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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Jan 24. 2017

신카이 마코토의 꿈, 그리고 이름의 의미

시네 프로타주 #07 너의 이름은.

2백만을 넘어 3백만을 바라보는 <너의 이름은.>의 인기가 여전히 뜨겁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가지고 있는 301만이라는 관객 수를 넘을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이번 주 시네 프로타주에서는 2017년의 첫 번째 화제작 <너의 이름을.>을 통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바랐던 것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너의 이름은.>에 관한 평들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의 장기가 여전히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사실적이고 아름다운 작화, 마음을 녹이는 음악, 그리고 애절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죠. 물론, 비판도 많았습니다. 특히, 미즈하를 비추는 장면에서 불편했던 관객이 많았고, 다소 부족한 개연성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개연성 문제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에 늘 뒤따르는 비판입니다. 그의 중심 모티브는 ‘운명론적’ 인연이죠.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난다” 로맨틱하지만 이런 설정에 관대하지 않은 관객은, 손발이 오그라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의 가장 친절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도 나름의 노력을 한 결과물이란 거죠. 개인적으로는 이전 작품의 느낌과 완성도가 더 좋지만, 그에겐 변해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작품의 중심엔 동일본대지진이 있었고, 이는 꽤 무거운 문제죠. 재난 이후의 작품에서 그는 이전의 모호함과 서정성보다 구체적 메시지, ‘이름을 기억하라’는 말을 해야만 했습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꿈

<너의 이름은.>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너무 많아 꼽기 어렵지만,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의외로 선택하기 쉬웠습니다. 동의하실지 모르겠지만, 저에겐 운석 일부가 물속에 떨어져,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장면이 가장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여러 의미가 있죠, 우선, 죽음을 가져온 ‘운석’의 낙하 장면을 생명이 시작하는 순간으로 변하게 했습니다. 즉, 죽음의 이미지를 탄생의 이미지로 치환한 것이죠. 신카이 마코토가 애니메이션의 환상성, 그리고 상상력으로 하고 싶었던 건, 이유 없이 죽어야 했던 사람들을 다시 살리는 게 아니었을까요. 그들을 다시 살릴 수 있기를 바라며, 그 장면을 그리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감독의 바람이 투영된 그 장면은 가장 슬펐고,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의 의미

언급한 장면 다음에 미즈하의 생애가 짧게 보입니다. 그리고 이 장면을 통해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죠. 피해자 명부 속에 등장한 미즈하의 이름은 수 백 명의 희생자 중 한 명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타키가 사적으로 소화한 이름, 관심을 가진 미즈하의 이름 속엔 한 인간의 역사가 있었죠.


여기서 이름,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건, 수백 명 중의 하나라는 통계적 위치에서, 추억이 있는 인간의 삶으로의 조명을 뜻합니다. 수많은 희생자의 삶을 그렇게라도 기억하고, 새기며,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신카이 마코토는 그토록 열심히 이름에 얽매였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기억해야 할 이름이 없을까요? 기억해야할 수많은 이름을 되뇌며, 이번 주 시네 프로타주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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