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한 대머리 할아버지

by 조승현

탈모 BJ로 유명한 유튜버에게 한 시청자가 물었다.

"탈모 자가 진단법이 있나요?"

유튜버는 간단한 듯 답했다.

"당연하죠. 벌떡 일어나서 안방으로 가세요. 누워서 주무시는 아버지의 머리숱을 보시면, 그것이 바로 자식의 탈모 자가 진단입니다."


서른 살까지만 해도 내 머리는 검다 못해 시커맸다. 흰머리가 나면 귤 더미에서 곪은 귤을 발견한듯 가차없이 뽑아버렸다. 하지만 불과 몇 년이 지난 지금, 흰머리는 생태계 교란종처럼 머리 숲을 점령해버렸다. 보기 싫다고 뽑아냈다간 단박에 대머리가 될 게 뻔하다.

일부러 뽑지 않아도, 머리를 감을 때 우수수 떨어져 나오는 머리카락들을 보면 섬뜩한 불안감이 든다. 아버지는 선방하고 있지만 할아버지는 머리카락은 진작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할아버지처럼 40대에 머리가 다 빠질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해보니 갓 대머리가 되셨을 때도 할아버지는 정말 젊었었다. 마음이 아프다.


할아버지는 어린(?) 할아버지였을 때도 무척 노인 같았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할아버지는 예순이 채 되지 않았다. 그 나이에 할아버지는 벌써 이가 없어 틀니를 꼈다. 머리가 없어 모자도 썼다. 물론 돈도 없었다. 넘치는 거라곤 일찍이 자리 잡은 주름과 지팡이뿐이었다. 누가 봐도 영락없는 영감님이었다.

거기에 성격까지 고약했다. 할아버지는 라면을 먹으러 집에 온 내 친구들을 밥먹듯이 내쫓았다. 라면을 뭐 그리 떠들면서 먹느냐는 것이었다. 어쩔 땐 술에 취해 소리를 질렀고, 어느 날엔 담배를 손에 끼고 역정을 냈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같은 방을 썼다. 끔찍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깜찍한 기억도 아니다.


"당장 술과 담배를 끊지 않으면 돌아가실 겁니다."


어느 겨울, 의사는 할아버지에게 모질게 말했다. 진료라기 보단 위협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할아버지는 술과 담배를 끊지 못했다. 이미 수십 년간 산소처럼 들이켜온 것들이었다. 젊은 의사의 한마디에 바뀔 리 없었다. 몇 해 후 할아버지는 뇌 속 혈관이 막히며 쓰러졌다.

할아버지의 병명은 뇌졸중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며 조심스레 울음을 삼켰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에 드러난 낯선 슬픔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고약한 할아버지의 죽음도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대학생이 되었지만 어른은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죽기로 되어있다. 심지어 로봇도 그렇다. NASA가 2003년에 쏘아 올린 화성 탐사 로봇 오퍼튜니티는 기대 수명이 고작 3 달이었다. 최신형 맥북 프로를 55,000대(약 1.1조 원)를 살 수 있는 돈으로 보낸 탐사선이 고작 90일 간만 작동하는 것이다. 피 같은 세금으로 만들어진, 불멸할 것 같이 생긴 로봇 치고는 수명이 꽤 짧다. 이게 다 화성의 모래 폭풍 때문이다.

화성에 착륙한 오퍼튜니티의 밥줄은 태양이다. 태양광 발전을 통해 전기를 먹으며 화성을 탐사를 한다. 집 나간 로봇이면 밥이라도 잘 먹어야 할 텐데, 하필 화성의 땅은 마치 지구의 사막과 닮았다. 붉은 모래가 가득하다. 게다가 화성에서는 종종 모래 폭풍이 분다. 이때 날아온 모래들이 태양광 패널에 내려앉아 태양빛을 막아버린다. 오퍼튜니티의 전기 밥공기는 한 공기에서 반공기로, 반공기에서 한 숟갈로 점점 작아진다. 결국 집 나간 탐사 로봇은 모래 폭풍에 시달리며 가엾게 식단 조절을 하다가 3개월 만에 굶어 죽는다.

화성 탐사 로봇 오퍼튜니티와 오퍼튜니티가 죽기전 마지막으로 찍은 화성의 풍경


하지만 오퍼튜니티는 역사를 썼다. 2004년부터 2019년까지 총 15년 동안 생존하면서 화성을 누빈 것이다. 과학자들은 물론 우주 덕후들까지 모두 환호했다. 오퍼튜니티는 어떻게 최고의 과학자들이 예상한 기간 보다 60배나 오래 살 수 있었을까.

모래 폭풍 때문이었다. 태양광 패널을 더럽힌 모래 폭풍은 우습게도 자기가 올려놓은 모래들을 털어내기도 했다. 잔잔한 폭풍이 모래를 뿌려놓으면 이따금 강력한 폭풍이 패널 위에 모래를 도로 날려버린 것이다. 그때마다 새로운 생명을 얻은 오퍼튜니티는 신이 나서 달렸다. 90일간 900m만 이동하도록 설계된 오퍼튜니티는 15년 동안 45km를 움직였다. 이게 다 모래 폭풍 때문이다. 병인 줄 알았는데 약이었다.



할아버지가 뇌졸중을 맞은 지 10년이 지났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아직도 살아계신다. 뇌졸중이 할아버지의 지능을 초등학생 정도로 낮췄기 때문이다. 덕분에 할아버지는 술과 담배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 금연, 금주의 고통도 없이 자연스럽게 끊었다.

공룡 같았던 할아버지의 성격도 덩달아 토끼 같아졌다. 할아버지는 전에 없던 얼굴로 맑게 웃었다. 그 미소를 보며 새로운 할아버지가 생긴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세상에, 웃는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라니. 좋았다. 아버지도 밝아진 자신의 아버지를 환대했다. 병인 줄 알았던 뇌졸중이 우리 가족에게는 약이었다. 세상일은 정말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간절히 바란다. 흰머리로 물들어가는 내 모발과, 하수관에 머리카락을 발사하는 머리가 부디 약이 되기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