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잡썰 Ep17. '플래툰' 전술에 관한 단상
이번 시즌 롯데 자이언츠 야구의 전술적 특징을 말한다면, 공격에서는 '플래툰'을 말할 수 있다. 이는 상대 선발에 따라 좌/우 타자를 선별적으로 선발 기용하는 전술로 공격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사용된다. 선수별, 상황별로 디테일한 데이터 분석이 활발히 진행되는 현대 야구와 잘 어울리는 플래툰. 롯데는 이 전술로 얼마나 득을 보고 있는 현대적인 팀이었을까.
플래툰 전략을 활용하는 감독은 일반적으로는 상대 좌투수가 등판하는 날 우타자를 배치한다. 좌투수 상대 시 우타자가 좌타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을 더 오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고 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플래툰이라 하지만, 상대적으로 우투수가 많은 종목 특성상 좌투수가 등판하는 날 더 부각되는 면이 있다. 이때 좌/우 투수에 따라 선발 여부가 결정되는 선수는 타격에 약점이 있거나, 좌우투수 성적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미완의 선수다. 이들의 장점을 살려서 더 좋은 결과를 얻겠다는 거다. 다르게 생각하면, 주전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런 반쪽 기용을 극복해야 한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올 시즌 롯데의 우익수 자리는 비어있었다. 작년까지 부동의 우익수였던 손아섭이 팀을 떠났고, 여태 주전으로 뛴 적 없는 고승민, 신용수, 추재현, 그리고 신인 조세진이 경쟁을 펼쳐야 했다. 안타깝게도 이들 중 외야 수비에서 압도적으로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선수는커녕,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준 선수조차 없었다. 더구나 타격에서도 1군 적응에 물음표가 많았기에 감독은 어떤 선수를 주전으로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더구나 이번 시즌 사직 구장은 역사상 가장 넓은 외야를 자랑하지 않았던가. 결국, 서튼 감독의 선택은 좌/우 투수에 따른 플래툰 기용이었다.
시즌 초엔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1군 엔트리에 있던 고승민과 조세진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고, 두각을 보이는 선수도 없었다. 그러나 후반기 플래툰 전술은 남용되고 있었다. 선수들의 상황과 컨디션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적인 공식처럼 고착화되었다. 그게 답이 맞는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한 예로 신용수가 홈런 2개를 때리고, 좋은 타구를 생산했던 아름다운 일주일이 있었다. 타격감이 올라왔다는 신호였다. 그런데 서튼 감독은 그다음 주 경기에 그를 선발로 단 한 경기를 쓰지 않았다. 신용수는 우타자 좌투수일 때만 쓰겠다는 그만의 원칙, 플래툰 탓일 거다(대주자, 대타로는 활용하려고 했었다).
고승민 역시 후반기 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빠른 타구 속도로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도 좌완 선발이 나올 때면 어김없이 빠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당시 감독은 타율이 2할 후반대인 그를 대신해 1할 중반 대인 선수를 썼는데, 그의 플래툰 원칙이 얼마나 확고한지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런 플래툰 기용이 큰 재미를 봤을까? 그러지 못했고, 팀 성적도 좋지 못하니 이런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플래툰의 성과가 좋았다고 해도 이런 글을 쓰고 있었을 거다. 플래툰을 향한 어떤 의문과 불만 탓이다.
하나, 감독이 해야 할 건 플래툰 같은 그만의 원칙만 세우는 게 아니다. 데이터로 나오지 않는 인간적인 부분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해 기용하는 용병술이 있어야 감독이다. 선수도 인간이기에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다. 이때 감독은 선수에게 좋은 흐름을 만들어주고, 흐름이 좋을 때는 이어줘야 하며, 나쁠 때는 그 흐름을 끊을 수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그날그날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를 기용해 최적의 결과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감독은 데이터만 읽는 게 아니라, 좋은 데이터를 만들어줄 수 있는 감독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선 선수의 컨디션, 고민과 연습 태도, 타구 속도와 방향 등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걸 체크하지 못하고 라인업에도 반영할 수 없다면, 굳이 감독이 선수들 곁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둘, 플래툰은 한 선수를 반쪽 짜리 선수로 머물게 한다. 고승민은 00년생, 조세진은 03년 생이다. 이들이 좌/우투수의 공만 상대하는 경험만 가진다면, 반대 상황에 대한 대처는 언제 할 수 있을까. 평생 좌/우투수의 공만 치는 선수가 되어야 할까. 1군에서 그 공을 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부족하다면 보완할 계기도 마련해줘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재능이 있는지 파악하지도 못한 채 반쪽짜리 선수로 밖에 성장하지 못한다. 이건 야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삶에서도 장점만 부각하는 게 필요한 상황과 역할이 있다. 성공을 위해서 약점보다 장점을 부각하는 게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말이 온전한 한 사람의 역할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는 다르다. 싫고 힘들어도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성장과 성숙을 위해 해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플래툰은 그럴 기회를 빼앗아 간다.
플래툰과 함께 고착화된 라인업은 감독의 생각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지난주 자이언츠의 캡틴 전준우는 올 시즌 최악의 부진에 빠졌다. 상위 타선(3-3-5-4)에서 22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면서 기회 때마다 흐름을 끊어먹었다. 무안타가 길어질수록 선수는 초조해지고, 시야도 좁아지며, 스트레스에 의해 화도 많아질 수 있다. 이럴 때 감독이 선수를 위해 해줘야 하는 건 타순 조정이나 휴식이다. 물론 지난주 서튼은 전준우에게 한 경기 휴식을 줬고, 우천으로 한 경기가 취소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끝까지 중심타선에 배치했고, 공격 흐름을 깨는 등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특히, 지난주는 팀이 1점 차 패배를 세 번이나 당하는 등 1점이 소중했던 경기다. 이런 고집을 선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짜 믿음과 사랑은 그 기간과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 믿음과 사랑은 그걸 주는 방법을 아는 데서 출발한다. 서튼 감독은 우리 선수들을 믿고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감독이다. 그래서 선수와 팀, 팬 모두가 힘들어지고 있다.
플래툰은 좌투수가 귀했던 시절의 유산이다. 물론, 지금도 특정 투수와 타자의 데이터를 참고해 천적인 선수를 기용하는 유연함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선수 개개인의 역량이 늘어난 이 시점에 이 플래툰만을 내세우는 건 건 구시대적이다. 서튼 감독이 계속 이렇게 막무가내로 플래툰을 고집한다면, 자이언츠 팬들도 감독을 위해 준비할 데이터가 많다. SSG(4승 1무 9패), 기아(4승 11패) 상대 시 압도적으로 약했기에 그는 이 두 팀과의 경기에서 감독으로 나설 수 없다. 그리고 월별 승률로 봤을 때 유독 약했던 짝수 달에도 감독직을 맡아서는 안된다. 그게 우리가 서튼 감독을 향한 사랑을 증명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