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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의 다른 이름

by StarCluster

습관처럼 보일지 몰라도, 의식적으로 매일 반복하는 것들이 있다.


매일 하나의 어휘를 공부하는 일

매일 하루의 일들을 기록하는 일

매일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는 일




한적한 대낮의 도로. 정차한 차 안. 운전대를 잡은 손을 잠시 내려놓았다. 창문을 내렸다. 매일 매일을 약속한 듯이 떠오르는 태양과 그 햇살을 받으며 광합성을 하는 나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많은 매미 소리가 두터운 습기를 뚫고 고막을 때리는 한 여름. 바람도 구름도 한 점 없는 날. 그저 꼿꼿하게 서 있는 저 나무들 또한 잘 느껴지지는 않지만 매일 조금씩은 꾸준하게 자라겠지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옆 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물었다.


매일 운동하고, 매일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꾸준하다’고 말하잖아. 그럼 이틀에 한 번꼴로 무엇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꾸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뭐 그렇겠지.”


“그러면, 사흘에 한 번은 어떨까?”


“그것도 그렇겠지.”


“그럼— 일주일에 한 번은?


“음, 그렇겠지?”


“그렇다면, 보름이나 한 달에 한 번은?”


“어...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을까?”


장난으로 들릴지도 모를 질문이지만, 친구는 무작정 화를 내지 않고 끝까지 답해주었다. 우리는 점점 확신과는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답변을 두고 생각에 잠겨 잠시 말이 없었다. 꾸준함은 ‘자주’라는 것을 반드시 동반해야만 하는 걸까? 꾸준함이라는 것은 행위와 행위 사이의 기간을 어느 정도까지 허용하는 걸까?


그날의 대화는 그런 식으로 계속 흘러갔다.


“그런데, 매일 무언가 하지는 못해도, 계속 생각하고 주기적으로 돌아온다면 그것도 꾸준함에 해당될 수 있지 않을까?”


“글쎄, 그래도 일정한 반복이 끊기면 꾸준하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으려나—”


하지만 이내 다시 답했다.


“근데 생각해보면, 어떤 일은 자주 하는 것보다는 오래 하는 게 더 힘들기도 한 것 같기도 하다. 네 말대로라면, 연 단위로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는 사람들도 있겠네. 그 사람들은 얼마나 대단한거야?”




대화의 출발점에서는 ‘매일’이 꾸준함을 대표하는 것이라 느껴졌지만, 말미에서는 ‘연 단위의 반복’까지도 그것의 한 형태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왜 우리는 꾸준함을 ‘자주’라는 언어 속에서만 생각했던 걸까. 그것은 ‘흐름을 잃지 않음’에서 비롯된 태도인 것은 아닐까.


잠시 멈춘다고 해서 꾸준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다만 멈춘다는 것은 그런 꾸준함의 가장 큰 불안 요소가 될 수는 있다. 한 번 멈추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우리는 그것을 경계한다. 실제로 그것을 많이 경험해왔기 때문에. 한때의 열심, 이후의 흐려지며 옅어지고 말았던 수많은 일들. 다시 이어가지 못한 약속들과 다짐들을 우리는 마음 한 켠에 묻어두고 살아간다.


그렇기에 멈추는 주기를 짧게 설정하는 매일의 결심과 그것을 해내는 꾸준함도 대단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비교적 오래 멈추었다가 다시 그 일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 또한 단단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매 분 매 초를 하나만 붙들고 있을 수 없기에, 멈춤과 재개의 곡선을 그리며 살아가야 하기에. 결국 ‘다시 시작하는 용기’는 어쩌면 꾸준함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태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든, 한 달에 한 번이든, 혹은 계절이나 해마다의 한 번이든, 그것을 지속하는 것은 꾸준함의 또 다른 형태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다만 빈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얼마나 오래도록 그 곳으로 나아가는지의 방향에도 그 무게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잊지 않으면서도, 잠시 쉬었다가도, 멈춤의 시간이 짧든지, 길든지,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서 걸어가는 한 사람의 의지. 그 시간 속에는 분명 그가 빚어낸 단단함이 깃들어 있다.


꾸준함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지금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것은 목적을 향한 단일한 반복뿐만이 아닌, 자신의 리듬을 지키는 일. 또 다짐들을 이어가고 유지하는 지향성. 잠시 멈추었음에도 다시 돌아와서 그것을 해내는 오늘의 나를 한 번 더 믿어보는 과정이다.




매일 정해놓은 구간을 걷는 사람

사흘마다 식물에 물을 주는 사람


매주 악기를 연습하는 사람

다달이 책을 읽어내는 사람


계절마다 쓰고 버릴 물건을 정리하는 사람

매년 새로운 곳을 계획하고 여행하는 사람


그들은 세상의 속도와 무관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간다.

꾸준한 시간을 잠잠히 겪어가며 삶은 단정해지고 깊어진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끝에, 우리는 ‘꾸준하다’는 말을 단순히 ‘자주 했다’로 표현하기보다는 ‘자신이 정한 흐름을 계속 이어나가는 힘’이라고 정의해 보자 했다. 그것은 결코 완벽한 연속이 될 수 없는, 결심과 흔들림, 멈춤과 회복이 띄엄띄엄 반복되는 삶일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꾸준함이란 결국 시간을 걸어가며 남기는, 우리 각자가 지닌 고유한 발자국의 형태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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