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혁 Sep 08. 2024

전지적 뇌 시점 사회

영화 <써로게이트(Surrogates)>

  독자 여러분들, 여름휴가 다녀오셨나요? 휴가는 퇴사와는 다르기에 해외 관광지로 떠나셨던 분도, 국내 명소를 방문하셨던 분도 다시 출근하셨을 겁니다. 소수의 직업 여행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여행은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입니다. 소설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 “어둠이 빛의 부재라면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라고 여행의 의미를 간명하게 정의하기도 했죠.   

  지구 곳곳에 숨막히게 아름답거나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너무나 많아서 온라인과 TV에는 여행지 소개 영상이 넘쳐납니다. 스카이다이빙이나 번지 점프처럼 정말 스릴 넘치고 아찔한 영상들도 적지 않습니다. 소심한 저는 그런 영상들을 볼 때마다 현지에 가서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대신 ‘내 몸은 방구석에 있지만 저 위험천만한 행위의 짜릿함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기술은 없을까?’라는 엉뚱한 상상을 합니다. 아무리 VR 기기가 발달하더라도 현장감을 온전히 느끼게 해 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번지 점프를 한다고 가정하면, VR 기기를 착용한다고 해도 사람은 추락하지 않고 멀쩡히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상태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의 뇌와 실시간으로 완벽하게 연결된 대리인 로봇이 있다면 어떨까요? 134m에 달하는 높이를 자랑하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번지 점프 관광지인 뉴질랜드의 ‘네비스 하이와이어(Nevis Highwire)’에 나의 대리인 로봇을 보냅니다. 그곳에 도착한 나의 대리인 로봇이 까마득한 높이에서 계곡을 향해 뛰어내리면 대한민국에 있는 나도 추락하는 느낌을 100% 똑같이 느낄 수 있는 것이죠. 혹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나의 대리인 로봇은 박살나겠지만 내 몸은 털 끝 하나 다친 곳이 없을 겁니다.   


[134m 높이의 뉴질랜드 ‘네비스 하이와이어’에서 추락해 보시겠습니까?] 

(사진 출처 : travelonline.com) 


  영화 <써로게이트(Surrogates)>는 인간의 뇌와 연결된 대리인 로봇들이 인간의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미래 사회를 묘사합니다. 영화 속에서 대리인 로봇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것은 법과 제도로 보장되어 있습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도 대리인 로봇으로 정상적 사회 활동이 가능하고, 극단적으로 낮은 범죄율과 사고율을 유지할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실현한다는 명목이 대다수의 동의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집안에 편히 누워서 밥벌이뿐만 아니라 친목 활동이나 데이트도 대리인 로봇에게 맡깁니다. 그렇게 해도 모든 것을 전부 오롯이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뇌가 관장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그야말로 ‘전지적 뇌 시점 사회’입니다. 


[영화 <써로게이트>에서는 누구나 뇌파 인식 장치만 머리에 쓰면 사람의 뇌와 연결된 대리인 로봇이 모든 것을 즉시 대신해 줍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 <써로게이트>는 실존하는 기술인 BCI(Brain-Computer Interface)에 상상력을 가미해 만든 작품입니다. 인간의 뇌파를 이용해 사물을 통제하는 기술인 BCI는 꽤 오래전부터 연구됐지만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Neuralink)’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대중적 관심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올해 초에는 뉴럴링크가 개발한 뇌 임플란트 장치를 실제 사람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일론 머스크가 직접 발표하면서 큰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임상 시험이 잘 진행된다면 척수 손상으로 인한 사지마비 환자나 근위축성측색경화증(루게릭병) 환자처럼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뇌파만으로 스마트폰이나 다른 장치들을 사용하는 것이 곧 가능해질 것입니다.  


[뉴럴링크가 개발한 ‘뇌 임플란트 장치’. 올해 초 이것을 실제 사람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사진 출처 : 뉴럴링크)


  얼마 전에는 미국 UC 데이비스(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연구진의 주도로 음성 BCI 기술이 개발됐습니다. 미국 UC 데이비스,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브라운대 의대 공동 연구팀은 BCI를 이용해 뇌 신호를 음성으로 변환할 수 있고, 장치 작동 후 불과 몇 분 만에 루게릭병 환자가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루게릭병으로 인해 사지마비와 언어 장애를 겪는 45세 남성 케이시 해럴은 BCI 기술 덕분에 자기 목소리로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루게릭병 진단을 받기 전 해럴의 음성을 녹음한 파일로 인공지능을 훈련시켜 컴퓨터에서 나오는 음성을 그의 목소리와 비슷하게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BCI 기술 덕분에 자신의 목소리로 대화하는 기쁨을 되찾은 케이시 해럴] 
(사진 출처 : UC데이비스)


  나날이 발전하는 BCI 기술 덕분에 조만간 장애가 전혀 문제되지 않는 세상이 올 것 같다는 희망이 생깁니다. 그런데 과연 게으르고 욕심 많은 인간이 BCI 기술을 장애 해결에 활용하는 정도로 만족할지 모르겠습니다. 영화 <써로게이트>에서처럼 많은 사람들이 대리인 로봇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끝) 

매거진의 이전글 임박한 '1가구 1로봇 집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