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산>
'내가 나이가 먹었구나'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노래방 책 맨 뒤에 내가 아는 노래가 없을 때,
탄산음료보다는 건강즙이 더 생각날 때,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보다는
이제는 지나가버린 좋았던 시절들에 대한 기억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 느껴질 때
흔히,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들 합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느껴지는
저런 사소한 차이들 때문인지
요즘들어 더더욱
그 말의 무게감을 실감하곤 합니다.
재밌는 건, 그 시절에는 죽을만큼 창피하고 숨고 싶기만 했던
이른바 '흑역사'의 기억들조차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들춰 보면
철없고 바보같았지만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절의 한 단상으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주, <주간 영화예찬>이 소개해 드릴 영화 '변산'은
그러한 '흑역사'를 마주하는 우리 시대 청춘들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내가 삶이 얼마나 화려한지,
혹은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지에 상관 없이
훗날 되돌아 봤을 때 아름답도록 만들어주는
'기억보정'이라는 프로그램이 우리 뇌에서 쉼없이 돌아가고 있는 중이라면,
지금의 나에 대한 가치 판단은 후일로 조금은 미뤄두고,
언젠가 아름답게 기억될 그 날을 기약하며
'지금'을 조금은 더 힘차고, 당차게 살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하루를 오롯이 살아내고 저편으로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사라져가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 속 노을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