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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업하는 선생님 May 04. 2023

술, 담배하고 4번 퇴학당한 고등학생이 사랑받는 이유

#호밀밭의 파수꾼 #고전


고등학생인 내 아이가 3번의 퇴학을 맞이하고,

서울 근처 명문 기숙학교에 또 보내뒀더니…

또다시 퇴학을 당했단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심지어 퇴학당한 이유가 국어 한 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목에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는 이유라면?

퇴학당하고 조용히 안전히 집에 들어오면 다행인데… 

퇴학당한 사실을 잠시 숨기고

모텔에 방을 잡고 3일 동안 서울 밤거리 홍대에서 클럽, 술집에 가고, 

줄담배를 피며 어른인 채하며 술을 마시고 놀며 향락을 즐긴다면?

여러분은 어떨 거 같으신가요? 




도저히 용납되지 않고 사랑받지 못할 것 같은 반항아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출간 당시 폭풍적인 인기를 맞이하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30주 동안 올랐으며. 2005년 타임이 선정한 1923년 이후 최고의 영어 소설 100선 목록에 포함되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선 YES24 독자가 사랑한 고전문학 베스트 TOP 100에서 12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성적이 나쁘고 친구 및 교사와도 사이가 원만하지 않아 펜시 기숙고등학교에서 쫓겨난 주인공 홀든 콜필드(Holden Caulfield)가 그저 뉴욕을 방황하며 겪은 3일간의 이야기를... 또, 저속한 언어, 노골적 음주와 흡연 묘사, 원나잇 스탠드와 매춘, 염세주의적 말로 가득 찬 소설이 이리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는 걸까요? 






그 이유를 지금 알아보겠습니다.






이유 있는 반항 - 미국 비트세대



‘호밀밭의 파수꾼’의 성공과 노골적인 비판적 시각, 홀던의 반항 이유를 알려면 미국의 ‘비트세대’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비트 세대’(beat)는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에 걸쳐 한참 방황하던 젊은 청년층들을 말합니다. 비트 세대란 단어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길 잃은 세대(lost generation)’에 대한 논의 중 나온 말입니다. 세계대전 이전 유럽은 야만에서 벗어난 문명국을 자처했고, 자신의 합리적 이성, 우월한 과학 기술력을 근거 삼아 자신들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믿고 신봉하던 이성은 이전에는 없을 더 끔찍한 전쟁과 대학살을 합리화시켰고, 산업혁명 이후 밝고 희망찬 미래를 만들 것으로 기대한 과학 기술력은 기관총, 독가스, 철조망 등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이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습니다. 이러한 시대 상황 속 그전에 믿고 신봉하던 전통, 신념들은 무의미해졌고 전후 유럽문화는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분위기를 내뿜었습니다. 생지옥을 경험한 세대는 어떠한 방향과 가치를 바탕으로 살아가야 할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길 잃은 세대_전후 Lost generation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미국은 겉으론 물질적, 사회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졌습니다. 하지만, 지옥 같은 전쟁 속에서 돌아온 젊은이들은 전쟁터에서는 자유를 지키는 투사였지만, 평화의 시대에는 사람을 죽이는 총을 다루는 기술은 쓸모없었습니다. 오히려, 위험 대상에 불과했습니다. 유사시에 사회 변혁과 폭동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분자였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무료 대학 교육, 주택 제공 등 사회 유화 지원 정책을 핌과 동시에 이들이 사회적으로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채, 알맞은 틀에 맞게 살기를 바랐고 그에 따른 사회적 규범을 제시했습니다. 




거기에 조국 수호와 죽음의 마수로부터 돌아온 젊은이들이 마주한 것은 이미 나의 자리는 다른 누군가가 차지하고 있었고, 떠나가버린 징병 기간 동안 안정적 사회적 기반을 쌓을 기회를 놓쳐버렸습니다. 제향 군인들은 자리 잡은 기성세대와 달리 공장이나 일용직 노동자, 파트타임 잡 위주로만 다니며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1940년대 표준 남성 스타일 vs 비트 세대 남성 스타일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로 길들이려는 사회, 비참한 현실은 기존 사회에 대한 큰 반항 심리를 일으켰습니다.  터부시되던 이른 나이의 음주와 흡연, 심지어 마약까지 접하거나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폭주를 뛰고 원나잇 스탠드를 즐기는 등, 기존 상식과는 거리가 먼 일탈 행위들을 일삼게 됩니다. 당연시 여기는 출세나 사회적 경쟁에는 냉소를 지으며 그것에 목을 매거나 최우선시하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좀 더 원초적이면서 기존의 것들을 깨부수거나 바꾸는 것을 역사상 가장 두드러지게 추구했습니다.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반항의 이야기



세상이 정해놓은 삶을 이정표 삼아 사는 것에 깊은 회의감… 가식적 사회에 대한 비판… 유대와 소속감에 대한 갈망… 그에 따른 ‘정체성 혼란’ 등 홀던은 사회적 시선에선 비행 청소년이지만 내면적으론 어디 갈지 몰라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고, 사회적 기대에 너무나도 지쳐있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런 홀던을 그저 남들 다 잘 다니는 학교도 못 다니는 '부적응자' 그리고 문제아로 여깁니다. 더 나아가 무관심하기까지 하죠. J.D 샐린저가 홀던을 통해 그때 당시 미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사회적 기조, 비트 세대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대변했습니다. 그렇기에 1940년대 말 미국에서 사회적인 열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거지요. 




그리고 억압적 사회에 대한 피로감은 전후 미국에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주변 학교에도 존재했고, 가정에도 있었으며 하다 못해 일하고 있는 직장에도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홀던은 이런 갑갑한 현실에 대한 불편함을 거침없이 표현합니다. 

‘엉터리 같은 인간들이 환호성을 보내는 것을 보고 있자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싫어질 것 같다.’, 
‘지독한 속물로, 유명 인사나 상류층이 아니면 말도 제대로 하지 않는 놈이다.’, 
‘루스 자식 (중략) 내 지도 선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이라고는 밤늦게까지 몇 명 모아놓고 섹스 이야기를 떠들어댄 것밖에는 없었다’
‘저희 학교는 <1888년 이래로 우리는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훌륭한 젊은이들을 양성해내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웃기지도 않는다. …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훌륭한 젊은이들이라고는 본 적이 없다’ 등등. 

노골적이고 불쾌한 표현들은 우리가 사회적 시선에 하지 못할 말들을 홀던은 우리 대신 거침없이 말해줍니다. 예술, 종교, 도덕의 전통적인 규범과 관습에 도전하고 주류 문화에 대한 환멸, 그러기에 받는 소외감, 또 그러기에 생겨나는 반항심과 분노... 이 모든 감정들을 홀던은 우리 대신 해소해 줍니다. 어렸을 때 감옥 같은 가정과 학교에 대한 반항으로 우릴 위로해 주고, 어른이 되어선 이 길이 맞는지 모른다는 불확신에 공감을 느끼며 우리는 또 위로받습니다.




3) 고리타분한 전통문화에서 벗어나 '다른 무언가(자신)'를 추구하고자 발버둥 친 홀던의 반항이 끝없이 이어지지 않아 이 소설은 더 사랑받을 수 있었습니다. 갈 길 잃은 반항이 끝없이 이어지고, 비극적 결말로 이어졌다면 이 소설은 단순한 비관주의 소설로 남겨졌을 겁니다. 하지만 J.D. 샐린저는 비관적 결말 대신 홀던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게 합니다.


피비 : 오빠 뭘 좋아하는 건지 한 가지만 말해봐.
(중략)
홀던 :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시대적 고통의 대변, 모든 시대에도 유효한 공감적 이야기, 결국은 너의 그런 혼란도 곧 끝이 날 것이라는 희망찬 결말… 이 모든 것들이 덕분에 ‘호밀밭의 파수꾼’은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고 있고, 미국에서 거친 언어 표현에도 청소년 권장 도서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들은 홀던과 같이 억압받고 길을 잃고 방황할 것이기에 앞으로도 이 책은 사랑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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