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저작권 공모전
“아이를 반으로 갈라, 두 어미에게 나눠주어라."
왕이 판결을 내렸다. 집행인은 명령을 받잡아, 한 손에 도끼를 그러쥐고 두 여인 사이 놓인 아이를 향해 나아간다. 성큼. 망설임 없는 걸음에 한 여인의 손이 오그라든다. 여인은 좌중을 돌아본다. 왕을 배알하러 온 순례자, 흥미를 눈에 담은 목격자, 마을에서부터 그를 따라온 침묵의 방관자, 방관자들… 아이의 존재는 울음을 따라 세상에 퍼졌건만, 탄생이란 이토록 내밀하고 홀로된지라 그 모체를 증명할 길이 당최 요원하다. 누가 나를 증명하여 왕의 앞에 오를 용기를 보여줄까. 누가 저 아이를 구할 수 있을까. 여인의 머릿속은 끝없이 번뇌하고, 형장의 우람한 손은 주저 없이 아이를 향한다. 바짝 세운 날이 사양에 번뜩인다. 문득, ‘여린 살을 찢어 가르기에 부족함이 없구나’ 생각이 들어, 사고가 멈춘다. 울음보다 큰 비명이 터져 나온다.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여인은 처절하게 죄를 고한다. “제가 감히 왕의 앞에서 거짓을 말했습니다. 아이를 온전히 부인에게 돌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아이는 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왕은 진위를 가름했다.
인간 고유의 존엄성을 받들어, 탄생한 생명체는 모두 목적으로 대우받아야 하며 다른 이의 소유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아이, 작은 존재라는 것은 스스로 위생과 생존을 영위할 수 없어 타인의 꾸준한 관심과 관리를 필요로 한다. 소유물처럼. 솔로몬왕 일화 속 아이 또한 그러하다. 이야기 핵심이자 욕망의 대상. 모든 순간에 원인이고 결과인 이 작은 존재는 전개 내내 그 무엇 하나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왕과 여인의 손짓을 따라 삶과 죽음의 강을 건넌다. 살아서 마치 무생물처럼 다뤄지는 것. 자신을 잉태한 존재로 하여금 소유를 주장하게 하고, 때로 본인 이상으로 애착을 갖게 하는 것. 나는 아이와 여인의 설화가 퍽 ‘예술가’와 ‘작품’ 관계를 닮았다 느꼈다.
어미는 아이를 포기했다. 소유보다 안위를 우선했다. 그리고 현명한 재판관은 그녀의 권리를 찾아주었다.
그를 보는 난, 끝내 아이를 되찾지 못한 숱한 예술가들의 이름을 떠올린다. 그림을 빼앗긴 화가, 노래를 흩어낸 작곡가, 글을 놓친 문장가, 이름을 잃은 발명가, 증명을 물린 수학자… 하나같이 가련하고 흔한 이야기. 흔히 널려 소문조차 되지 못한 편린. 그리하여 오늘도 세상 누군가는 타인의 이름으로 아이를 낳을 것이며, 누군가는 평생에 걸쳐 낳은 자식을 잃고 왕이 없는 곳에서 홀로 울부짖을 것이다. 내 아이를 돌려달라고. 신화 속 왕의 일화가 제본된 수만큼, 혹은 그보다 많은 곳에서.
어찌하면 아이를 지킬 수 있을까.
어떤 비명이 아이를 지키게 하는가.
거짓 자백에서 사랑을 보는 왕은, 현명한 왕은 어디에 있는가.
왜 어미는 홀로 법정에 서야 했던가.
아이의 탄생을 지켜본 많은 이들은, 아이의 울음을 듣고 존재를 알던 이들은,
어찌 누구 하나 설화에 실리지 못했는가.
여인은 용기 있는 자다. 끝없이 위태로운 자리에서도 내면의 가치를 명확히 세워 이를 관철할 수 있는, 목숨을 판돈에 올려 거짓을 고해서라도 아이를 지키고자 한, 용기와 사랑을 갖춘 사람이다.
하지만 용기와 사랑, 도박은 그가 바란 것이었을까.
운명을 맡기고 재판정에 오르는 것이 시비를 가릴 유일한 길이던가.
여인이 진정 원한 건 무엇이었을까.
상상하라. 탁월한 개인이 진위를 가려주리라 믿어 고고한 천칭에 몸을 올리는 한 여인의 모습을.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따라가자. 저울에 오르는 마음. 그것은 어쩌면. 어쩌면 간절함 때문만은 아닌지라. 주변 누구도 그를 보호하지 않아, 그와 아이를 지켜주려 하지 않아, 한 사람의 들숨과 날숨에 삶을 걸어보고자 했던 마지막 기대는 아니었을까. 모든 걸 잃을 수도, 되돌릴 수도 있는 한판 승부를 왕에게 내맡긴 건 아니었을까.
여기. 가련한 싸움을 하는 이들이 있다. 홀로 전장에 나서는 사람이 있다. 아이를 되찾으려 운명을 거는 여인이 있다. 빼앗긴 아이의 조각을 그러안고 거악에 맞서는 어미가 있다. 법의 공정함, 그 판결이 존중하는 가치와 과정을 믿고 오랜 싸움에 나서는 그대가 있다. 이들의 승리를 왕에게 위탁해선 안 된다. ‘현명한 개인이 모든 거짓과 부조리를 뒤엎어 진실을 가려낼 것이라’. 기대는 막연할 뿐. 홀로 맞서는 싸움은 어렵다. 나를 통해 나온 것마저 내 손때 묻은 구석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기에.
그러니 우리는 목소리 내는 이웃이 되어야 한다. "이 여인이 아이를 낳은 자다" 증언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를 찾는 어미에게, 판권을 빼앗긴 작가에게, 연출을 빼앗긴 만화가에게, 시나리오를 빼앗긴 지망생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초판 한 권, 사진 한 장, 기록 하나가 창작자와 피조물의 생애를 좌우한다. 바랜 투고함 속 서류 하나가 다섯 아이를 훔친 가짜 어미를 찾는 솔로몬의 판결이 된다. 법을 알고 조롱하는 이가 아이를 앗아간다면, 그 반대편에 아이를 향한 우리의 눈이 있다. 법전이라는 글줄로 담아내지 못할 추억이 있다. 아이가 품 안에 놀 적 세상에 남긴 기쁨과 슬픔, 함께한 노래가 있다. 일상의 기억은 때로 아이를 지키는 증언이 된다.
살아가는 모든 것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추억이거나, 사회의 기억 속 편재하는 오랜 신화, 어제 만난 누군가의 한마디에서 태어나 내 안에 실을 잣는다. 오늘 나타난 이야기는 먼 옛날의 유산이다. 누군가의 그림이고 흩어진 유언이며 살아남은 기록이다. 그대는 오늘도 나를 만나 한 세상을 꿈꾼다. 이야기는 너의 상상 한 켠을 빌려 현실에 떠오른다. 현실은 언제나 상상보다 한 뼘이 좁아서, 너는 언제고 이야기를 훔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것이다. 너를 가슴 뛰게 한 세상을 가로채는 빈약한 자를 목격할 것이다.
그렇기에 너는 이야기를 존중하고, 너의 상상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야기는 계속되고, 상상에는 멈춤이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