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편. 재심의 그림자 – 내 삶의 몫

자책의 무게

by Surelee 이정곤


저녁 무렵, 정원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재심은 벤치에 앉아 손에 묻은 흙을 살짝 털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을빛이 퍼지는 순간에도 그녀의 어깨는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그녀의 삶은 더 이상 “내 탓”이라는 말로 시작하거나 끝나지 않았다.
아들의 어깨가 무거워보일 때도, 직장에서 동료가 실패했을 때도, 재심은 이제 자신에게 지나친 책임을 지우지 않았다.
“내가 다 해결해야 해.”라는 생각 대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돼.”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 기억 속에서 심장은 여전히 뛰었지만, 묵직함 대신 리듬을 찾았다.
밤마다 들려오던 쿵쿵거림은 이제 공포가 아니라 ‘살아 있음’의 소리로 들려왔다.
재심의 손끝은 흙을 움켜쥐기보다, 부드럽게 풀을 다루는 데 집중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정원은 더 이상 책임과 자책의 무게로 가득하지 않았다.
잡초는 스스로 자라나고, 그녀가 심은 꽃과 풀은 그저 돌봄을 받으며 성장했다.
“내가 뿌리지 않은 것은 내가 대신 책임질 필요가 없어. 하지만 내가 돌볼 수 있는 것만큼은 내 손으로 가꾸면 돼.”
재심은 마음속으로 천천히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불어 풀잎이 흔들리고, 노을빛이 부드럽게 정원 위로 내려앉았다.
재심은 처음으로 등을 곧게 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알았다. 삶의 무게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자신을 짓누르는 돌덩이가 아니다.
그저 흙 속 깊은 뿌리처럼, 존재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무게일 뿐이었다.
재심은 미소를 지었다.
잡초도, 돌덩이도, 그림자도, 그리고 자신도 모두 이 정원의 일부였다.
그 속에서 그녀는 비로소 자유롭게 숨쉴 수 있음을 느꼈다.
“모든 게 내 잘못이 아니야.
그냥 나에게 주어진 만큼만, 최선을 다하면 돼.”
그 순간, 재심은 자신을 탓하지 않는 삶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며, 그대로의 자신과 세상을 온전히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