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에는 아무리 아파도 학교에 안 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는데, 커 보니 이유 없이 회사를 안 가도 큰일이 생기진 않더라. 이걸 깨닫고 난 후에 오히려 무언가를 굳세게 해내야 한다는 의지와 동력이 급격히 감소되고 인생을 물 흐르듯 그냥저냥 살아가게 돼서 조금 재미가 없어졌다. H.O.T. 를 사랑했던 열정과 그 MBA에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인생이 끝날 것 같다는 간절함, 그 사람과 꼭 결혼을 하고 싶다는 절박함. 어쩌면 이런 감정들을 좇아 살았던 그때의 내 모습이 너무 그리운 걸지도 모르겠다. 그때에 그건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최고의 꿈이었으니까. 내 열망이 그때의 나에게 최고의 꿈이 되어 주었으니까.
부산에서도 변두리에서 태어나 자랐고, 그때 내 최고의 꿈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는 일이었다. 18세의 최고의 꿈이 이루어지니 그 꿈은 금방 현실이 되고 또 어느새 새로운 최고의 꿈이 생겨났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최고의 꿈은 찰나의 것, 인생에서 한 점에 불과하지만 그다음 최고의 꿈으로 가게 되는 디딤돌이 된다. 이다음에 오는 최고의 꿈이 어떤 새로운 꿈의 디딤돌이 될지는 나도, 너도, 아무도 모르지만 어떤 인생이든 다음의 최고의 꿈이 기대가 되어야 살만하다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최고의 꿈이 현실이 되고, 또 새로운 최고의 꿈이 생길 때까지 한치의 오류도 없이 꿈은 당연히 새로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꿈에서 꿈으로 이어지는 인생의 여정이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새로운 꿈이 내 앞에 마법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고민할 시간도 없이 앞장서서 불쑥불쑥 나타나던 꿈들은 어느샌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 눈 조차 빠끔하지 않고 있다.
최고의 꿈이 이렇게 숨어버릴 수 있는 거였다면 최고의 꿈을 살고 있을 때 잘 알아둘걸 그랬다. 그 꿈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또 어떻게 지나가는지, 새로운 꿈은 어떻게 오는 건지. 누리고 있을 때는 모르다가 그걸 잃고 난 후에야 고마워하고 그리워한다는, 그 뻔한 이야기가 최고의 꿈에도 해당될지 그때는 몰랐다.
한 번도 최고의 꿈을 찾아 나서본 적이 없다. 최고의 꿈은 내가 어디 있든 날 찾아와 주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최고의 꿈을 찾아가려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도저히 감도 오지 않는 캄캄한 시간이 속절없이 잘만 흘러가고 있다. 최고의 꿈을 가졌던 시간이 그립고 그 꿈을 이루려고 분투하던 내 모습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