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01. 할아버지의 수첩
할머니의 짐을 정리하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1987년도에 쓰신 수첩을 발견했다. 몇 장 넘기니 그 해 할아버지의 매일을 채웠을 자잘한 일정들과 누군가의 연락처들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성격이나 외모뿐 아니라 글씨체도 유전되는 모양인지, 할아버지의 글씨체는 흡사 엄마의 그것 같기도 하고 내 것 같기도 했다. 손때가 묻어 겉 가죽이 맨들맨들해져 광까지 나는 수첩을, 엄마는 말없이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나와 글씨체가 비슷하신 그분은 성격도 나와 비슷하셨냐고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꽤 오래전, 할머니의 기억이 생생했을 때에는 나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미처 알지 못했다. 할머니는 언제까지나 같은 모습의 할머니로, 엄마 아빠는 언제까지나 그런 모습의 엄마 아빠로 계실 거라 생각했다. 지금의 내가 지나왔듯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도 유년기가 있었고 청소년기가 있었고, 꿈이 넘치다 못해 흘러내리는 청춘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키와 마음 모두 성장하기 바빴던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사실 별 관심도 없었다. 할머니가 아프셔서 병원에 계시다는 연락을 받은 그날은 마침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진학을 희망하는 어느 대학교에 견학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다행히 인솔 교사는 따로 없었고 우리끼리 알아서 대중교통으로 가면 되는 것이었는데, 잠시 고민하다가 무리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할머니가 계신 병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던 기억이 난다.
가끔 할머니는 정말 뜬금 없이 오래전 일들을 얘기하시곤 했다. 해방이 되었을 때 모두가 기쁨에 취해 길거리로 뛰쳐나왔다가, 누군가 '해방이 거짓이고 지금 일본군들이 또 잡으러 온다'는 헛소문에 깜짝 놀라 후다닥 집으로 다시 뛰어들어갔던 일을 얘기해주신 적도 있다. 국민학교에서 수업할 때면 일본어로 말해야만 했고, 이름도 일본식으로 말해야 했다는 얘기도 해주셨다.
할머니는 요리도 정말 잘하셨다. 젊어서 외할아버지와 사별하시고 평생 김밥을 만들어 팔아서 오 남매를 키우신 분이다. 언젠가 외가에서 놀다가 '떡볶이가 먹고 싶다'는 내 말을 들으시고는 '떡볶이는 어떻게 만드냐'고 물으셨던 할머니. 아직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같은 게 대중화되기 전이라 대충 어떤 재료들이 들어가고 어떻게 만드는 것인지 사진이나 그림 한 장 없이 구두로만 설명드렸는데도, 내 그 허술한 설명만 들으시고도 웬만한 분식집에서 먹었던 것보다 훨씬 맛있는 떡볶이를 만들어 주셨던 우리 할머니. 나이가 드셔서 더 이상 김밥장사를 하실 수 없을 때에는 아파트 청소부로도 일하셨다. 돈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태생이 가만히 계시지 못하고 일이든 뭐든 몸을 움직이셔야만 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학교에서 내라는 육성회비는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었고 각종 공과금이나 기한도 엄수하셨다고 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옆에는 지하철 역사가 있었다. 외가가 위치한 곳 역시 같은 호선 지하철이 지나가는 곳이었는데, 언젠가 할머니가 우리 학교 옆에 있는 역에 내리셨다가 교문 앞에서 친구들과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나를 발견하셨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저만치 멀리서 한참을 바라봤었다는 얘기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엄마를 통해 전해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할머니는 내가 당신을 부끄러워 할지도 모른다 생각하셨던 걸까. 그렇지만 이유를 여쭤보기도 전에 할머니는 당신의 아주 어린 시절로 돌아가셔서는 어쩌다 한 번씩만 우리 할머니로 돌아오시게 되었다. 할머니와 나의 기억이 맞물려 있는 시간들을 들여다 보는 것은 이제 점점 더 희귀한 일이 되어간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할머니가 아프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던 그 날로 돌아가 할머니의 젊은 날은 어떠했냐고 여쭤볼 것이다. 할머니는 어렸을 적 꿈이 무엇이었냐고, 첫 딸인 엄마를 낳았을 때는 마음이 어떠하셨냐고, 오 남매를 키울 때 재밌었던 일이나 유독 기억에 남는 일은 없었냐는 질문도 던질 것이다. 떡볶이를 만들어 주신 그 날로 돌아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태어나 먹어본 떡볶이 중 가장 맛있다고 스무 번도 넘게 말씀드릴 것이다. 교문 앞에서 손녀를 발견하시고도 미처 아는 척하지 못하셨다는 그 날로 돌아가서는 저는 단 한 번도 할머니가 부끄럽거나 창피한 적 없었다고,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여서 나는 너무 좋았다고 말씀드릴 것이다.
1987년. 무려 30여 년 전이다. 새해도 벌써 열흘이나 지난 지금, 아직은 어느 서류에 날짜를 기입할 때면 나도 모르게 2020까지 쓰다가 아차차 지우개를 찾는 일이 허다하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는 시간이라는데, 생각보다 나는 이 시간을 모조리 나만을 위해 쓰는 일이 잦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이 시간을 조금 더 쪼개어 가족과 나누어야겠다. 내일은 너무 늦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