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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위를 걷다
By 조승현 . Apr 19. 2017

김지영 씨, 안녕하신가요?

82년생 김지영 - 조남주

 2016년 겨울이었다. 12월 31일, 새해가 밝기 전 오래간만에 온 가족이 모였다. 모두가 같은 극의 자석인냥 좀처럼 모여지지 않는 가족이지만, 12월 31일은 법칙처럼 모인다. 나름의 불문율이었다. 한해의 마지막과 시작은 꼭 같이 하자는.

 그렇게 반가운 자리에 서른두 살이 된 세 살 터울의 누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이라도 대학원에 갈래요.


 누이의 뺨에서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리곤 말을 이었다.

"이제 와서 얘기하는 거지만, 사실 할아버지가 "여자가 무슨 공부야. 때려치워, 집 안 일이나 해!"라고 했을 때 난 너무 서글펐어요. 책상 대신 주방에 들어가야만 하는 삶이 서글펐어요."


 온 식구들의 숨소리가 멈췄다. 문맥이나 상황에 안 맞는 갑작스러운 선언이어서 이기도 했지만,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하는 모습이 여간 어색해서였다. 20년 전 할아버지가 남긴 한마디는, 현재도 누군가의 가슴에 박혀 살아가고 있었다.



김지영 씨는 그날 아버지에게 무척 많이 혼났다. 왜 그렇게 멀리 학원을 다니느냐, 왜 아무 하고나 말 섞고 다니느냐, 왜 치마가 그렇게 짧냐... 그렇게 배우고 컸다. 조심하라고, 옷을 잘 챙겨 입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라고. 위험한 길, 위험한 시간, 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하라고. 못 아라 보고 못 피하는 사람이 잘못이라고.

- 82년생 김지영 中 -


 82년생 김지영 씨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을 대표한다. 30대를 살고 있는 평범한 여성의 삶이 소설 속에 그대로 재현됐다. 여성의 권리가 얼마간 신장된 시대지만, 여전히 '여성'이란 조건이 굴레로 존재하는 사회를 자연스레 풀어놓았다. 차별은 여전히 존재했다.


  82년생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누이를 떠올렸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가, 가장 가까운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를 20년 동안 몰랐던 죄책감 때문이었다. 무심 한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평생 비수로 남겨질 수 있다는 단순한 진실을 너무도 늦게 자각했다. 누군가가 철저히 상처받은 후에.


 이후 누이는 대학원에 들어갔다. 일과 학교를 오가며 피곤함에 쌓여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전화로 전한 소식이지만 누이는 그렇게 '안녕'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세상의 모든 김지영 씨들이 누이처럼 '안녕'하길 바란다. 적어도 차별은 없는 세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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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천문학을 가르치는 별 선생님이 책을 읽으며, 세상을 읽으며 남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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