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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지은 Sep 26. 2019

유달산

                     

영화 [미나문방구]  스틸


학교 앞 구멍가게 입구에는 우리나라 지도가 그려져 있는 작은 오락기가 놓여 있었다.     

오락기 화면에는 수많은 산 이름들이 지도를 따라 적혀 있었고, 그 위로 불빛이 들어오는 작은 전구가 박혀 있었다. 50원을 넣으면 한반도 산맥을 따라 불빛이 현란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화면 아래 하나밖에 없는 붉은색 버튼을 긴장감이 잔뜩 서린 음악이 끝나기 전에 누르면 어느 한 곳에 불빛이 멈추는데 그 산에 해당하는 상품을 받을 수 있는 오락 게임이었다.  

백두산, 한라산, 태백산, 설악산, 지리산,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높은 산들에는 장난감 말과 권총, 플라스틱 손목시계, 축구공 등 탐나는 상품들이 걸려 있었는데 나는 늘 ‘유달산’만 걸렸다. 

유달산에 해당하는 상품은 땅콩 캐러멜 세 개였다. 당시 50원이면 열 개나 살 수 있던 땅콩 캐러멜을 달랑 세 개만 주는 것이다. 오락기에는 ‘꽝이 없는 오락’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지만 이쯤 되면 유달산은 거의 꽝이나 다름없었다. 

어쩌면 이 오락기는 ‘유달산’만 나오도록 설계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나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다른 산이 나온 적이 없었다. 남동생도, 연우도, 정은이도, 미영이도, 이 게임을 했다 하면 늘 유달산, 땅콩 캐러멜 세 개를 받아 나왔다. 

유달산만 나오는 오락기. 꽝은 없지만 왠지 꽝만 걸리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의 오락기. 

나는 그때 알았다. 유달산은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라는 것을. 


사회과부도를 배우기도 전이었다.        



#뜻밖의 조기교육

#높은 산은 몰라도

#낮은 산은 알았어

#인생의 첫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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