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글ㆍ사진 ㅣ 길보경
새해가 되면 무릇 새 소망을 품게 된다. 어찌 보면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목적보다는 잘 살아내려는 마음가짐에 의미를 두는 듯싶다. 올해의 버킷리스트를 모아 보니, 글자 바깥으로 공통적인 키워드가 읽혔다. 좁게 보면 디지털 디톡스, 넓게는 웰니스였다. 일상이든, 비일상이든 가상 세계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생활의 신조로 삼고자 한다. ‘AI-Volution’ 시대에 결코 부합하지 않더라도, 의도적으로 디지털과 단절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싶다.
또한 물건 소유에 큰 감흥이 없는 내겐 늘 경험에 관한 리스트가 상단을 차지했고, ‘여행 떠나기’는 경험과 비움을 동시에 충족한다는 점에서 매해 빠지지 않는다. 이번 연도에는 ‘여섯 번’이라는 횟수를 추가했다. 두 달에 한 번은 여행자 모드로 전환하는 삶을 바라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상을 충실하고 단단하게 살아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언제든 가볍게 떠나려면 물리적 시간을 확보해야 함은 물론, 마음에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기에. 올해의 소망을 일상에 어떻게 조응시키면 좋을지 고민하던 연초, 부모님과 함께 전주 숙소 로텐바움으로 떠나게 되었다.
숙소 로텐바움은 전주 한옥마을 인근, 서학동 예술 거리에 자리한다. 2층 규모의 단독 주택으로 소담한 정원이 딸려 있다. 대문의 안팎에 고양이 사다리를 두었는데, 이는 브리기테 슈스터의 스위스의 고양이 사다리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라고. 로텐바움을 공사하는 도중 태어난 길고양이와 공생하기 위한 방편인데 국내에서는 처음 본 형태의 구조물이라 퍽 인상적이었다.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서서히 눈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펑펑 내렸다. 어른이어도 눈이 오는 날이면 괜히 설레는 건 매한가지. 로텐바움의 현관문을 열자 마침 설경을 감상하기 딱 좋은 흔들의자가 놓여 있었다.
흔들의자에 앉아 마른 나뭇가지 위에 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겨울 정원을 보니, 푸릇푸릇했던 정원이 한순간 겹쳐 보였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3년 전 봄에 로텐바움에서 하룻밤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경험이 매우 좋았던 터라 함께 간 이와 한동안 그날의 추억을 나누곤 했다.
로텐바움은 단순한 숙소라기보다는 주인의 취향이 켜켜이 쌓인, ‘사람이 살 것 같은 집’에 가깝다. “내 집은 생활의 보물상자”라고 말했던 르 코르뷔지에의 말이 절로 떠오를 만큼, 감정이 깃든 빈티지 가구와 오브제가 곳곳에 가득하다. 나는 첫 방문 때 이미 이곳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지만, 그때와 비교했을 때 꽤 달라진 모습도 있어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먼저 전주 숙소 로텐바움의 하이라이트인 다이닝룸. 처음의 흰 벽이 주황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체어 역시 다른 종류의 빈티지였다. 다크 브라운 계열의 독일 혹은 덴마크산 가구가 어우러진 공간이 더욱 따듯하게 느껴졌다. 다이닝룸에서는 식사는 물론,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거나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읽어도 좋다. 커다란 창 너머로 시시각각 변주하는 자연을 감상하며 평온한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이다.
엄마께서 넓은 일자형 주방을 마음에 들어 하시더니, 곧이어 이곳에 마련된 ‘평화와 평화’ 원두로 커피를 내려 주셨다. 머신이 아닌, 손수 갈아서 천천히 내리는 커피라는 점이 공간의 속성과 조화를 이룬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주인에 관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또 다른 공간, 침실. 마치 어제까지 머물다 간 사람의 방처럼 옷, 건축 및 예술 서적, 향수, 수집한 사진 등이 시야에 들어왔다. 재밌었던 것은 벽시계부터 탁상시계까지 꽤 다양한 종류의 시계가 여럿 있었는데, 단 하나도 시간이 맞지 않았다.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공간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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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텐바움의 제작자에 관한 정보는 주방에 마련된 책자에 상세히 적혀 있다. 재생 건축을 키워드로 다양한 건축적 실험을 전개하는 27clubs이 바로 이 공간의 주인. “세르주 갱스부르가 사는 집에 놀러 간다면 어떨까?”로 출발한 상상이 50년 넘은 구옥을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다. 로텐바움의 페르소나는 조르그(Zorg)라는 가상의 인물로, 1967년을 살아가는 사진작가이다.
주택의 곳곳에서 세르주 갱스부르의 러프한 이미지들, 장 자끄 베넥스 감독의 영화 베티 블루의 오마주, 1960~1970년대 독일, 프랑스의 대중문화에 대한 아이템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자연스럽게 조르그의 삶에 몰입해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이런 색다른 경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전주 숙소 로텐바움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린과 브라운을 키 컬러로 삼아 연출한 1층의 욕실은 빈티지한 미감을 발산했다. 이곳의 모든 어매니티는 논픽션 제품.
2층 침실은 포토그래퍼가 사진 작업을 하다가 잠시 어딘가로 외출한 듯한 인상을 주었다. 사울 레이터에 관한 책, 오래된 타자기, 아트 포스터 등 감각적인 사물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선반에는 게스트를 위한 일회용 필름 카메라가 놓여 있고, 1팀당 4장까지 촬영이 가능하며 추후 인화된 사진을 선물처럼 보내준다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2층 욕실은 1층과 다르게 강렬한 레드 컬러의 타일로 마감했는데, 성인 한 명이 들어가도 넉넉한 크기의 대형 욕조도 갖추고 있었다.
전주 숙소 로텐바움이 더욱 특별한 집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이렇게 애정이 느껴지는 사물이 곳곳에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흔적을 좇아가며 집을 돌아보는 내내 마치 전시를 관람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야기가 층층이 쌓인 공간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가족들과의 대화도 계속 ‘집’을 주제로 흘러갔다. 로텐바움을 만든 사람들에게 경의를 느낀 우리는 취향을 발견하고 키워가는 과정이 얼마나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가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전주 남부시장에서 장을 본 것들로 꾸렸다. 식사에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며 가족들과 긴 대화를 나누었고, 그 시간이 흐르는 내내 선반에 놓인 CD 음악을 하나하나 청음 해보기도 했다.
이윽고 밤이 깊었다. 잠시 간식을 사러 나갔다 왔는데, 바깥에서 본 로텐바움의 외관이 너무 아름다워 한동안 바라보았다. 옆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마치 성주가 된 기분이라고 말해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야식의 최고 메뉴는 역시 라면과 맥주가 아닐까. 평소 이 시간이라면 침대에 늘어져 유튜브를 보며 곯아떨어지기 마련인데, 어쩐지 오늘은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싶었다. 책장에 빼곡하게 꽂힌 책을 눈으로 훑다 보니 어렸을 때 좋아하던 오래된 명작도 있었고, 최근에 읽고 싶어 마음에 담아둔 건축가의 책도 있어서 반가웠다.
반가운 친구의 방문과 함께 아침을 맞이했다. 고양이가 식사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우리도 뭐를 좀 먹어야겠다 싶어서 간단히 상을 차렸다. 풍년제과에서 사 온 빵이 있어 더욱 풍성한 아침이었다.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 비일상적 공간인 이곳에서 깊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아날로그 감성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결코 인간이 아니라면 구축할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곳이다. 인간됨의 의미와 인간답게 사는 삶이 무엇인지 사유하게 만드는 전주 숙소 로텐바움. 시선이 닿는 지점마다 행위를 유발하는 사물을 두어, 자연스럽게 심심함을 해소하도록 이끈다. 이를테면 책을 찾아 읽고, LP로 음악을 감상하고, 핸드폰 대신 필름 카메라를 들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 디톡스에 대한 희구가 있는 이에게는 로텐바움이 완벽한 목적지가 될 것이다. 누군가의 취향과 온기가 겹겹이 쌓인 공간에서 나를 마주하고, 서로가 연결되는 경험을 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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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 길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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