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이총총 Apr 08. 2019

드디어 결심했다 - 세계여행

Posted on Oct.11, 2018 


테드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린 언제일지도, 가능할지도 모르는 세계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냥 다 관두고 일 년 정도 우리 둘이 여행을 다니면 너무 좋을 것 같아”
“그치. 그땐 꼭 너랑 자동차로 프랑스 일주를 하고 싶어”

사실 회사로부터, 업무로부터 마음이 완전히 떠나기 시작한 건 올해 초부터였다.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프로젝트가 2018년부터 시작되면서 사람도 업무도 너무 괴로워져서 그냥 다 관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전에도 상황이 어려워도 일을 멈추지 않았던 건 좋은 팀과 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와 느끼는 거지만 나에겐 그런 성장의 경험이 너무 중요했다. 3개월 전, 6개월 전을 되돌아보고 그때의 내가 상상도 못 했던 일을 하고 있구나, 정말 많이 왔다 싶은 경험. 그걸 아예 못 느낀 지 거의 1년이 되었으니...

“You get the shit done”

이건 물론 너에겐 무슨 일을 줘도 어떻게든 해낸다는 칭찬일 수도 있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너에게 신경을 덜 쓴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냥 혼자 내버려둬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일을 해내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는 팀이나 특별 케어하지 않으면 떠날 것 같은 애들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이 회사의 생리라는 것도 절실하게 깨달았다. 또한 랜덤한 프로젝트에 돌리기 시작한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이지만. 

2nd class citizen.
새삼스럽게도 나는 이 회사에서 세컨 클래스 시티즌밖에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너무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는 그들만의 리그에 들어갈 수 없다. 그들의 마음속엔 누가 inner circle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지 다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짐작하기만 했던 이 사실은 지난달 말에 compensation call을 하면서 완전히 명확해졌다. 너무나도 가혹한 reality check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 이후로 거의 한 달의 시간 동안 나는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다. 아무리 don’t take it personally라고 한다지만 그래도 지난 5년간 내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이었던 회사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를 멈추지 않게 한건 우리가 드디어 실행에 옮기기로 한 세계여행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여행이라고 하기엔 남미와 아프리카가 빠져있기 때문에 아시아-유럽 여행이긴 하지만 우리는 꽤 긴 기간 동안 여기저기를 여행 다닐 계획을 세우고 있다. 10월 말 멕시코를 시작으로 샌프란시스코, 일본 (교토-도쿄-삿포로), 한국, 홍콩, 상해, 베트남, 방콕, 발리, 싱가폴, 뮌헨, 리스본, 프랑스까지 내년 6월 말에 끝나는 대장정이 곧 시작될 예정이다. 물론 떠나기 전에 해결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지만 - 집 렌트 주기, 이삿짐 싸기, 짐 빼기, 도네이션 등등, 그리고 이젠 정말 시간이 많이 없지만 그래도 나는 슬럼프에서 조금씩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는 중이다. 

물론, 지금의 삶이 편안하고 큰 걱정 없이 살기는 하지만 대학 졸업 이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온 테드도,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나도 휴식이 너무나도 절실하다. 이쪽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특징인 것 같은데, 회사가 마치 작은 empire 같아 거길 벗어나면 마치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위기감이 들곤 한다. 그렇지 않다는 걸 머리로 알지만 빠져나오기엔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기도 하고. 떠나고 나서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하지 않고 하는 후회보다 해보고서 하는 후회가 낫다고 믿기 때문에 우린 이제 길을 떠나보려 한다. 

길 위에서 난 어떤 생각을 할 것인지, 어떤 걸 배우고 도전해보고 싶은지 요즘 생각해 보고 있다. 인터넷 시대의 가장 좋은 점은 온라인으로 배울 수 있는 게 굉장히 많다는 것. 웬만한 레슨은 인터넷으로 다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못해서 그냥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드로잉 클래스를 받기 시작했다. 어딘가를 갔을 때 펜 하나를 들고 슥슥 내 눈앞의 것을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이 나는 정말 너무나도 부럽다. 아직은 직선 그리기 에스자 그리기 하는 수준이지만 언젠가 한국의 풍경도, 유럽 어딘가의 도시도 펜 드로잉으로 그려볼 수 있길 바란다. 

이번 여행은 여기저기 찍고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최소 2주에서 한 달간 한 곳에서 머무르는 여행이기 때문에 로컬처럼 살아보기도 하고 그동안 못 만난 사람들을 여유롭게 만날 수도 있을 거다. 너무 기대된다!! 어디서든 일정이 맞다면, 우연히 지나가는 길이라면 누구든 만나고 싶습니다. 

블로그도 브런치도 이제 조금 더 꾸준히 하고 싶은 건 이 기록이 내가 앞으로 몇십 년 더 살아가며 돌아보게 될 에너지 저장소이기 때문이다. 열심히보다 꾸준히가 훨씬 어렵다는 걸 요즘에 많이 느낀다. 하지만 꾸준히는 누구도 배신하지 않기 때문에, 꾸준히! 

이 야경도 당분간 안녕



2018년 10월 말부터 세계여행을 시작해서 현재 진행형입니다. 

여행 중에 블로그 (blog.naver.com/extreme911)에 올린 글과 사진을 추려 브런치에도 올리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