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었다. 고통과 함께 죽겠구나 싶었던 것은. 역시 이번 여름도 한 번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구나 싶어 이 악물었다.
난 여름을 싫어한다. 더워서 싫냐고? 아니다. 뜨거운 열기에 녹아내릴 것만 같은 숨 막히는 계절은 늘 내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 고통은 늘 상상 이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늘 잔병치레를 치러왔고, 그중 이유 모를 원인의 증상도 있었다. 그래도 특정 분야의 과 한 개 정도만 대학병원을 다녔고 나머지는 일반 병원을 다녔다. 하지만 또래 아이들에 비해 유독 잔병치레는 끊이질 않았고, 성장기가 끝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의사의 말도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성장기가 끝난 후는 질병과 전쟁의 시작이었다.
유독 바이러스에 취약했다. 면역력이 약해서 그런가 싶어 검사를 했지만 면역력은 정상이거나 오히려 좋은 수치였다. 문제가 없었다.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 그때 그걸 의심해봤어야 했다.
어릴 때부터 두드러기가 종종 있었고, 비염 알레르기와 잔병치레 이것 모두 다 관련이 있었다. 끝내 대학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고, 두 달 동안 여러 검사를 통해 알레르기 내과에서 병명을 알 수 있었다. 만성 두드러기, 비염 알레르기, 갑각류 알레르기 등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바이러스 및 알레르기 반응수치는 일반인의 3~5배 이상이었고, 측정 불가 수치가 떴다. 이게 무슨 관련이 있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나도 아프기 전까지 잘 몰랐으니까.
알레르기 내과는 이름 자체부터 생소하다. 국내에 생긴 지 얼마 안 되었고, 국내 대학 병원에도 몇 개 없는 소수과다. 국내 담당 교수님도 몇 명 계시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알레르기 관련하여 연구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이다. 알레르기는 지구온난화 및 환경오염이 심해지면서 알레르기 환자의 수가 많이 증가하였다. 그리고 그 종류도 급격히 증가하였는데, 중요한 것은 알레르기는 발생 요인이 명확한 것이 있기도 한 반면, 원인이 없이 발생하기도 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내 케이스의 경우, 바이러스 및 알레르기 민감도가 높기 때문에 감염병에 더 취약하다. 여기서 말하는 감염병의 예로는 코로나19, 독감 등이 있다. 기본적으로 몸이 안 좋을 경우에도 천식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감염병으로 인해 합병증으로 급성 폐렴과 천식으로 이어지면 목숨이 위험해진다. 뿐만 아니라 아나필락시스가 오면 비상약 혹은 주사를 급히 처방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하다. 또, 정상적인 면역력을 0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
처음 알레르기 내과를 방문했을 당시 교수님은 내게 위로를 건네셨다. "환자분도 참 살기 힘드셨죠? 때론 꾀병이라고 오해도 받고. 두드러기가 올라와 병원을 가도 딱 가면 가라앉아서 치료도 못 받을 때도 있고. 감기도 너무 자주 걸리고. 환자분과 같은 병명의 환자들의 경우 삶이 힘든 경우가 많아요. 알레르기라는 게 의사들에게도 생소하기도 하고, 특히 환자분 케이스는 의사들 중에서도 특수 케이스라 전문전공 아니면 모를 거예요. 환자분 그런데 이제 시작이에요. 약이 도움은 될지언정 완치가 된다고 말을 못 해요. 국내에서 완치된 분이 없어요. 국내 첫 환자분은 죽을 때까지 치료받다가 돌아가셨어요. 해외에서는 운이 좋으면 약을 끊거나 주사 치료 효과를 본다고 하지만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그래도 삶의 질이 올라가면 그거라도 좋은 거잖아요."
그렇게 난 몇 년째 쭉 독한 약을 먹으며 알레르기를 치료해 왔다. 그리고 취업 때문에 대학병원을 옮겼고, 그곳에서도 약으로 치료를 하다 상태가 조금 더 심해지자 주사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몇 번의 주사치료는 생각보다 괜찮았고 통증은 있었지만 효과가 나름 괜찮았다. 그래서 늘 그랬듯 이번에도 괜찮을 줄 알았다. 오만이었나 보다. 여름을 무사히 지나친 적 없었으면서 또 잊었나 보다, 여름이 매번 주는 고통을.
이번 병원 방문 당시 약이 하나도 듣지 않았고 주사도 효과가 없었다. 알레르기가 계속 올라와 일상에 지장이 있었고, 가려워 밤새 잠도 못 잤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병원 측에 사정을 설명하고 병원 일정을 앞당겼다. 교수님은 주사의 양을 두 배 늘리자고 하셨고, 이틀에 나눠 주사를 맞자고 하셨다. 다행히 요즘 일자리를 구하고 있던 터라 시간이 되어 괜찮다고 했다.
주사는 익숙하면서도 늘 떨렸다. 아무리 맞아도 고통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주사를 맞고 병원 로비에 20분을 앉아있었다. 느낌이 싸했다. 몸에 힘이 쭉 빠지면서 어지러웠다. 날씨가 더웠고 비가 왔기에 그런가 싶었다. 지금까지 이상이 있었던 적이 없었고, 늘 주사를 맞을 때마다 간호사에게 부작용을 물었지만 딱히 없다고 대답했다. 너무 안일했었던 것 같다.
약국에 가려고 걸어가는데 마치 코로나 백신을 맞았던 그때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팔이 뜯어져 나갈 것처럼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몸이 예민하다고 여겼다. 약국에서 약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몸이 축 늘어지기 시작했고 급 피곤과 함께 잠이 몰려왔다. 그제야 몸이 이상하다고 느꼈고 집에 빨리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데 헛구역질이 나오기 시작했다. 두통이 시작됐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팔다리도 저릿저릿했다. 그제야 온몸에 공포가 가득 휩싸였다. 걸어서 10분이면 병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병원으로 돌아갈 생각도 못하고 집에 가서 눕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역으로 도착해서 기차를 탔을 때는 손발이 떨리고 있었고 의자에 앉아있었지만 시야가 흔들렸다. 간신히 내려서 우산으로 땅을 짚었지만 숨소리는 거칠었고 세상이 깜깜 했다 흔들렸다를 반복했다.
문득 작년이 생각났다. 죽을 뻔한 그때가. 그래도 그때는 고통은 없었다. 지금은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고 시야가 어지러웠고 속도 울렁거리고, 한 마디로 죽기 직전이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 간신히 살아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바쁜 사람들 틈에 손잡이를 부여잡고 천천히 걸어가는데 몸이 부딪칠 때마다 비명이 나왔다. 칼에 찔리는 것처럼 너무 아팠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나왔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침대에 몸을 누이고 눈을 떴을 때 다음 날 점심이었다. 더 무서웠던 건 이 주사를 또 맞으러 가야 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이 주사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무서웠던 적이 없었다. 겨우 마음 다잡고 병원으로 향했고, 담당 간호사에게 상태를 설명했다. 간호사는 차팅을 해놓겠다고 했고, 주사를 맞고 타이레놀을 바로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 상태를 지켜보자고 했다. 어제의 그 상태는 알고 보니 쇼크의 상태였고, 당장 119에 신고하거나 응급실을 가야 했던 상태였다고 한다. 하다못해, 병원에 전화했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때의 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주사를 맞고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대기를 했다. 20분쯤 지났을 때 몸에 기운이 쭉 빠지기 시작했다. 너무 이상해서 간호사를 찾아갔다. 나는 내가 비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간호사는 다급히 내 혈압부터 체크했고 다행히 정상이었다. 현재 내 상태를 설명하는 나의 말투가 어눌하면서 더듬기 시작하자 간호사는 나를 회복실로 데려가 눕혔다. 외래 진료가 끝날 때까지 누워있다가 가라고 했다. 그 뒤로도 몇 번의 혈압 체크가 있었고 다행히 혈압은 정상이었다. 어제에 비해 부작용 증상이 괜찮았지만 여전히 두려웠다. 병원에서는 혹시 쇼크가 올 수도 있으니 체크를 하고, 문제가 있으면 바로 119에 신고 후 대학병원 응급실로 와야 한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갈 때쯤 어지럼증과 어눌함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뜨거운 이 여름 다시 나와의 싸움이 시작된 것 같다. 아니면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여전히 나의 청춘을 아픔에게, 어둠에게 양보할 생각이 없다. 못하면 못했지, 안 할 생각은 없다. 죽어서 못하는 것과 핑계로 못하는 것은 다르다. 그건 비겁하다. 비겁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버티고 견딜 수 있었고 아직도 이겨내고 있다. 그리고 이겨낼 것이다.
나의 사연은, 뜨겁고도 찬란했던 그 해 여름에서 이야기는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