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의 13분(1)

[전지적 그녀 시점] - 민서의 시점

by 별하


지후를 공항에서 다시 마주칠 줄은 몰랐다. 내가 떠나기 직전, 바로 그 순간에. 그 사람과 내가 같은 공항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누군가 일부러 맞춰둔 것 같아 숨이 턱 막혔다.


아무 준비 없이 그를 다시 본다는 건, 이별 후의 수많은 시뮬레이션 중 가장 피하고 싶은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장면은… 아주 조용히 나를 향해 걸어왔다. 아무도 모르게, 예고도 없이.


지후는 여전히 그 표정이었다. 예전에 내가 사랑했던, 그리고 내가 먼저 끝내버린 그 표정. 무심한 듯 보이지만, 그 안에 많은 말이 숨어 있는 얼굴.


“여기서 뭐 해?”
물어보면서도 떨렸다. 내가 이 질문을 준비해 왔던 것처럼 들릴까 봐, 그냥 우연히 마주친 척하고 싶은데
벌써부터 숨이 들뜬 걸 그도 알 것 같았다.


“커피 마셨어.”
그렇게 말하더라. 다 식은 커피잔을 두고.


나는 그 순간, 이 사람이 여전히 나를 피해 있는지, 아니면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 오늘 캐나다 가.”
이 말은 그와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말하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쯤.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날, 그 말. 내가 “그만하자”라고 말했을 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동의인 줄 알았고, 그는 내가 다 정리한 줄 알았을 거다.


그 침묵이 너무 길어서, 이제 와서 되묻는 게 너무 늦은 줄 알면서도 왜인지, 꼭 물어보고 싶었다.


그의 대답은 아주 단순했다.

“이미 끝난 줄 알았어.”
“그런 표정이었어.”


... 정말? 내가 그런 표정을 했다고? 나 혼자 다 울면서, 다 감당하면서 말했는데?


그렇게 말한 내가, 끝내고 싶어서 말한 줄 알았다고?


그 말이 서운해서, 나는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3분 남았네.”
탑승까지 남은 시간. 13분이면, 우리 연애의 마지막을 정리하기엔 참 이상한 숫자였다. 너무 짧아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고, 애매하게 길어서 그 사람을 자꾸 보고 싶어지는 시간.


“아직 미워할 시간은 안 됐나 봐.”

그 말속엔, '아직 널 미워하지 못했어'라는 말이 숨어 있었다. 지후는 그런 내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물었다.
“지후야, 너… 그날 울었어?”
“아니.”
“거짓말.”


그의 눈은 늘 말보다 먼저 진심을 드러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날, 그도 울고 있었다는 걸. 내가 등을 돌린 후, 분명히.


탑승 안내 방송이 울렸다. 그 순간, 나는 참 이상하게도 ‘도망쳐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일어났고, 돌아섰다.


“이제 진짜 끝인 거지?”
“이제야 진짜 끝이네.”


우리 사이의 이별은 그날의 말보다, 오늘의 말이 더 진심 같았다.


“너도 잘 살아.”
“너도.”


그를 남겨두고 걷는 길.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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