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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Apr 11. 2016

한정된 자원에서의 개발

  퇴근 후의 시간을 이용하여 개발을 하기로 한 이래로 나에겐 한가지 습관이 생겼다. 집에 돌아오면 옷을 갈아입자마자 물을 한 컵  책상 위에 올려놓은 후, 바로 의자에 앉아 컴퓨터의 전원을 누르고 IDE를 실행시키는 습관이었다. 시작한 한 달쯤 되었을 때, 우리가 개발한 것들이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개발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시장에 내놓을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 어느 정도 작동하는 때였다. 이때쯤 돼서 우리는 마케터와 디자이너까지 팀에 끌어들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멤버들을 얻게 되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디자이너, 개발자가 없어서 허우적대고 있을 때 우리는 구하자고 마음먹자마자 구할 수 있었고, 아무 제품도 없었지만 마케터까지 구하게 되었다. 새로운 멤버들이 들어오게 된 후, 우리는 원래 만들고자 했던 제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팀원 전체의 생각이 담긴 제품이었고 새로운 사람들이 온 만큼 그들의 생각도 담기길 원했기 때문이다.


  이때 기획을 재점검하면서 우리들의 생각은 한참 동안이나 빙빙 돌게 되었다. 그 생각의 궤도는 원래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멀어지기도 하고 다시 가까워지기도 했었다. 그러다 결국엔 우리가 원래 기획했었던 제품을 drop 시키기로 결정했다. 여기엔 우리의 아이디어가 어떤 것이었는지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drop 한 이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비용'이란 단순히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개발하기 위해 들어가는 시간, 노력, 물리적인 비용 등 제품을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모든 것을 총칭한다. 우리는 충분한 수의 개발자가 있었지만 모두 각자의 생업이 있었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은 없었다. 게다가 자본도 없었기 때문에 생각보단 핸디캡이 꽤 있었던 셈이다. 우리 모두가 이런 식으로 개발하는 경험은 처음이었지만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초기 제품을 너무 크게 잡았던 것 같다. 개발을 진행하며 이걸 만들면 저걸 만들고 저걸 다 만들면 또 다른 게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피로감도 있었던 것 같다.


  두 번째는 팔 수 있는 시장이다. 우리가 처음 기획했을 때는 굉장히 신선하고 기존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 정도 조사를 해보니 비슷한 서비스가 꽤나 나왔다.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더 열심히 하면 극복할 수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개발자들만 잔뜩 있는 우리 팀은 두 번째 이유에서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기존에 있던 제품이 우리가 개발하고 있던 것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우리 것만의 장점이 분명히 있었고, 사실 나는 그 장점의 효용성을 믿었기 때문에 계속 진행하길 바랐었다. 하지만 나머지 멤버들이 두 번째 이유로 반대를 했었고 나도 굳이 다들 반대하는데 끝까지 그 기획을 밀어부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다른 멤버들의 말을 따랐었다.


  결국 우리의 첫 번째 기획안은 무산이 되었고 우리가 열심히 만들었던 결과물은 폐기하기로 했다. 이후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 아이디어 회의를 새로 시작하기로 했다. 내가 이때의 일을 겪으면서 얻었던 것은 자원이 적은 상태일 때,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우리에겐 가용시간이라는 자원이 부족했다. 게다가 대부분 개발자였기 때문에 시장이니 마케팅이니 하는 것도 몰랐다. 우리가 만약 린스타트업이란 것에 깊게 알고 있었고 충실히 이행했다면 기존에 기획했던 제품의 크기를 많이 줄이고 우선 출시하여 조금씩 바꾸는 식으로 진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 일을 겪고 난 후 나는 자원이 적은 상태에서 개발할 때 제품의 크기와 생산성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게 되었고 이후에 개발을 할 때에도 이 생각은 많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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