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보스턴 어학연수 : 정글의 법칙
처음에 보스턴에 도착했을 때,
내가 머물게 된 홈스테이에는 히스패닉계 가족이 살고 있었다.
(언어는 다행히 영어를 잘 사용하고 있었다.)
많이 낯설고 무서웠던 미국에서의 첫걸음을 다행히도
친절하고 정감 있는 가정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겐 복이었다.
그때 홈스테이 가족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가자마자 마트에서 마일리지 카드도 같이 만들어줬음 ㅋ)
지금까지도 가끔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하고 지내고 있다.
(최근까지도 나한테 홈스테이 학생 연결 좀 해달란다. 싸게 해 준다고 ㅎ)
거기에 머물면서 홈스테이 식구들과 잦은 대화를 통해 영어도 많이 늘렸고
ex) '저....는....이...름....미....에....릭....했습니다.' 에서 '저의 이름은 에뤽입니다.' <==요런 느낌
(내 영어 이름이 에릭이다.)
그렇게 어느새 영어로 웬만한 스몰토킹은 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당시의 가족구성은 설명하자면
1. 몸이 많이 우람했던 어머니(영화 빅마마 생각하면 된다)
2. 호리호리하고 요리를 잘했던 순서상으로 네 번째 남편
(멕시코 모자 씌워 놓으면 그냥 나쵸 CF 출연하게 생김/ 르네)
3. 그 부부 사이에서 나온 초등학생 8살 남학생 하나, 7살 여학생 하나
4. 그리고 우람한 어머니와 세 번째 남편사이에서 나왔던 고등학생 2명
(둘 다 많이 거친 느낌/ 화장실에서 마리화나 자주 핌)
5. 그리고 우람한 어머니와 두 번째 남편사이에서 나왔던 분가 해 살던 20대 초반 딸(매우 예쁨)
6. 그리고 우람한 어머니와 첫 번째 남편사이에서 나왔던 분가 해 살던 20대 중반의 아들(성실하게 잘생김)
구성을 보면 알겠지만
그렇다...
여기는 모계사회다.
여기의 홈스테이 마더는 50대 초반의 나이에 이미
4번째 남편과 살고 있다.
여성분은 몸이 매우 우람하며
3층짜리 집을 자가로 소유하고 있고,
1층에만 거주하며
2층, 3층의 방들을 모두 유학생 홈스테이로 돌리고 있다.
우리 홈스테이 인근에는 홈스테이 마더의 여동생인
더 우람했던 또 다른 여성분이 사셨고
그분은 근육질의 흑인 남성과 같이 살았었다.
그 흑인 남성은 늘 가벼운 런닝 차림에 각진 몸매를 보유했으며
항상 단백질 셰이크를 손에 들고 있었고
딱히 일을 한다기보다는 집에서 운동만 했다.(그렇게 보였다. 갈 때마다 운동하고 있었음)
근육질의 그 남성은 겉보기엔 흑형의 이미지에 무서워 보였지만
항상 상냥하고 참한(?) 표정으로 홈스테이 학생들을 살갑게 대했다.
내가 머무는 동네는 모든 집이 비슷비슷하게 생긴 3층건물들이 줄줄이 도열해 있었고
(그래서 집을 못 찾을뻔했었지 / 에피소드 1 참조)
그중 두 집은 이 두 여성들 각각의 소유였다.
두 분 다 홈스테이 학생들을 집에 들이면서 부수적인 돈벌이를 하셨고
별도로 본업이 있으셨다.(우리 집 홈스테이마더는 재활용품 사업, 옆집 여성분은 프로그래머였다)
즉 경제력이 빠방 한 여성분들이
미모의 남자를 사귀어가며(바꾸어가며)
절대적으로 여성이 갑인 모계사회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마치 고대의 다산의 상징 조각상의 주인공의 삶이 현대에서 구현된 느낌이었다.
아마도 다산의 상징 조각상 여자분의 직업이 그 당시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였을 수도 있다.
("돌도끼 전량매수해!")
내가 처음 홈스테이에 도착했을 때는 홈스테이 마더는
나를 이쁘게 생각하여
그 집에서 제일 좋은 방으로 나를 안내하였다.(벽지가 매우 핑크핑크했다.)
내가 그 집에 살게 된 이후로
홈스테이 마더의 동생은
우리 홈스테이로 수시로 방문하여 우리 홈스테이 맘과 술자리를 가졌고
나한테 '에릭~쏘 큐트~'를 연발하며 플러팅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게 플러팅이었던 게...
그분이 술을 먹고 종종
내 핑크핑크 방 침대에 올라가서
내가 올 때까지 침대에서 자는척하면서 나를 기다렸었다.
그때마다 그분을 내보내고
내 (순결을)방을 지켰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아무튼
사실 사람들은 다들 착했고 정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은 바로
4호기가 5호기로 교체되는 순간을 목격한 것이다.
홈스테이 맘은 무언가를 선언하듯 나에게 말했다.
'르네(4번째 남편)는 더 이상 우리 가족이 아니에요'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아빠를 잃은 두 초등생 아이들은 울고 있었고,
르네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르네를 볼 수 없었고
정확히 삼일뒤에 새로운 남자분(5번째 남편?)이 우리 홈스테이에 합류했다.
그리고 그 며칠 뒤에는 홈스테이마더의 동생집에 거주했던,
참했던(?) 근육질 흑형도 집에서 쫓겨났다.
그리고
그 참한 근육질 흑인 남성과 거의 비슷하게 생긴 남성이 그 집에 합류했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와 이것은 마치 정글이 아닌가?' (내가 머문 곳이 바로 세렝게티)
정글에는 법칙이 있었다.
이러한 절대적인 모계사회에서 여성은 갑이었고
1. 얹혀사는 남자 따위가 다른 여자(그게 홈스테이 학생이더라도)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은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요것이 옆집 흑형이 집에서 쫓겨난 이유)
2. 남자가 요리를 못하거나 게으르면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3. 남자가 아내에 충실하지 못하면(여러모로)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나는 그 주의 금요일 저녁에 새로 온 5호기 아저씨가 안 보이길래
아줌마가 좋아하는 럼을 슬쩍 사다가
술자리를 마련했다.
실은 나 또한 4호기 르네와 정이 많이 들었었고, 아이들도 측은하게 느껴져서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애들도 있는데...'라고 생각하고는
대화를 나누던 중 슬쩍 르네를 물어봤는데
르네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르네(4번째 남편)의 죄목은
'요리도 못하는 주제에 성실하지도 않고 최근 집 청소를 안 하려고 했으며, 홈스테이 여학생과 잦은 토킹을 하였다.'
맞다. (능지처참 수준이었다. / 르네야 좀 잘하지 그랬냐 ㅜㅜ)
르네는 그래서 그대로 노숙자 쉘터로 쫓겨났다.
(그때 이것도 충격이었다. 그 사람은 진짜로 인근의 공원에 있는 노숙자 쉘터로 갔다.)
그런데 얘기를 듣고 나서 딱히 내가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홈스테이 마더는 또 이해가 안 가는 얘길 했는데
자기가 노숙자쉘터를 르네 때문에 갔다가
거기서 수많은 노숙자들을 보고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이분 르네 내다 버리면서는 상처 안 받음)
그리하여 동네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바자회를 열기로 했다는 것이다.(이게 뭥미)
그날은 내가 느낀 것이 많았다.
문화가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하지만
이것이 생소하던 부당하던 오해던 간에
이것이 바로 그들의 문화고 미국에서 이게 흔한 일들이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이것저것 도와주던 초등학생 아이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짠했던 것도 사실이고
나름 나 또한 르네와의 정도 들었던 터라
여러모로 아쉽고 마음이 아팠다.
일전에 한번
르네의 딸인,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다음날 아침에 나를 부엌으로 부르더니
"에릭~ 술 먹고 행오버가 오면 수프가 필요해~"
하면서
내가 생각지도 못한 치킨라면수프를 끓여줘서
쓰나미 같은 감동을 주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애들의 마음이 더 신경이 쓰였고
애들이 울 때는 나도 마음이 아팠다.(치킨라면 탐욕자라고 말한 사람 맨뒤로 나가세요)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만 하면서 애를 낳고
그 애가 크기도 전에
헤어지고
다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애를 또 낳고
또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또 만나고
이런 문화 자체가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다.
한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으면
백년해로해야지
이게 뭐 하는 미개한 야만인들의 플래이인지 이해가 전혀 안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15년 뒤...
나도 이혼을 하고 백년해로를 못한 관계로
미개한 야만인이 되었다.(우가우가)
끝.
# 뒤에 나와있던사람 자리로 돌아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