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는 온전히,
시간을 버티고 서 있었다.
그래서, 기계는
비와 해를 견디며 산화된다.
녹슨 푸른 곸팡이는
언젠가는 멈추어 서야 할,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기계는
구체 관절이 내는 소리와
철관을 타고 흐르는 윤활유와
마찰열이 만든 기름때가 쩍쩍 달라붙어오는 소리를
온전히, 자신의 수신기로 듣고
부품을 갈, 때가 된 거라며
먼 옛날에 살았던 미래소년,
코난이 살았다는 인더스트리아 앞에 서서
청진기를 목에 건 고철판매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동그란 보안경을 낀 그는
부품들의 생산년도를 확인하고
일련번호가 각인된 부품의 갯수를 센다.
부속을 갈면 좀더
내구 연한을 연장시킬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부품들은 유기적으로 작동하므로
작은 부품 하나로 인해
거대한 기계의 작동이 멈춰설 수 있다고,
결국, 폐기해야 할, 때가 당겨질 뿐이라고
동그란 보안경 속에서
생활처럼 말한다.
기계는, 자신이
곧 폐기처분 될 처지에 놓인 사실에 대해
생경하고 낯선 삼자가 되어
요동치는 감정을 숨겼지만, 그것보다 더 놀라운 발견은
애초에 기계였고,
그것도 오래 버티도록 내구 설계된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버린 것이었다.
이 단순한 발견에서 시작된
더 놀라운 사실은
자신에게 배당된 이 작은 방과,
방을 둘러싼, 광장 또한
조작된 계획 아래 만들어진 철저한 기억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어둠을 빛이라고 인지하도록 만든 프로그램에 따라
인지하는 희망은
끝까지 빛을 갈구하도록 만든
서럽고도 더러운 욕망을 욕망하게 했다.
기계는 자신이
엘리베이터에 갇혀
앞뒤 벽에 붙은 거울을 통해 무한 반복되는
그 장면의 중심에
자신, 기계가
서 있다는 것을
틀어진 공간 사이로 보이는 칠흑의 무한속에서
똑똑히 보았다.
이제 이,
오래된 기계는
감정이라고 믿었던 자신의 풍경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가 그토록 애원한
허와 실, 무와 유 사이, 존재의 확고한 진실 앞에서
미궁과도 같았던 지난 시간을
그렇게,
버티고 섰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