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에 새벽 한 통

by 조승현

아이들과 별을 보다 보면 가끔 “선생님, 이거 너무 이쁜데 사진 찍으면 안 돼요?”라는 질문이 쏟아진다. 나는 그럴 때마다 “망원경에 핸드폰 카메라로 찍으면 어차피 보이는 것처럼 안 찍혀, 대신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이 천체의 사진을 줄게" 하고 사진을 선물한다. 화려한 성운, 갓 태어난 별 무리, 거대한 소용돌이의 은하까지. 우주 카드 뽑기처럼 여러 장 중 딱 한 장을 골라 주면 아이들은 자신만의 소우주를 손에 넣은 듯 들뜬다.

대부분 내가 아이들에게 선물하는 사진은 내 친구 용운의 사진이다. 천체사진가인 그는 언제든 사진을 쓰라며 내게 새 사진을 보내왔기에 딸깍, 다운로드를 한 뒤 감상한다. 사진 속 성운은 슬러시처럼 붉고 푸른 먼지를 토해냈고, 별들은 금가루처럼 흩날렸다. “이거 엄청 멋있는데?” 호들갑을 떨며 인쇄한 뒤, 필요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쓱 나눠준다. 그 사진들 뒤에 새벽이 있다는 건, 그땐 몰랐다.


독수리 성운 ©천체사진가 신용운

"촬영 한 번 따라올래?"


입김이 마스크를 눅눅하게 만드는 속도로 추위를 알리던 어느 겨울, 용운은 천체 사진 촬영을 하러 함께 가자고 했다. 별이나 볼 줄 알았지, 촬영에는 영 아는 바가 없던 나는 재밌겠다 싶어 용운을 따라나섰다.

강원도 깊은 산자락. 그가 차 트렁크를 열자 카메라, 노트북, 배터리팩, 손난로, 케이블 더미가 좁은 트렁크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이삿짐을 싼 거야?'라고 그에게 묻고 싶지만, 덤으로 딸려온 주제에 잔소리까지 얹을 순 없었다. 그는 강원도 화천의 산 중턱에서 삼각대를 세우고, 망원경과 카메라 그리고 노트북까지 연결했다. 꼬박 1시간 가까이 촬영을 세팅한 것이다. 보통 그 정도 시간이라면 나는 별자리를 실컷 관측하고 돌아서며 '이제 라면이나 먹으러 가볼까?" 했을 시간인데, 그는 그저 세팅을 맞췄다. 그리고 찰칵, 촬영을 시작했다.

그래도 현대 시대의 촬영을 뭐가 달라도 달랐다. 장비와 촬영 대상을 세팅하자, 노트북과 망원경, 카메라가 자동으로 천체를 추적하며 별빛을 담았다. 그동안 나와 용운은 차 안에 앉아 수다를 떨면 되는 일이었다. '뭐야 이거, 설치하고 나니 별거 없잖아?' 그런 생각이 든 찰나, 그는 차 밖으로 뛰쳐나갔다. 삼각대가 바람에 미세하게 흔들렸다며 확인을 해야 한다는 거였다. 순식간에 차 안으로 들어온 찬바람이 내 볼을 때렸다. 그 뒤로도 배터리가 식었을까, 초점이 흐려졌을까, 촬영이 잘 되고 있을까 걱정이 들 때마다 차 밖으로 나갔다. 차문이 열릴 때마다 내부 온도도 –20도로 곤두박질쳐, 히터는 기침만큼도 따뜻하지 않았다. 나는 좌석에 웅크린 채 몸을 떨었고 그는 눈 덮인 경사를 수십 번 왕복했다. 빛이 어둠을 밀어내며 동쪽 하늘이 연보랏빛으로 물들 때까지 이어진 고독한 순례였다.

새벽 다섯 시, 모니터에 첫 이미지를 불러온 용운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붉은 성운의 호흡, 파란 별무리의 맥박,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희미한 먼지 구름이 한 컷 안에 결박돼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수업 시간마다 쉽게 불러 세웠던 사진은 클릭하면 3초 만에 나오는 자판기 커피가 아니라, 고산지대에서 씨를 뿌리고 체리를 따고 로스팅과 핸드드립까지 거친 한 잔의 에스프레소였다. 나는 그 향을 맡는 법도 몰랐으면서, '친구 거니까’라며 편리하게 가져다 쓴 셈이다.


"야 이거 원래 이렇게 힘든 거냐?, 이거 함부로 누구 보여주기도 아깝다야"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걸 나만 보려면 뭐 하러 이 고생을 해. 많은 사람이 봐야 좋지. 대신 사람들이 좋아하면, 내가 찍었다는 으쓱함은 좀 있어”

으쓱함. 그 말이 돌아오는 길 내내 귓속에 맴돌았다. 나는 누가 찍었는 줄 모르게 만든 사진을 아이들에게 선물하며 그가 으쓱함을 느낄 기회를 앗아갔다.


사진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한 편의 시, 한 컷의 만화, 서른 초짜리 연주 영상까지. 클릭 한 번이면 기막힌 결과물이 뚝딱 만들어지는 AI의 시대라지만, 거대한 흐름 속에 자신의 시간과 번거로움을 기꺼이 갈아 넣는 사람들의 수고는 여전히 존경스럽다. 우리는 손쉽게 저장하고 공유하지만, 그 순간은 누군가의 밤과 계절을 통째로 빌려오는 셈이다. 이제 나는 아이들에게 사진을 건넬 때 "선생님 친구가 영하 20도의 추위를 견디며 찍은 소중한 우주야"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타인이 지새운 새벽을 정중하게 마주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에스프레소 같은 사진 한 장에 보낼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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