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초등학교 4학년 어느 주말, 친구들과 종합체육관의 롤러스케이트장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내가 가자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누군가에게 멀리 놀러 가자고 먼저 제안하는 성격이 분명 아니었으니까. 아마 부모님이나 친척 형, 누나를 따라서 가 본 경험이 있는 친구가 "우리들끼리만 같이 한 번 가볼래?"하며 인원을 모았을 것이고, 나 또한 거기에 낀 것이었으리라.
"나 친구들이랑 내일 롤러스케이트장 가는데, 너도 같이 갈래?"
두 살 터울의 동생도 내 말에 신이 나 따라나섰다. 엄마에게 허락도 받고 용돈도 두 배로 받았다. 동생을 잘 챙기라는 엄마의 말과 함께, 두둑해진 바지 주머니로 동생과 걸으며 학교 앞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짤랑거리는 동전으로 버스 요금을 내고, 우리 무리는 버스 한쪽 구석에 모여 앉았다.
스무 정거장이 넘는 먼 길이었지만, 뭐가 그리 신나는지 재잘거리다 보니 금방 도착했던 것 같다. 체육관은 생각보다 훨씬 컸고, 모든 것이 생소했다. '대화료'라고 쓰인 창구 앞에서 친구들이 자기 신발 사이즈를 말하는 것을 보며 나도 용케 나와 동생의 발 사이즈를 기억해 내었고, 그렇게 롤러스케이트를 받아 들었다. '여긴 도대체 뭐 하는 곳이기에, 대화를 하는 데도 돈을 받을까?'라는 의문을 속으로만 생각하길 참 잘했다고,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떠올리곤 한다.
무겁고 어색한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벽을 붙잡으며 롤러장 안으로 들어섰다. 엉거주춤 넘어지는 친구를 보고 웃다가 나도 금세 엉덩방아를 찧었다. 역시 바퀴 달린 것은 핸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 발로, 심지어 뒤로도 타는 사람들을 보며 참 멋지고 자유로워 보인다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나는 롤러장 둘레의 충격 방지 패드와 줄다리기를 하며 겨우겨우 한 발씩 내딛는 게 전부였고, 뒤따라오던 동생의 모습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발을 Y자로 밀어봐!"
친구의 말에 용기를 내어 슥슥 발을 뻗어 나아가 보다가도, 방향을 트는 게 무서워 다시 벽에 딱 붙어버리는 것. 그게 그날의 진도였다. 잠깐 쉬자며 스케이트화를 벗어두고 매점에서 라면이랑 핫바, 음료수까지 사 먹고 나니, 다시 그것을 신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발이 너무 아파 더 탈 자신이 없어지기도 했고. 결국 잘 타는 친구들을 구경하다가 나를 포함한 몇몇이 이제 슬슬 집에 가자고 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초등학생들의 수다가 이어졌다.
"오늘 처음 탔는데, 그래도 재밌었지?"
"응, 형아! 다음에 또 오자."
동생과 그런 대화를 나눈 것도 잠시였다. 온종일 되지도 않는 동작에 힘을 줬던 탓인지 덜컹대는 버스의 앉은 자리에서 피로가 그대로 몰려왔다. 재잘대던 입은 벌어진채로 침이 고이고, 눈은 스르르 감겼다 떠지기를 반복했다. 무리를 이끌던 친구는 겨우 잠을 이겨내며 우리에게 말했다.
"얘들아. 이제 곧 내려야 하니까 준비해야 돼."
그 말을 들으며 분명 나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다시 감겨있는 나의 눈꺼풀. 다시 그 친구가 소리쳤다.
"앗! 나도 깜빡 잠들었다! 근데 여기 어디야...?"
"어? 얘들아!! 우리 이번에 내려야 돼!!"
다른 친구가 다급히 하차 벨을 눌렀다. 나도 화들짝 놀라 일어섰고, 친구들 틈에 끼어 겨우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뒷문이 닫히고 버스가 출발하는 순간,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친구들 무리 속에서 잡으려 했던 동생의 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헉, 얘들아. 내 동생 못 봤어?"
"어...? 나도 방금까지 잠들었다가 겨우 내려서 잘 모르겠는데...?"
“나도. 네 동생, 아까 네 옆에 앉아 있었잖아. 같이 안 내렸어?”
"뭐야?! 그럼 지금 버스에 타고 있다는 거야?"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우리가 대화하는 사이 버스는 이미 저만치 멀어지고 있었다.
'하루 종일 잘 데리고 다녔으면서, 내릴 때 왜 동생을 안 챙겼지?'
'저 버스는 어디까지 가는 거지? 내 동생은? 어디로 가는 거야?'
생각은 더 길어지지 않았다. 아니, 생각하고만 있어서는 안 됐다.
어린 나는 무작정 버스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달렸다.
"잠깐만요!! 아저씨!! 세워주세요!!"
한참 앞서간 버스가 내 목소리를 들을 리 만무했다.
"동생이! 내 동생이 타고 있단 말이에요!!"
울음이 터져 나오기 직전의 표정으로 달리던 그때, 버스가 3차로에서 좌회전을 하려고 차선을 바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차가 저기를 돌아서 안 보이게 되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 절망적인 생각을 하던 찰나, 기적처럼 신호등이 노란 불로, 그리고 이내 빨간 불로 바뀌었다. 버스가 멈춰 섰다. 신호대기 정지선까지 도달한 나는 좌우를 살필 겨를도 없이 도로로 뛰어들었다. 1차로의 맨 앞에 멈춰 있는 버스의 앞문으로 달려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헉, 헉— 아저씨!! 아저씨!! 문, 문 좀 열어 주세요. 허... 허헉."
'치익-' 소리와 함께 앞문이 열렸다.
"무슨 일이냐, 꼬마야—"
"흐억... 제, 제 동생이... 헉... 여기서 못 내렸어요!"
기사 아저씨의 들어오라는 말에, 나는 숨을 몰아쉬며 버스에 올라타 우리가 앉았던 자리로 달려갔다. 동생은 아직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 채로 잠에 빠져 있었다. 그제야 참고 달려왔던 안도의 눈물이 찔끔 나왔다.
"야! 얼른 일어나! 우리 내려야 돼. 다른 애들 다 내렸어!"
그제야 동생은 부스스 눈을 떴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감사하게도 우리를 다음 정류장에 안전하게 내려주셨다. 나와 동생은 왔던 길을 되짚어 걸었고, 나를 따라 버스를 쫓아왔던 친구들과 중간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라며 우리를 반겨준 친구들. 그렇게 그날 나는 인생에서 가장 절박한 달음질을 해내었다.
굉음과 함께 멀어져 가는 버스를 보며, 울음이 터져 나오기 직전까지 뛰어가던 어린 나의 모습을 이따금 떠올리곤 한다. 그날의 그 숨도 제대로 들이 쉬지 못하며 발을 내디뎠던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절박했던 달리기로 남았다. 돌이켜보면 그 달리기는 단순히 ‘동생을 찾아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를 진정 ‘잃을 수도 있다’는 그 서늘한 두려움을 온몸으로 마주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과 간절함이야말로 내가 ‘책임’이라는 단어의 깊이를 온전히 실감한 순간이었다. 그 때 그것은 엄마의 ‘동생을 잘 챙겨야 한다’는 당부의 말이나 나 스스로의 막연한 다짐이 담긴 단어가 아니게 되었다. 내 작은 방심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뻔했다는 것에 대한 아찔함, 그리고 소중한 존재를 결코 잃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이 더해진 깊이로 다가왔다. 그날의 두려움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책임지고 지키려 했던 첫 마음이었다.
그날 이후로는 모여 앉은 자리에서 일어설 때마다 주변을 한 번 더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소중한 이들이 두고 간 것은 없는지, 혹시 잊은 것은 없는지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그 경험은 내 안에 깊이 새겨져, 곁에 거하는 존재를 더 귀히 여기는 태도가 되었다.
잃어버릴 뻔했던 동생의 손을 다시 잡았을때의 안도감이 일종의 무게로 기억에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앞으로의 생을 살아가면서 지켜내야 할, 소중한 것들을 대하는 삶의 주춧돌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