라"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 구간이 바로 이 노래의 키이다. 이 고음을 성악 발성으로 낼 수 있느냐 쌩으로 로 올리느냐에서 합불이 결정될 것 같았다. 아이는 이 고음구간을 클리어하게 낼 때도 있었고 아닐 때도 있었지만 레슨을 받으면서 점차 성공확률을 높여갔다. 어느 날은 아이의 노래를 들으면 괜찮은데 생각이 들었다가, 어느 날은 역시 아닌가 싶기도 했다. 모든 시험이란 게 그렇지 않은가. 합격을 꿈꾸는 거지, 합격이 보장된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말이다.
노래 외에도 서소합은 1차에서 계명창과 따라 부르기 시험을 본다. 계명창은 다장조 음계에서 정확한 음을 낼 수 있는지 파악하는 시험이다. 예를 들어 '파' 소리를 내보라고 하면 마음속으로 '파' 소리를 찾아서 내야 된다. 절대음감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아닌 사람들은 기준점 '도'를 생각하고 마음속에서 그 '도'부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서 '파'에 도달하는 소리를 내야 된다. 집에서 연습할 때도 아이에게 '파' 소리를 내보라고 한 다음 아이가 그 소리를 내면 피아노를 쳐서 맞았는지 틀렸는지 체크해 주면 된다. 레슨 선생님께서는 오디션장에서 빨리 대답해야 되는 거 아니니까 꼭 한 단계 한 단계 차근차근 올라가라고 하셨다. 이 부분에서 나는 아이가 피아노를 계속 치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가 되었다. 피아노를 치면서 음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으면 조금 더 쉽게 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따라 부르기는 예전에 리듬 치기에서 변형된 유형인데, 심사위원이 15초 정도의 멜로디를 무작위로 부르면 그것을 기억했다고 정확한 음과 박자를 구현해야 되는 것이었다. 여기가 쉽지 않은 부분인 게 심사위원이 부르는 노래는 생각보다 길기 때문에 앞부분을 까먹게 되기 때문이다. 연습할 때도 제일 까다로운 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1차 오디션 장에 갔다. 3년 전이긴 하지만 재수인 만큼 이번에는 헤매지 않고 예술동을 찾아갔다. 미리 받아 본 리스트에 따르면 이번 응시자는 36명이었다. 이 때도 당연히 준비된 반주자를 대동해서 갔다. 반주자 선생님은 우리 아이의 시험을 다 지켜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니까 나중에 피드백을 주실 수도 있다. 이번에도 오디션장에서는 5분의 심사 위원이 앉아 계셨다고 한다. 와, 나도 면접 보러 가서 면접관이 5명이면 진짜 떨릴 것 같은데, 아이가 참여하는 것만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아이는 시험을 보고 나와서 역시나 느낀 점을 잘 말해주지 않았다. 반주자 선생님께서 연습한 대로 잘했다고 하셔서 그런가 보다 했을 뿐이다.
이제 나이에서 잘리기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이 드니까 너무너무 합격이 간절했다. 그렇지만 이미 떨어진 전력도 있는 만큼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다. 1차 합격자 발표날은 화요일이었다.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레슨 선생님이었다. 문자 내용은 2차 준비반 등록 안내였다. 그제야 알았다. 아이가 1차를 합격했다는 사실을. 아, 이렇게 마음에 또 바람이 들어가 버렸다. 아이가 음악과 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바람.
나름 두 번이나 1차를 합격했다는 사실에 아이가 노래를 못하지는 않나 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3년 전에도 1차는 합격하지 않았던가. 2차, 그때 넘지 못했던 2차가 눈앞에 있었다. 레슨 선생님과 10번의 2차 대비 레슨을 하기로 했다. 2차부터는 팀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서소합 2차 오디션은 1차에 붙은 20여 명의 학생들이 팀으로 수업을 받듯이 진행되기 때문에 레슨도 그런 형식으로 하는가 보다 했다.
이제부터는 4주 동안 매주 목요일 5시에 세종문화회관에 가야 되기 때문에 계속 부모가 반차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어쩔 수 없다. 할머니 투입이다. 아이는 매주 할머니와 택시를 타고 세종 문화 회관으로 갔다.
2차에서는 음악성, 발전 가능성, 단체 생활 적합성 등을 포함한 다방면적인 평가가 절대 평가로 진행된다고 레터로 안내를 받았었기 때문에 단체 생활 적합성을 보여주는 것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다행히 그룹 레슨을 같이 받던 친구들이 7명이었기 때문에 그들과 쉬는 시간에 이야기도 많이 하며 재미있게 지냈다고 한다. 그런 부분도 레슨에서 도움을 얻은 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1차 합격자는 23명이었는데 그중 남자 학생은 우리 아이를 포함해서 단 2명이었다고 한다. 2차 오디션은 한 번 갈 때 2시간씩 4번으로 진행되었다. 어떤 내용으로 시험이 진행되는지는 레슨 내용과 아이의 증언에 종합해 본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2차부터는 노래를 1도 하지 않는다. 음악성을 본다고 하면 맞을 듯하다. 1차 시험에서는 '파' 내보라고 하면 아이가 '파' 음정을 내는 구조였다면 2차에서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음이름을 맞춰야 된다. 그런데 '솔' 하나만 듣고 맞추라고 하면 마음속으로 '도, 레, 미, 파, 솔' 세고 솔이요 이렇게 하면 될 텐데 그렇게 쉽게 문제를 내지 않는 듯했다. 즉 한 개의 음이 아닌 최소 3개의 음을 연달아 들려줬다. 반주자가 '레, 시, 파' 이렇게 피아노를 연달아 누르면 '레, 시, 파'를 맞추는 형태였다는 것이다. 이게 해 보면 정말 어렵다.
또 3주 차 때는 면접 같은 시간도 있었다고 한다.
Q. 왜 이 합창단에 지원했니?
Q. 다른 합창단도 하고 있니? 하고 있다면 어떤 곡을 배우고 있니?
Q. 이 합창단에 들어오기 위해 넌 어떠 노력을 하고 있니?
등의 질문을 모두에게 던지셨다고 한다. 아이가 말해주기를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그냥요", "엄마가 시켜서요."
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미 다른 자치구나 학교에서 합창단을 하고 있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아이는 5학년답게 눈치껏 잘 대답했다고 했다. 방심할 수가 없다 정말 전방위적 평가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2차가 정말 녹록지 않다. 사실 레슨을 받는 것과 별개로 집에서도 매일매일 연습을 조금씩이라도 했다. 위에 말한 것처럼 피아노 건반 눌러주는 것은 엄마가 피아노를 못 쳐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저 연습도 했고 코르위붕겐이라는 오른손 음표만 잔뜩 그려진 악보를 보고 계이름으로 따라 부른 것도 연습을 했다. 아마 잘은 몰라도 코르위붕겐의 목적은 정확한 음정을 찍고 음 사이를 이동해 다니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4번의 2차 시험이 끝났다. 이제 정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가 없었다. 3년 전 최종 탈락 한 것을 한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혹시 이번에 탈락하더라도 내가 그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도전해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차 오디션 마지막 날이던 목요일부터 발표가 나는 화요일까지 어떤 정신으로 살았는지 정말 모르겠다. 제정신으로 살 수 없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발표날이 왔다. 3년 전에 오전 11시에 발표 났던 것이 생각이 나서 그 전후로 계속 새로고침해서 들어가 보았으나 발표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까 발표가 늦어진다고 전체 이메일이 와있었는데 나는 몰랐다.
오후 3시 드디어 공지가 올라왔다. 나는 너무 떨려서 직접 확인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레슨 선생님, 애기 아빠 둘 중 누구라도 나보다 먼저 보고 말해주는 것을 상상해 왔으나, 막상 공지가 뜨자 뭔가에 홀린 듯 그냥 클릭을 눌렀다. 일단 최종 합격자는 12명이란 것부터 확인하고 합격자 명단을 스크롤 다운했다.
오! 있다. 아이의 이름이. 대박!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아이가 서울시 소년 소녀 합창단에 최종 합격을 하다니. 물론 이게 바로 아이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아이가 계속 음악과 더불어 살아가봐도 좋다는 일종의 허가서를 받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서소합의 모든 음악교육은 무료이지 않는가. 음악의 기본을 최고의 전문가들에게 무료로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제야 3년 전에는 아이가 왜 떨어졌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마 그 당시 120이 될까 말까 했던 왜소한 체구와 2학년 남자아이로서 고학년, 중학생 언니 오빠들과 지내야 되는 단체 생활이 어려워 보여서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아이는 체구도 작지만 무지 동안이라 누가 봐도 유치원생처럼 보이긴 했었다. 그리고 그때는 내 아이가 "엄마가 시켜서요."라고 대답한 1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때! 이제 붙었는 걸. 왜 이렇게 돌아 돌아온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이 더 좋은 타이밍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2학년 때 되었다면 라이딩에 지쳐 지금 쯤 진작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시키는 것은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아이가 파업을 선언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가 노래에 대한 의지를 가지기 시작했고 본인이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이가 하고 싶은 타이밍 보다 더 좋은 타이밍이 있을 리 만무했다. 사실 합격자 발표가 나기 전 나는 아이로부터 감동을 한 아름 선사받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마지막 2차 시험을 앞두고 여느 날과 같이 나는 아이에게 연습하라는 잔소리를 하려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내가 '오늘 피아노 좀 쳤니?'라고 묻자 아이가 진지하게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엄마, 엄마가 그렇게 말 안 해도 나도 이 시험이 얼마나 나한테 중요한 건지 알고 있어. 내 꿈을 이룰 기회잖아."
그때 내가 받은 감격과 충격은 정말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아이는 이 과정을 거치면서 한 뼘 자라 있었다. 자신이 원해서 자발적으로 연습을 한다는 개념이 도입되었다는 것이 신기했고, 이 경험들을 거치면서 자신의 꿈이 노래 부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라는 정의를 내렸다는 것이 기특했다. 정말 몇 달 전에 서초 어린이 예술제 오디션에 안 데려갔으면 어쩔 뻔했어라는 생각에 정말 감사했던 것 같다.
한 챕터가 맺어진것 같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였다. 나는 끝없이 외부로 부터의 확신을 갈망하고 있었고, 서소합 1차를 합격한 이후에 노래를 잘 한다고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건가라고 생각은 했지만, 무언가 더 필요했다. 내 마음에 확신을 가져다 줄 마지막 한 방이 필요했다. 그래, 어쩌면 노래로 방송에 출연할 수 있을 정도면 그 확신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