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꼭 맞는 앞으로의 30년을 위한 마음 준비
12월 29일 저녁부터 거의 1주일간 나름 별생각 없이 푹 쉴 수 있었다.
일단 연말에 아무 생각도 안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풋볼 매니저 2021을 구매했다. 실제로 영국 법원에서는 이 게임을 이혼 사유로 인정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게임인데, 2012년 한 해만 영국에서 35쌍의 커플이 이 게임 때문에 이혼을 했다고 하더라. 내가 딱 그 2012년도부터 매년 연말마다 행사처럼 했었는데, 올해는 특히 게임도 대거 업데이트되고, 갓 띵작이란 소리를 왕창 듣고… 기대감에 부풀어서 영국의 6부 리그 격인 내셔널리그 노스의 게이트 헤드를 픽해 꾸역꾸역 4부까지 올라왔다. 일주일간 아주 행복하고 즐거운 고행길이었다.
물론, 게임 폐인이 된 것은 아니다.
도중에 같이 사는 친구들이랑 밥도 해 먹고, 밥도 시켜 먹고, 밥도 사 먹고, 밥도 지어먹고… 새로 산 보드게임 도하고, 커피도 내려 먹고, 읽고 싶던 책도 읽고 하면서 그야말로 빈둥거림의 끝을 달렸다. 그러던 도중 SNS에 뭔가 2020년도의 회고와 2021년 새해 목표가 하나둘씩 눈에 뜨여 내년이 소의 해구나… 난 소가 아닌데… 나도 그래도 사람인데… 나도 목표를 세워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틈틈이 게임을 하는 도중에 잠깐 멍 때리는 시간에, 작년 한 해는 뭐가 아쉬웠던가… 하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내면의 나를 마주해볼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름대로 몇 가지 삶의 방식을 정해보았다.
글도 말도 담백하게 하자. 내가 원래 밑밥이 많은 스타일인 건 맞다. 이 글만 해도 위에 깔린 이 수많은 밑밥을 보면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이 뭔데?라는 말을 꽤 자주 들어본 나로서는 ‘두괄식’ 또는 ‘밑밥 빼고’라는 것에 여러 해 동안 고통받고 있었다.
근데 사람의 사고방식이라는 게 그렇게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말투도 그렇고. 고등학교 때 수시를 노려보기 위해 논술학원에 잠깐 다녔던 적이 있는데, 그때도 선생님이 그렇게 혼을 냈었다. “두괄식으로 쓰라고!” 영국에서 에세이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하고자 하는 말이 명확하지 않으니, 'All in all'이라거나 'Therefore'라고 대놓고 써주라고. 사람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나중에는 정말 너무 안돼서, 내 방식대로 다 써놓은 다음에, 나중에 에세이의 구조를 다시 그 ‘정석 같은 구조’로 짜깁기하기도 했었다.
그러다 보니, 뭔가 스스로 이런 글을 쓸 때도 둘 중 하나가 되었다. ‘정석 같은 구조’로 다시 재가공하거나, 아니면 ‘내 표현 방법’을 강요하기 위해 다양한 밑밥과 자료를 덧붙였다. 왠지 이런 자료도 덧붙이면 사람들이 내 이야기 방식도 이해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른 이의 생각도 가져와 봤고 리포트도 뒤적거려보고, 뉴스와 그래프도 마구 스크랩했던 것 같다. 그렇게 완성된 글은 꽤나 풍성했다.
결과적으로는 이게 내게 좋은 스킬이 되긴 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자료를 찾는지 잘 알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말해서 내 글과 말과 행동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둔 것을 얹지 않으면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를 가지는 글을 쓰고자 과연 노력하였는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2020년에는 내 능력치를 상회하는 글을 쓸 일이 꽤 있었다. 지금 그냥 바로 생각나는 것만 해도 3건이나 된다. 이를 통해서 나는 사유의 시간을 즐기는 철학자나, 아카데믹한 인사이트를 끌어낼 수 있는 석학, 사람들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는 능력이 있는 에세이 작가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도전하는 글에는 많은 배움이 있지만, 내 글은 나의 얕은 개똥철학에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둔 것을 얹어서 멋스러움을 덧씌운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는 내 글과 말에서 멋스러움은 더 빼고, 도전을 담은 것들을 내놓고 싶다. 더 담백하게, 솔직하게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담은 도전을 할 수 있기를.
엄마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분명 중, 고등학교 무렵 이런 말을 들었다. “기태야. 최악은 미리 생각하고 대비해야만 하는 거야. 그래야 피할 수 있어” 어떤 맥락이었는지 까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지금까지도 내 인생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준 문장을 꼽으라면 이걸 거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그냥 내 인생 모토처럼 잡혀버렸다. “최상이 오면 선물처럼 감사하게 생각하고, 최악은 대비해서 피하자.”
엄마는 분명 그 당시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을 대비하자는 말에서 이런 얘기를 해줬을 것이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자는 의미가 아녔을까 하고 좋게 생각해본다. 하지만 내 성격과 맞아떨어지면서 이 모토는 꽤나 걷잡을 수 없는 범위로 확장된다. 최상이나 최악이라는 단어는 주관적이다. 당사자는 정확히 알겠지만, 남은 쉽게 오해하기 딱 좋으니까.
나는 당황하는 것이 진짜 세상에서 제일 싫다. 취업에서 오는 리스크가 너무 싫어서 창업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나는 실제로 창업이 삶의 많은 리스크를 줄여나갈 수 있는 길이라고 아직도 믿는다. 그러므로 나한테 있어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부정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악의 상황은 어떻게 해도 대비할 수 없다. 최악을 대비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세팅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최악’을 그냥 편하게 ‘큰 위기상황’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다 보니 생각할 수 있는 위기를 대비하면, 또 다른 위기가 보이고, 또 보이고 또 보이더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집착하면서 모든 경우의 수를 계속 끊임없이 따져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정말 이게 다인가. 또 다른 가능성은 없는가. 이렇게 대비해볼까 하고 대비하고. 저렇게도 또 생각해보고. 쓸데없이 계속 새로운 상황에 맞춰 집착하다 보니 번아웃도 자주 왔다.
결국 이게 내 능력 밖으로 무리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떤 프로젝트를 잘 해내고 싶어서 시작한 행위였을 뿐인데, 너무 위기만을 대비하기 위해 애를 썼달까.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경우도 더 많이 생겨났다. 그렇게 내가 생각했던 만큼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조바심이 들면, 나는 또 욕심이 많은 사람이니 나를 또 다른 절벽들로 밀어 넣었다. 여기서는 안됐으니 다른 곳에서라도 결과물을 더 만들어 내라고. 그럼 새로운 절벽에서 어떻게 하면 또 절벽 밖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다. 왼쪽 발인가. 오른쪽 발인가. 고민하고, 대비하고, 그렇게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에 기운을 지속해서 참 많이 뺐다.
그러다 보니 나는 ‘꾸준히 애쓰는 사람’이 되었다. 들인 노력과 시간, 애정을 생각해보면 나는 참 효율성과는 담쌓은 사람이 되어갔다. 아니 이런 경우는 어떻게? 저런 경우는 어떻게? 경우의 수들이 생각이 날 때마다 새롭게 고민하고 행동했다. 그 프로젝트를 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그냥 또 새로운 리스크를 대비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행동했을 뿐이다.
그래서 역으로 올해는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리스크를 대비하는 활동에 무리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어본다. 그리고 리스크에 대해서 대비한 이후에는 다시 새로운 위기상황을 찾아 나서지 않기로. 의도적으로 그냥 리스크를 인지한 채로 내버려 두는 것이 목표다. 그렇게 점점 새로 고침의 빈도를 줄여나가기로. 그러면 자연스럽게 효율성이 떨어질 일도, 또 내가 나를 절벽으로 밀어 넣는 일도 줄어들 테니까.
느낌적인 느낌. 그런 느낌이 있어. 이러이러한 느낌이야. 약간 삘이 그래.
아마 나랑 대화를 어느 정도 지속해본 사람들은 내가 이런 표현을 애용한다는 것을 알 수도 있다. 뭔가 직감과 통찰은 어렴풋하게 통한다고 했던가, 어릴 때부터 적당히 때려 맞추더라도 그냥 그 느낌적인 느낌으로 맞추는 것이 그렇게 좋았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정석보다 지름길을 좋아하는 나의 성격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또 해본다.
고등학교 때 신종 플루에 걸렸었는데, 그때 아버지 방에서 한동안 격리당해 있었다. 한 2주 정도 그 방에 있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 방은 와이파이도 잘 안 터졌던 터라, 서재에 꽂혀있던 인테리어 책이랑 손자병법, 손금 책, 관상책, 자기 계발 책 이런 것들을 어줍지 않게 많이 들춰봤던 것 같다. 그때 배웠던 잡식을 요즘까지도 써먹고 있으니 사짜라고 해도 어쩔 수 없지만, 10년이 넘게 자체적으로 A/B 테스팅을 했다고 생각해보면 이제는 또 영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뭔가 무허가로 보는 것이 양심에 찔려서, 저번 10월부터는 타로점을 공부해보기 시작했다. 타로도 공부라는 사람들도 있고, 또 그냥 재미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같이 사는 친구들 대상으로 꽤나 여러 번 테스트도 해봤다. 몇 번 보고 난 이후부터는 그래도 내가 은근히 재능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맞아떨어져서 양심에 찔리지 않는 정도까지는 되었다.
근데 친구들이 너 그냥 타로도 적당히 말빨로 보는 게 아니냐고 말하더라. 뭔가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모욕당하는 기분이 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았었지만, 그만큼 말빨이 좋다는 얘기인가 하면서 은연중에 넘어가 보려고 애쓰긴 했다. 근데 덕분에 곰곰이 왜 내가 타로점이랑 잘 맞는다고 느끼는지 생각해보게 되었고, 내 평상시 말투가 그냥 타로점 볼 때 말투와 사실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방향, 어떤 느낌, 어떤 정성적인 것을 내가 자주 얘기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물며 올해 새해 인사말로 ‘새해에는 더더욱 행복해지자’는 얘기를 가장 많이 했는데, 이거도 ‘행복’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서 얘기한 것 같다. 사람마다 행복의 조건들이나 기준들은 다 다를 것인데 말이다.
물론 모든 정성적인 표현을 정량화해야 한다고 느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뭉뚱그려서 표현해서 내가 더 많이 알아내지 못한 수많은 인사이트가 아까워졌다. 뾰족하고 정확하게 얘기할수록 옳고 그름이 명확해져서 인사이트가 생길 수 있다. 다양한 정량적인 기준을 가지고 얘기하면서 평상시에도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느낌적인 느낌이라는 방향성으로 대신해왔던 것들을 올해는 지속해서 섬세하게 그리고 더 명확하게 만들어보기를.
진짜 일반적이고 재미없는 취미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앞으로도 나는 책 읽기, 맛있는 거 먹기, 요리하기, 음악 감상 그리고 글쓰기가 내 취미일 예정이다. 원래 직접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되게 좋아했는데, 코로나도 코로나고, 예전만큼 성대가 튼튼하지 않아서… 뭔가 슬프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겨주기로 했다.
영국에 있을 때 가장 아쉬웠던 것 중 하나가 책을 마음껏 못 산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들어오는 친구들이 있을 때마다 책을 한 두 권씩 부탁했었는데, 한국에 들어와서부터는 매달 그냥 관심이 가고 내가 읽고 싶어 지는 책이 있으면 손쉽게 책을 구매했던 것 같다. 나도 이렇게 글을 써봐서 느끼는 거지만, 솔직히 책에 들어가는 애정과 노력을 생각해보면 정말 가성비가 장난 없다. 괜히 다른 곳에 플렉스 할 바에야, 아크엔북이나 교보문고에 가서 마음껏 책을 구경하고 한 두 권 구매해가지고 오는 것이 좋다. 책은 역시 종이로 읽어야 제맛이다. 칼럼이나 짧은 글은 컴퓨터나 핸드폰이 더 편하지만, 각 잡고 읽을 때는 역시 종이책이다. 그래서 책은 계속 읽을 것 같다. 1분기에는 오픈애즈에서 하는 북클럽을 시작한다. 2분기에도 하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못 한다면 1주일에 한 권 정도는 읽어보고자 한다.
나는 감각 수용기가 되게 발달한 유형이다. 특히 청각과 미각이 개중에서도 많이 예민한 편이라고 느낀다. 옛날에는 소머즈라고 불렸을 정도로 진짜 귀가 좋았었는데, 요즘은 예전보다 귀가 많이 안 좋아졌다. 작년 초에 영국에서 한 번 이명이 크게 들린 이후부터 특히 오른쪽 귀가 많이 안 좋아졌다. 한참 비자 때문에 스트레스받던 때라 그런지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귀는 앞으로 좋아질 일이 없는데 참 아쉽다. 하지만 그래도 음악은 계속 듣는다.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는 것이 큰 행복이다. 장르는 가리지 않고 들어 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래도 분명 취향은 있다. 테마에 따라 2020년에만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벌써 6개를 만들었다. 음질 때문에 애플 뮤직으로 갈아타야 하나 계속 생각하고 있지만, 뭔가 범위가 유튜브가 더 넓어 보여서 고민이 된다. 새로운 음악을 발굴해서 소개해주는 건 꽤나 큰 즐거움이다.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를 관광공사 뮤비보다 반년도 넘게 먼저 띵작으로 발굴하고 얼리어답터가 된 기분을 뽐낼 수 있던 세월은 특히 즐거웠다.
이상하게 영국에서 한국에 가끔씩 들어오면 지인들이 좋은 음식을 그렇게 자주 사줬다. 한때 차를 팔아서 그런지, 요리를 좋아해서 그런지, 뭔가 이미지가 그래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한 지인은 내가 미식가라서 좋은 음식점에 데려가야 욕 안 먹는다고 부담된다고 할 정도였다.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거는 자연의 섭리 같은 것이라 느끼고, 미식가 축에도 못 끼는 1인으로서 굉장히 부끄러웠다. 그래도 이렇게 좋은 음식들을 많은 좋은 분들에게 대접받았어서 그런지, 흉내 내보는 것도 좋아한다. 내 맘대로 레시피를 만들어내는 것도 좋아하고, 있는 레시피를 따라 해 보면서 이해도를 높이는 것도 좋아한다. 더 맛있는 것들을 많이 탐하고, 많이 탐구해볼 예정이다.
이 다양한 나의 취미들을 기반으로 올해는 열심히 기록해볼 예정이다. 노션 앰배서더가 된 기념으로 노션에 마치 '말 많고 고독한 디제이 뉴스레터'처럼 좋아하는 노래들을 아카이브 해볼 생각도 있고, 작년에 소소하게 테스트해봤던 것처럼 맛있는 레시피를 브런치에 공유해 볼 생각도 있다. 수단은 어디든지 좋다. 그냥 이제 소소하게 감상하고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기록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자 한다.
또한 새롭게 머릿속으로 들어온 생각 중에 채식과 비건도 있는데, 이 부분도 기록의 관점에서 시도를 해볼 생각이 있다. 한 번에 내 식단 자체를 바꾸는 것은 어렵겠지만, 앞으로의 점진적 방향성의 변화를 줘보기 위해 고기가 들어간 요리보다도 훨씬 맛있는 비건 레시피를 개발해서 아카이브 해볼 예정이다. 지속 가능하게 실속 있게 비건 지향을 시도하는 길은 그 방법밖에 없다고 소소하게 생각해둔 상태이다. 아마 이거는 시도해보다 보면 조금씩 또 내 생각과 입맛도 변하게 되지 않을까 하고 살포시 생각해본다.
이렇게 4가지 삶의 사고방식을 스물 열 살이 된 지금에서야 세우게 되었다. 올해는 살을 빼보자! 금연을 해보자! 하는 단기적인 그리고 해낼 수 있는 ‘목표 지점’보다도 좀 더 근원적인 ‘삶의 사고방식’을 정립해보고 싶었다. 이 방식을 기준으로 삼아 앞으로의 내 삶도 단단하게 다져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많은 응원은 맛있는 밥으로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